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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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공복의 자세에 대하여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7-07-16 18: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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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공무원이 되려고 했다. 행정고시.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인 이번 단체교섭에서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하 공노총)이 폐지를 주장한 바로 그 고시제도를 통해 말이다. 어쩌다 진로를 언론계로 틀었지만, 이후에도 묵묵히 공직의 소임을 다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인간적 신뢰와 경의를 느꼈고, 때로는 무척 감격스러워 그런 내색을 은연중 비치기도 했다. 공복(公僕)을 자처한, 그들 나름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복(公僕)이 때로 공복(空腹)으로도 변할 수 있음을 이번에 깨닫고 씁쓰레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마치 신입기자 시절 자주 목격했던, 오전에 잠시 결재하고 점심식사를 마친 뒤엔 고스톱 판을 벌이거나 사우나로 직행하는 늙수그레한 고참 사무관들이 떼로 부활한 듯한 느낌이랄까.

    공노총이 협상 상대인 정부 측에 제시한 단체교섭 요구사항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진정한 공복들을 욕되게 하는 것들이 상당수다. 예를 들어보자. ‘55세 이상으로 20년 이상 근무한 6급 이하 공무원’에게 지급하라는 ‘원로수당’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공노총 수석부위원장조차 “그 근거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공무원 노사관계에 정통한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자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했다. 원로(元老)는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해 경험이 풍부하고 공로가 많은 사람을 말한다. 20년 이상 봉직했다면 원로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렇다면 민간 부문에도 원로는 즐비하지 않은가! 그 ‘원로’들이 그런 희한한 명목의 수당을 받고 있던가.

    “광복 이후 첫 단체교섭인 만큼 요구사항이 많다. 공무원 개혁의 첫걸음으로 이해해달라.” 공노총 수뇌부의 항변이 전적으로 그릇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노총 산하 여러 공무원 노조들의 요구를 한꺼번에 수렴하자니 과도한 내용들도 포함됐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단체교섭 요구안을 최종 확정하기 전에 공노총 스스로 그런 요구들을 마땅히 걸러냈어야 교섭에 임하는 진정성을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공무원 개혁’이란 것이 정년을 보장받고 안정된 공무원연금의 수혜를 누리는 기존 혜택에 더 많은 집단적 이익을 덤으로 부려놓는 아전인수(我田引水)를 뜻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외치는 것은 공복(公僕)의 도리가 아니다. 이는 거스 히딩크 같은 승부사들이나 던지는 수사(修辭)일 뿐. 공직사회에 더 어울리는 것은 공복(空腹)이 아니라 공심(公心·사사로움이 없는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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