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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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에 사랑을 심어요”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 단원들 … 정신력·현지 적응 뛰어나 세계 각국서 환영

  •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5-23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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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에 사랑을 심어요”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유네스코 청년원. 8월 초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15기 해외봉사단원으로 선발된 200여명이 두 달간의 사전 적응훈련을 받고 있는 곳이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이곳의 일정은 밤 9시까지 빡빡하게 이어진다. 현지 언어를 비롯해서 현지 문화, 정신교육, 신체훈련, 국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들이 받는 훈련 내용이다. ‘생활체험’ 과목에서는 현지인처럼 맨발로 다니기, 손으로 밥 먹기, 현지의상 입기 등을 익히기도 한다.

    훈련을 주관하는 KOICA의 김병관 팀장은 “봉사단원으로 지원한 사람들은 평범하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본다면 분명 특이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해외로 자원봉사를 떠난다고 하면 주위의 첫 반응은 ‘훌륭하다’는 칭찬이 아니라 ‘미친 거 아니냐’는 반문이 대부분이라는 게 김팀장의 얘기다. 자신의 앞길과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행동은 그만큼 바보스러울지도 모른다.

    11월 라오스로 파견돼 조림, 수목관리 등을 가르칠 예정인 김윤정씨(32). 차분하고 학구적인 인상의 김씨는 농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1998년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일본에서 1년간 연수할 기회가 생겼다.

    “20개국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연수를 받으면서 세상 어디나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용기를 내어 지원했죠. 라오스는 직장에서 몇 번 가본 경험이 있어 낯설지 않아요. 지금까지 내 앞만 바라보면서 바삐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그런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빨리 현지에 가서 봉사하고 싶어요.”



    김씨는 해외자원봉사를 떠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완강하게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던 일을 꼽았다.

    해외자원봉사자들이 파견되는 나라는 인도네시아 네팔 카자흐스탄 이집트 버마 등 대부분이 생활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이고 이들 나라에서도 오지로 가는 단원이 적지 않다. 물이 부족해 물고기들이 놀고 있는 마을의 공동연못에서 물을 떠 밥을 짓는가 하면, 풍토병인 댕기열이나 말라리아에 걸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해외봉사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 같은 어려움에 대해 한결같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지구촌에 사랑을 심어요”
    95년부터 97년까지 인도네시아의 고등학교에서 전자공학을 가르쳤던 정수훈씨는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댕기열에 걸려 2주일간 병원 신세를 졌다. “병원에서 간호사들과 이야기하면서 인도네시아어가 부쩍 늘어 오히려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힘들었던 점이요? 제 근무지는 수마트라 섬에 있는 ‘방꿀루’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현지로 가기 위해 작은 프로펠러기를 탔어요. 그런데 막 출발하려는 순간 엔진이 폭발할 것 같이 털털거리는 거예요. 그때 내가 여기 왜 왔을까 하고 딱 한 번 후회했다니까요.” 정씨는 “봉사는 내가 좋아서 택한 일인 만큼 웬만한 어려움은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98년부터 지난해까지 파라과이의 중학교에서 체육과목을 가르친 이옥희씨도 “낯선 문화나 환경이 주는 어려움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2년간의 근무를 끝내고도 근무기간을 1년 반 동안 연장, 3년 반 동안 파라과이에서 생활했다. “2년이 지나자 모든 면에서 현지에 익숙해졌는데, 그때 돌아가면 제대로 봉사를 못 하고 가는 듯한 미안함이 있었거든요.”

    이씨는 가장 극복하기 힘들었던 점으로 우리와는 판이한 남미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꼽았다. “남미는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가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아요. 아무리 설득하고 타일러도 공부할 생각을 안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내가 무얼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많았던 해외봉사활동을 끝내고 돌아온 뒤 이씨는 삶에 대한 자신감으로 차 있다. “아무 연고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몇 년씩 살다 왔는데 내 나라 내땅에서 무얼 못하겠어요.”

    “지구촌에 사랑을 심어요”
    KOICA가 모집하는 봉사단원의 연령은 20세에서 61세 사이. 직장에서 몇 년 정도 일하다 지원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봉사단원의 평균 연령은 28, 29세다. 그러나 대학을 갓 졸업한 봉사단원이나 드물게 40, 50대의 중년 단원도 눈에 뜨인다. 토목 전자 유아교육 원예 작물재배 축산 물리치료 간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인 이들은 현지에 파견돼 교사 간호사 컴퓨터강사 자동차정비사 등으로 일하며 전문지식을 전수한다.

    잠업 전문가로 네팔에 파견돼 뽕나무 관리와 누에치기 등을 지도하고 있는 함은혜씨(23)는 22세의 어린 나이로 해외봉사단원에 지원해 네팔로 자원봉사를 떠났다. 지난해 6월 네팔 동부의 ‘이타하리’라는 촌락에 도착한 함씨는 지금은 네팔어는 물론 음식에도 완전히 익숙해진 상태다. 현지인들과 똑같이 찰기 없는 쌀과 ‘달’이라는 이름의 콩죽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처음에는 무더위와 음식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이젠 괜찮아요. 또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한국의 지원으로 지어진 곳이라 이곳에는 ‘한국 사람은 돈이 많다’는 선입관이 퍼져 있어요. 그래서 처음 왔을 때는 모두들 제게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그때는 많이 당황했었죠.” 해외봉사를 통해 그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또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함씨는 나이에 비해 놀랍도록 어른스러웠다.

    그런가 하면, 스리랑카로 파견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는 양병택씨(60)는 한국전력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전산전문가. 그는 다일공동체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해외봉사의 길을 택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쉽지 않은 결심이었지만 역시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양씨의 아내는 오히려 KOICA에 전화를 걸어 “우리 남편을 꼭 뽑아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협조적이었다. “우리가 어려웠을 때 외국의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가 도울 차례 아닙니까. 등산을 하면 산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산 위에 올라가면 보입니다. 해외에 나가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다만 막내가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 2년간이나 집을 비우는 게 좀 맘에 걸리네요.”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할 정도로 건강한 양씨는 매일 새벽 3km씩 달리며 젊은 사람 못지않은 체력을 자랑한다.

    이제는 우리가 도울 차례 … 2년간 위대한 희생

    “지구촌에 사랑을 심어요”
    각국에 파견된 한국 봉사단원들은 뛰어난 정신력과 현지 적응 능력으로 어떤 나라 봉사단원보다 낫다는 말을 듣는다. 현지인에게 구혼을 받는 봉사자들도 허다하다. 실제로 스리랑카에 파견된 한 여성 단원은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마을 촌장의 끈질긴 부탁에 결국 촌장의 아들과 결혼해 현지에 눌러앉기도 했다. 또 귀국한 단원들도 ‘나눔회(KOVA)’라는 모임을 만들어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모임에는 지금까지 KOICA를 통해 해외봉사를 다녀온 1092명 중 800여명이 소속돼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해외봉사단원들이 2년, 또는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땀 흘린 경험을 정작 한국에 돌아와서는 거의 살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몸으로 부딪혀가며 현지어와 문화를 완벽하게 습득한, ‘준비된’ 지역전문가들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들의 경험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경우도 거의 없다. 결국 봉사자들은 앞날에 대한 보장이나 별다른 보상도 없이 2년간의 삶을 온전히 희생해가며 봉사활동에 나서는 셈이다.

    해외봉사자들은 “힘들고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행복했다. 다녀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삶의 한순간 이 같은 용기와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은 확실히 행복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이들의 남다른 의지와 희생정신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보답해주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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