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중요격관제대회 우승자인 공준용 중위와 32전대의 박천신, 31전대의 서종대 통제대장(왼쪽부터).
“로저(Roger).”
작전에 들어간 전투기 조종사가 무선 교신하는 영화 장면을 옮겨본 것이다. 조종사와 교신하는 사람은 흔히 ‘관제사’로 불리는 방공무기통제사. 이 대화를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조종사 : 알았다. 표적(적기) 발견. 표적 발견.
방공무기통제사 : 알았다. 미사일 안전위치 확인. 발사 후 서쪽으로 이탈.
조종사 : 알았다.
오산과 대구에 중앙방공통제소
전투기에는 레이더가 탑재돼 있다. 그런데 왜 전투기 조종사는 자기 레이더로 적기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공무기통제사의 지시를 받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전투기 탑재 레이더로 표적을 탐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 설치한 레이더는 출력이 커서 360도 전방위로 반경 수백km 하늘에 떠 있는 물체를 찾아낸다. 하지만 전투기 탑재 레이더는 소형이어서 전투기 앞부분(100도 남짓)만, 그것도 수십km 정도만 탐지한다.
적기가 전투기 레이더로는 발견해낼 수 없는 먼 거리에 있을 때, 방공무기통제사는 적기의 방향과 거리, 고도를 불러줌으로써 ‘근시안’인 전투기가 적기와 조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조종사가 육안이나 자체 레이더로 적기를 발견했다고 해야 비로소 조종사에게 작전 임무를 인계한다. 그러나 그냥 빠지는 게 아니라 ‘미사일 공격 후엔 서쪽으로 빠지는 것이 안전하다’는 등 훈수를 일러주고 물러난다.
7월5일 북한이 동해가 아닌 남쪽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PAC-3을 보유한 주한 미 육군이 대응해주지 않는다면, 한반도는 중동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전쟁터로 돌변했을 것이다. 미사일은 마하 5 이상으로 비행하는데, 이렇게 빠른 물체는 최신형 패트리어트인 PAC-3의 레이더 체계로만 탐지해 요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공군은 PAC-3 시스템이 없어서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탐지, 요격하기가 어렵다. 현실주의자들이 한미연합방위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사일 공격이 끝나면 북한은 더욱 정밀한 공격을 위해 각종 군용기를 침투시킬 가능성이 높다. 마하 2 정도로 날아오는 북한 공군기를 막는 것은 한국군도 해낼 수 있다. 이때 가장 바빠지는 것이 오산과 대구에 있는 MCRC(Master Control · Reporting Center)라는 이름의 중앙방공통제소다.
공군은 전국에 반경 수백km의 하늘을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를 설치해놓고 있다. 이 레이더들은 거리가 가까워서 중복 감시를 한다. A 레이더가 포착하지 못한 것을 B나 C 레이더가 잡아낼 수 있도록 한 것. 이 정보는 중앙방공통제소로 집중된다. A와 B, C 레이더가 탐지한 것이 희미해도 중앙방공통제소에는 모든 정보가 모이기 때문에 분명한 정보를 생산할 수 있다.
항로관제를 하는 인천공항 관제탑.
정보가 없는 항적 중에서 빠르게 한반도로 이동해 오는 것이 있으면 ‘위협 항적’으로 판단해 대응에 들어간다. 공군에서 많이 쓰는 용어 가운데 ‘요격(邀擊)’이 있다. 요격은 수상한 항적을 향해 아군기를 보내 ‘위협 물체인지 귀순해 오는 적기인지’ 등을 확인하고, 위험 물체로 확인되면 격파(격추)하거나 쫓아버리는 것을 말한다. 요격 관제를 하는 것이 바로 중앙방공통제소에서 일하는 방공무기통제사의 주 임무다.
우수한 인력 확보 조종사만큼 중요
오산과 대구의 중앙방공통제소는 똑같은 정보를 다룬다. 때문에 어느 한 곳이 파괴되거나 고장 나도 다른 통제소로 한반도 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 중앙방공통제소는 소장을 단장으로 한 30방공관제단이 담당하는데(현 단장은 준장), 이 부대 밑에 대령이 지휘관을 맡은 두 개의 전대(戰隊)가 있어 각각 오산과 대구 중앙방공통제소를 운영하고 있다.
방공무기통제사는 2차원인 화면을 보며 조종사가 직면한 3차원의 공간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조종사는 자기 비행기 조종에만 집중하지만 방공무기통제사는 최고 8대의 전투기를 동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적기의 움직임까지 염두에 둬야 하므로, 방공무기통제사는 훨씬 더 복잡한 상황에 놓인다. 조종사에게 바르고 확실한 정보를 전달하려면 발음도 정확해야 한다. 우수한 방공무기통제사의 확보는 기량이 뛰어난 조종사를 확보하는 일만큼 중요하다.
7월24일 공군작전사령부는 공중요격관제대회 입상자 수상식을 가졌다. 이 대회는 탑건(top gun)을 가리는 보라매 공중사격대회와 더불어 공중전투 분야의 최고 권위자를 뽑는 대회다. 한 달 가까이 열린 이번 대회의 우승은 사관후보생으로 임관한 공준웅(27) 중위가 차지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공 중위는 꼼꼼한 관제로 공사 출신 장교들을 제치고 단기 장교로는 처음으로 우승하는 기록을 남겼다.
방공무기통제사들은 머리로 싸우는지라 ‘강한 근육’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2003년 대회에서는 여군인 정현숙 대위가 우승하기도 했다. 미 공군은 방공무기통제사가 확보한 정보를 사람 목소리가 아닌 데이터링크 시스템으로 전달하므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중앙방공통제와 전투기 사이에 L-16 같은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설치하고, S-밴드 레이더로 불리는 PAC-3 시스템을 확보한다면, 비록 탄도미사일 발사 감지 위성까진 갖추지 못했더라도(이 위성은 현재 미국과 러시아만 갖고 있다), 한국은 한국식 MD(전투기 및 미사일 방어) 체계를 갖추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공(防空) 시스템을 갖춰나갈 주역이 방공관제단과 방공포병이다. 전투기 분야에만 집중된 공군의 관심이 두 부대로 이동할 수 있느냐란 문제가 곧 북한이 깃대령에서 미사일을 쏘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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