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갑자기 경질된 김경문 NC 다이노스 감독. [동아DB]
2018년 6월 3일은 한국 프로야구가 좀 더 비즈니스에 가까워진 날로 야구사에 남을 겁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감독 야구’ 시대의 그림자가 더욱 희미해진 날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NC 다이노스는 이날 7년 가까이 팀을 이끌었던 김경문(60)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로 NC에서 감독은 공식적으로 현장에서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관리자(manager)’로 권한이 줄었습니다. NC는 아예 새 감독을 선임하는 대신 프런트 수장이던 유영준(56) 단장에게 현장 리더십을 책임지게 했습니다. 프로야구 역사상 시즌 중에 프런트 직원을 감독대행으로 임명한 건 NC가 처음입니다. 물론 프로야구 무대에서 감독은커녕 코치 경력도 없는 인물이 감독대행을 맡은 것 역시 유 대행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유 대행이 처음 감독석에 앉게 된 6월 5일 경기를 앞두고 “구단에서 경기에 개입할 일은 없다”고 못 박은 게 오히려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 대행은 “프런트 야구가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아닙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NC가 선택한 건 프런트 야구가 맞습니다. 그리고 21세기에 프런트 야구를 하는 게 꼭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잘나가는 팀은 프런트 야구를 한다
당장 올해 한화 이글스가 잘나가는 이유도 프런트 야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박종훈(59) 단장은 2016년 취임과 함께 1군과 퓨처스리그(2군)를 분리해 운영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김성근(76) 당시 한화 감독과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결국 김 감독이 물러난 다음에 박 단장은 이상군(56) 감독대행과 협조해 베테랑에게는 휴식을, 유망주에게는 기회를 보장했습니다. 이렇게 프런트가 현장에 ‘개입’한 결과 올해 한화는 선수 육성의 대가라는 김성근 전 감독 재임 시절보다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하게 됐습니다.최근 3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그중 두 차례 우승했고 올해 역시 정규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두산 베어스의 성공도 프런트 야구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NC가 여전히 ‘정의·명예·존중’을 모토로 삼고 있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김경문) 감독 야구에 한계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제 프런트 야구를 해보려 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쿨한’ 선택 아니었을까요. 실제로는 김경문 감독을 사령탑에서 내쫓아놓고 마치 대단히 배려한 것처럼 포장하려 애쓰기보다 이번 선택을 결과로 책임지는 게 확실히 팀 모토에 가까운 일일 테니 말입니다.
김경문 전 감독이 아니었다면 NC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강팀으로 자리 잡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한 시즌 부진하다는 이유로, 그것도 시즌 도중에 지휘봉을 빼앗은 일이 가혹한 처사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한 야구 관계자는 “NC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가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전 감독의 단점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건 ‘가을야구에 약하다’는 점. 두산과 NC를 맡아 팀을 네 번이나 한국시리즈로 이끌었지만 한 번도 정상에 서지 못한 점이 이런 평가를 받는 제일 큰 이유일 겁니다. 그런데 사실 김 전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한 번도 팀을 정규리그 정상으로 이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프로야구에서 현재 같은 방식으로 포스트시즌을 진행한 건 1989년부터. 이후 리그를 둘로 나눠 시즌을 진행한 2000, 2001년을 제외하고 가을야구 무대는 총 27번 열렸습니다. 이 가운데 정규리그 1위 팀이 우승하지 못한 건 딱 네 번(14.8%)밖에 없습니다.
특히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할 수 있었던 데는 삼성 라이온즈의 주축 투수 3명이 불법도박 혐의로 빠진 영향이 컸습니다.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2002년 이후 16년 연속으로 정규리그 우승 팀이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김 전 감독에게 더 필요했던 건 한국시리즈 우승이 아니라 정규리그 챔피언 타이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믿음의 야구’ 다시 빛 볼 수 있을까
황순현 NC 다이노스 대표. [동아DB]
투수 쪽도 마찬가지. 2015~2017년 3년간 리그에 구원투수로 나와 이닝을 가장 많이 소화한 선수는 240이닝을 던진 NC 김진성(33)이었습니다. 이미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선수가 이렇게 많이 던졌으니 올해 평균자책점이 15.75까지 오른 것도 우연만은 아닐지 모릅니다. 같은 기간 200이닝을 던진 구원투수 임창민(33)은 팔꿈치 수술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태. 2015년을 대장암 치료로 보낸 원종현(31) 역시 2016, 2017년에 평균 75이닝을 넘게 던졌고 올해 평균자책점은 6.45까지 오른 상태입니다.
이렇게 앞만 보고 전력 질주했는데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지 못하면 그라운드는 물론, 프런트 오피스도 피로감으로 물들게 마련입니다. 올해 NC 구단 안팎에서 “더는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 들리고 여기저기 구멍 뚫린 모습이 보이는 건 이런 피로감과 무관치 않을 겁니다. 결국 성적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지난해 12월 선임된 황순현 NC 다이노스 대표로서는 뭔가 ‘액션’이 필요하다고 확신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결단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시간만이 알 겁니다. 소위 ‘야구인’ 사이에서는 ‘야구 문외한’인 황 대표가 김 전 감독을 상대로 갑질을 한 것이라는 의견이 아예 정설처럼 굳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황 대표가 오래 몸담았던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황 대표의 인품은 이미 검증이 끝났다. 김택진 구단주(엔씨소프트 대표)가 그를 구단에 보냈을 때는 ‘그린 라이트’를 줬다고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김 전 감독의 미래는 어떨까요. 40, 50대 감독이 대세가 된 ‘프런트 야구 시대’에 제왕적 카리스마가 제일 큰 무기인 그가 다시 지휘봉을 잡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김 전 감독이 NC를 상대한다면 어떤 야구를 펼치게 될까요.
NC가 밤 10시 넘어 보낸 보도자료 한 장은 이렇게 야구가 비즈니스와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