주간동아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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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NATO 수준 핵협의? 뭔지 알고나 말했나

한미 국방부 장관 회담과 국방부의 헛발질…‘보여주기 식 국방’이 빚은 참사

  • 황일도 화정평화재단 연구위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6-10-28 18: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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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외교관과 군인들이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번 소동은 한국 외교안보팀의 수준을 보여준 한 편의 코미디다.” 10월 25일자 한 중앙 일간지 칼럼이 인용한 미국 측 소식통의 말이다. 문제의 사건은 10월 2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8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하루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국방부는 “전략폭격기, 공격용 핵잠수함 등 북한이 두려워하는 미국의 전략 자산을 한반도와 주변 해역·상공에 사실상 붙박이하기로 합의했다”며 이른바 ‘상시순환배치 방안’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들 전략 자산 중 대다수는 핵무기를 탑재하기 때문에 한반도와 그 주변에 전술핵무기가 재배치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치라는 이야기였다.

    이튿날 국내 언론을 도배한 이러한 팡파르는,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가 전혀 달랐다. 양국 장관의 공동성명에 관련 언급이 일절 반영되지 않았던 것. 성명의 공식문장은 ‘북한이 동맹 결의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못하도록 확장억제 능력을 좀 더 강화하기 위한 추가적인 조처 방안들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는, 이전 SCM에서 등장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준에 그쳤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이 한국 측의 상시순환배치 요구를 거절한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지자 한국 국방부는 다시 “상시순환배치 문제를 ‘검토’하기로 합의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짚고 넘어갈 부분은 이번 회의를 앞두고 국방부가 반복적으로 사용해온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수준의 확장억제 협의’라는 표현이다. 특히 SCM 직전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2+2 회담)에서 양측이 합의했다는 고위급 ‘외교·국방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설치를 두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던 이 문구는,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영토 내에 보관하고 있는 나토 주요 국가처럼 한국 역시 미국과 유사시 핵우산 가동을 둘러싸고 양측의 차관급 고위 당국자가 담당하는 실질적인 논의를 해나가기로 했다는 게 그 골자다. 지난해 창설된 차관보급 억제전략위원회(DSC)를 한 단계 격상한 기구라는 것. 앞서 본 상시순환배치는 바로 이러한 미국과 유럽 동맹국 사이의 핵공유(Nuclear Sharing) 메커니즘을 따라잡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빠지지 않았다.

    나토는 미국과 핵 관련 협의를 어떻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일까. 국방부가 EDSCG 모델로 지목한 회의체는 나토 핵계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NPG)으로, 1966년 구성된 이 기구는 명목상 회원국 모두의 군사 목적 핵정책을 관장하고 조율하는 기능을 맡는다. 이후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핵 사용 작전계획, 즉 냉전시기 미군 전략공군사령부(SAC)가 작성하던 SIOP(단일통합작전계획)와 현재 전략사령부(STRATCOM)가 맡고 있는 유럽전구 관련 작전계획의 작성 원칙을 모두 이 테이블에서 함께 협의해왔다는 것. 여기까지만 듣고 나면 상당히 그럴듯해 보인다.





    껍데기는 그럴듯한데

    문제는 실제로 나토에서 일했던 전직 유럽 주요국 관계자들이 전하는 핵계획그룹의 실체는 이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안보정책, 특히 전쟁 수행에 관한 나토의 조직 구성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냉전시기 존재하던 관련 기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최상층에는 1952년 구성된 북대서양이사회(North Atlantic Council)와 66년 구성된 방어계획위원회(Defence Planning Committee), 앞서 언급한 핵계획그룹이라는 3개 협의체가 자리한다. 다음 단계가 각국 합참의장이 참여하는 군사위원회(Military Council)고, 그 아래에 유럽연합군최고사령관(SACEUR)을 필두로 한 4개 지역사령부가 있다. 형태만 놓고 보자면 한미동맹의 군사구조, 즉 양국 대통령의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NCMA)→국방장관 회의(SCM)→합참의장 회의(MC)→한미연합사령부로 이어지는 조직체계와 흡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유럽 각국의 공식문서와 전직 관계자들은 유럽연합군최고사령관을 제외한 상층부 협의체 논의가 사실상 유명무실에 가까웠다고 한결같이 설명한다. 핵계획그룹만 해도 규정상으로는 미국 측 유럽전구 핵사용 작전계획을 모두 검토해야 옳았겠지만, 냉전시기 이들 계획의 실제 집필과 운용은 모두 미군 4성 장군인 유럽연합군최고사령관이 담당했을 뿐이다. 이 자리는 주한미군이 사령관을 겸임하는 한미연합사와 마찬가지로 미군 유럽사령관이 고정적으로 겸임하고 있고, 나토가 창설된 이래 18대 사령관에 이르는 현재까지 미국은 이를 한 차례도 양보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유럽에 배치된 전술핵이든, 미군이 본토 기지에 배치해둔 전략폭격기든, 전략핵잠수함(SSBN)에 보관 중인 전략핵 미사일이든 실제로 미국을 제외한 나토 회원국은 아무런 권한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게 공식문서에 등장하는 유럽 국가의 반복되는 문제 제기다. 이름과 형식은 그럴듯하게 만들어뒀지만 유럽 내 전술핵 배치 장소를 어떻게 바꿀지, 그 수량은 얼마나 유지할지, 심지어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어떤 목표물을 타격하는 데 사용할지 등에 대해서도 모두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집행했고, 핵계획그룹을 비롯한 나토의 다양한 협의체는 이를 추인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강제기구가 아니라는 나토의 속성상, 이들 협의체에서 어떤 결정을 하든 미국 측에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문장이 각국 전문가의 논문에 꾸준히 등장할 정도다.

    가장 딱한 대목은 따로 있다. 냉전 종식이 공식화된 1992년 이래 미군 핵사용 작전계획은 전략사령부가 담당하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각 지역 사령관에게 상당한 재량이 주어지던 전술핵 사용은 이후 전략사령부에 통합됐고, 이후 이 사령부에서 전략핵과 전술핵 작전계획을 통합적으로 수립 및 운용 중이다. 개별 동맹국과 구체적인 이해관계 차이를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줄어든 셈. 요컨대 특정 지역에 특정 핵무기체계를 붙박이로 배치한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이번 SCM을 앞두고 한국이 꺼낸 ‘한반도 인근 미군 전략무기 상시순환배치’ 제안은, 이렇듯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합된 미군의 관련 계획 운용방식에 비춰보면 애초부터 개연성이 높지 않았다는 결론이 불가피하다.

    물론 미국의 핵우산 약속만 믿고 독자 핵개발을 포기했던 유럽 각국이 이러한 현실에 불만이 없었을 리 없다. 이 때문에 나토 주요 회원국은 ‘이러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반드시 핵을 사용한다’거나 ‘특정 시점에는 미군 전술핵의 발사 키를 각국에 인계한다’는 식의 ‘조건부 핵우산 가동계획’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다. 대표적 사례가 ‘프랑스 핵폭탄의 아버지’라 부르는 피에르 갈루아 장군의 1953년 제안과 64년 논의되던 이른바 아테네 가이드라인. 그러나 유럽 각국에서 관련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미국 측은 ‘이를 논의할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역으로 제안한 뒤, 시간이 한참 지나면 다시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패턴을 반복했다.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압도적인 군사력 확충에도 나토 내부의 관련 논의가 전혀 달라지지 못하던 배경이다.



    ‘협의체 만들어 논의하자’ 미국 레퍼토리

    이러한 흐름은 그간 한국에서도 반복돼왔다. 한미 양국 국방부는 이미 2010년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보장하는 상설기구로 ‘확장억제정책위원회(EDPC)’를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2015년 DSC 창설을 공식화한 적이 있다. 모두 북한의 핵실험 직후 대책으로 제시한 청사진이었지만, 이러한 발표가 북한의 핵 능력 강화를 저지하는 데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국 내에서 핵우산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될 때마다 관련 협의체를 만들거나 심지어 기존 협의체 이름만 바꾸는 생색내기로 ‘땜질식 처방’을 해온 일련의 패턴은 앞서 살펴본 50여 년 전 유럽에서 워싱턴이 구사하던 행동방식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이러한 미국 측 행보는 핵무기 사용권에 대한 미국 관련 법령의 절대적인 규제를 감안하면 자명한 일에 가깝다. ‘대통령만이 핵무기 운용 및 발사에 관한 기본 권한을 독점하며, 이러한 권한은 나토 등 주요 동맹국이 연루된 전쟁 상황에서도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헌법을 비롯한 미국 법령체계의 기본전제라는 것. 뒤집어 말해 주요 동맹국과 어떤 협의 절차를 약속하든, 실제로 평상시 핵무기를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고 운용할지 혹은 전시에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오로지 미국 대통령의 권한으로 남겨둔다는 것이 내부의 절대원칙으로 설정돼 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핵개발을 협력했던 영국과 맺은 양자조약조차 미국 대통령의 이러한 권한을 침해하지 못하다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실제로 해줄 생각도 없고, 유럽에서 가동됐다는 협의체는 알고 보면 껍데기에 불과했지만, 어떻게든 이를 포장해 대대적인 성과로 홍보하고자 애쓴 형국. 2016년 10월 하순 한국 국방부가 드러낸 행태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토 수준의 핵 협의’를 떠들썩하게 외쳐도 실제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음을 아무도 꿰뚫어보지 못하리라 생각한 것일까. ‘협의체 구성’을 최고 당근으로 꺼내놓은 워싱턴의 계산법이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돼온 행태라는 사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일까. 그 결과는 회담 직전까지 공언했던 합의 내용이 발표 순간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외교적 망신이었다. 이름만 바꿔 발표하면 모두 대단한 성과를 낸 줄로 속을 것이라 생각한 관료주의의 처참한 한계였다. 

    주요 참고문헌 Bader, “Nuclear Weapons Sharing and the German Problem” ; Beach, “THE END OF NUCLEAR SHARING?” ; Fitzpatrick, “How Europeans view tactical nuclear weapons on their continent” ; Gregory, Nuclear Command and Control in NATO: Nuclear Weapons Operations and the Strategy of Flexible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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