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새 학년이 시작됐을 때 우리 딸 반 아이들은 모두 서른여섯 명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겨우 스물한두 명만 남아 있습니다. 이러다 애들이 다 없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 강남의 압구정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둔 학부형 이모(38·여) 씨의 말이다. 15명의 아이들은 어디에 숨었을까? “조기유학을 간 거죠. 1학기 때 하나 둘씩 나가더니 여름방학 때 대거 빠져나갔어요.”
서울 강남의 초등학생이 사라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초등학교 조기유학생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는 추세로, 특히 서울 강남 초등학생의 조기유학률이 타 지역에 비해 뚜렷하게 높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주호영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조기유학 실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32명당 1명꼴로 조기유학 간 셈
2005년 외국으로 출국한 전국의 초등학생은 모두 1만7761명으로, 226명당 1명꼴로 조기유학을 떠났다. 서울 지역만 본다면 121명당 1명으로 조기유학률은 두 배 가까이 높아진다. 그런데 강남구와 서초구의 50개 초등학교를 관할하는 서울 강남교육청으로 범위를 좀더 좁히면 조기유학률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한다. 5만5498명 중 1710명. 즉, 32명당 1명꼴로 조기유학을 떠난 상태다.
“강남 엄마들은 조금이라도 기회가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나가려는 분위기예요.” 이어지는 이 씨의 말이다. 토플시험에 말하기와 쓰기 과목이 추가되고,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자립형 사립학교가 아예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학생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이 같은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고 한다.
전국 각 지역교육청의 평균 조기유학생 수는 343명. 그러나 서울 강남교육청의 경우 1710명으로, 전국 평균의 5배에 달한다. 지역에 따라 초등학생 조기유학의 빈익빈 부익부 경향이 뚜렷한 셈. 그러나 강남 지역의 50개 초등학교 사이에서도 조기유학의 양극화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지도 참조).
상위 10개 초등학교의 조기유학생 수는 782명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하지만, 하위 10개 초등학교의 조기유학생 수는 45명으로 2.6%에 불과하다. 무려 17배의 차이. 가장 많은 조기유학생을 배출한 대치동의 대곡초등학교는 130명이지만, 대청(일원동)·수서(수서동)·언남(염곡동)초등학교는 각각 1명으로 최하위를 나타냈다.
상위권 학교의 분포는 부촌(富村)의 위치와 일치했다. 대치동의 대곡·대치초등학교, 그리고 한강변 가까이 고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청담(청담동)·압구정(압구정1동)·신동(압구정1동)초등학교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대치동에 위치해 있지만 다가구 연립주택 밀집 지역인 대치4동의 도곡초등학교는 조기유학생이 8명으로 하위권에 속했다.
위화감 조성·학급 분위기 어수선 등 ‘부작용’
가장 일반적인 초등학생 조기유학의 형태는 1~2년 유학한 후 귀국해 국내의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조기유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 대치동 페르마학원 해외사업부 박진영 이사는 “대개 1년을 예상하고 나갔다가 절반은 귀국하고 절반은 현지에 남아 보딩스쿨 진학을 준비한다”고 전했다.
2005년 조기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서울의 초등학생 4090명 중 2713명(66%)이 2년 미만으로 외국에 체류했다. 강남·서초구의 귀국 초등학생의 경우 그 비율이 92%(529명 중 484명)로 더욱 높았다.
가장 전형적인 ‘대치동 조기유학’을 경험한 학부형 정모(40·여)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지난해 당시 5학년이던 큰딸을 캐나다 밴쿠버 근교로 1년간 조기유학을 보냈다.
그의 딸은 캐나다인 가정에 머물면서 초등학교에 다녔고, 방과 후에는 다른 한국 학생들과 함께 한국에서 파견된 학원 강사들에게서 과외수업을 받았다. 과목은 영어, 수학, 국어, 논술 등. 조기유학 중에도 한국 진도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학원에서 ‘CCTV 서비스’를 제공한 덕분에 정 씨는 아침마다 TV를 틀어 캐나다에서 학원 수업을 받는 딸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1년 동안 들어간 비용은 모두 4500만원. 정 씨는 “대치동에서는 웬만하면 다들 나갔다 오는 분위기”라고 했다. “아이를 혼자 보내거나, 아니면 조기유학 떠나는 이웃 엄마에게 자기 아이를 맡기기도 해요. 딸 둘을 데리고 호주에 간 제 친구는 동네 아이 셋을 더 데리고 나갔어요.”
조기유학 때문에 강남 초등학교의 아이들이 속속 사라지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전체 초등학생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치초등학교의 경우 전교생 수가 2000년 1080명에서 2005년 1673명으로 오히려 600명 가까이 늘었다. ‘대치동 유학’을 목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오는 초등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반은 2학기 시작할 때 외국에서 들어온 애가 저 포함해서 3명이고요, 지방에서 전학 온 애는 2명이에요. 조기유학을 간 애는 4명이고요.”조기유학을 떠났다가 얼마 전 복학한 대치초등학교 김모(12) 양의 말이다.
그러나 강남의 초등학교들에서는 조기유학으로 인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대곡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 전학 오는 학생이 늘 있으니까 학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교사는 “며칠 결석을 해서 알아보면 학교에 알리지도 않은 채 조기유학을 떠난 경우도 종종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일부 학생들의 조기유학이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며 “남은 아이들은 ‘우리 부모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며 주눅 들어한다”고 덧붙였다. 한 학부모는 “지난해 단짝인 친구가 조기유학을 가면서 딸아이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올해는 친구들이 하도 많이 나가니까 무덤덤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주호영 의원은 “공교육 불신이 조기유학을 양산하는 것이 현실인 만큼 공교육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둔 학부형 이모(38·여) 씨의 말이다. 15명의 아이들은 어디에 숨었을까? “조기유학을 간 거죠. 1학기 때 하나 둘씩 나가더니 여름방학 때 대거 빠져나갔어요.”
서울 강남의 초등학생이 사라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초등학교 조기유학생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는 추세로, 특히 서울 강남 초등학생의 조기유학률이 타 지역에 비해 뚜렷하게 높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주호영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조기유학 실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32명당 1명꼴로 조기유학 간 셈
서울 강남의 일부 초등학교는 조기유학으로 인해 빈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강남 엄마들은 조금이라도 기회가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나가려는 분위기예요.” 이어지는 이 씨의 말이다. 토플시험에 말하기와 쓰기 과목이 추가되고,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자립형 사립학교가 아예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학생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이 같은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고 한다.
전국 각 지역교육청의 평균 조기유학생 수는 343명. 그러나 서울 강남교육청의 경우 1710명으로, 전국 평균의 5배에 달한다. 지역에 따라 초등학생 조기유학의 빈익빈 부익부 경향이 뚜렷한 셈. 그러나 강남 지역의 50개 초등학교 사이에서도 조기유학의 양극화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지도 참조).
상위 10개 초등학교의 조기유학생 수는 782명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하지만, 하위 10개 초등학교의 조기유학생 수는 45명으로 2.6%에 불과하다. 무려 17배의 차이. 가장 많은 조기유학생을 배출한 대치동의 대곡초등학교는 130명이지만, 대청(일원동)·수서(수서동)·언남(염곡동)초등학교는 각각 1명으로 최하위를 나타냈다.
상위권 학교의 분포는 부촌(富村)의 위치와 일치했다. 대치동의 대곡·대치초등학교, 그리고 한강변 가까이 고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청담(청담동)·압구정(압구정1동)·신동(압구정1동)초등학교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대치동에 위치해 있지만 다가구 연립주택 밀집 지역인 대치4동의 도곡초등학교는 조기유학생이 8명으로 하위권에 속했다.
위화감 조성·학급 분위기 어수선 등 ‘부작용’
가장 일반적인 초등학생 조기유학의 형태는 1~2년 유학한 후 귀국해 국내의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조기유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 대치동 페르마학원 해외사업부 박진영 이사는 “대개 1년을 예상하고 나갔다가 절반은 귀국하고 절반은 현지에 남아 보딩스쿨 진학을 준비한다”고 전했다.
2005년 조기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서울의 초등학생 4090명 중 2713명(66%)이 2년 미만으로 외국에 체류했다. 강남·서초구의 귀국 초등학생의 경우 그 비율이 92%(529명 중 484명)로 더욱 높았다.
가장 전형적인 ‘대치동 조기유학’을 경험한 학부형 정모(40·여)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지난해 당시 5학년이던 큰딸을 캐나다 밴쿠버 근교로 1년간 조기유학을 보냈다.
그의 딸은 캐나다인 가정에 머물면서 초등학교에 다녔고, 방과 후에는 다른 한국 학생들과 함께 한국에서 파견된 학원 강사들에게서 과외수업을 받았다. 과목은 영어, 수학, 국어, 논술 등. 조기유학 중에도 한국 진도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학원에서 ‘CCTV 서비스’를 제공한 덕분에 정 씨는 아침마다 TV를 틀어 캐나다에서 학원 수업을 받는 딸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1년 동안 들어간 비용은 모두 4500만원. 정 씨는 “대치동에서는 웬만하면 다들 나갔다 오는 분위기”라고 했다. “아이를 혼자 보내거나, 아니면 조기유학 떠나는 이웃 엄마에게 자기 아이를 맡기기도 해요. 딸 둘을 데리고 호주에 간 제 친구는 동네 아이 셋을 더 데리고 나갔어요.”
조기유학 때문에 강남 초등학교의 아이들이 속속 사라지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전체 초등학생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치초등학교의 경우 전교생 수가 2000년 1080명에서 2005년 1673명으로 오히려 600명 가까이 늘었다. ‘대치동 유학’을 목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오는 초등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반은 2학기 시작할 때 외국에서 들어온 애가 저 포함해서 3명이고요, 지방에서 전학 온 애는 2명이에요. 조기유학을 간 애는 4명이고요.”조기유학을 떠났다가 얼마 전 복학한 대치초등학교 김모(12) 양의 말이다.
그러나 강남의 초등학교들에서는 조기유학으로 인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대곡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 전학 오는 학생이 늘 있으니까 학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교사는 “며칠 결석을 해서 알아보면 학교에 알리지도 않은 채 조기유학을 떠난 경우도 종종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일부 학생들의 조기유학이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며 “남은 아이들은 ‘우리 부모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며 주눅 들어한다”고 덧붙였다. 한 학부모는 “지난해 단짝인 친구가 조기유학을 가면서 딸아이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올해는 친구들이 하도 많이 나가니까 무덤덤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주호영 의원은 “공교육 불신이 조기유학을 양산하는 것이 현실인 만큼 공교육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