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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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실력으로 졌다면 덜 억울하지”

김진선 강원도지사 “대륙간 이해와 힘의 논리에 당해 … 재도전 여부는 미정”

  • 김진선 강원도지사

    입력2007-07-18 0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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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다시 불발로 끝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꿈. 그 사그라진 꿈의 한가운데에 지난해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두 번 울지 않겠다”던 김진선(61) 강원지사가 있다. 8년 전 동계올림픽 유치 아이디어를 직접 낸 주인공인 그가 이번 유치 실패에 대한 진솔한 소회를 담은 글을 ‘주간동아’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큰선물을 안고 터질 듯한 마음으로 돌아왔어야 할 길이었습니다. 대한민국호(號)의 새로운 성장 동력에 불을 지피는 길이어야 했습니다. 과테말라에서 ‘소치’라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오열하는 교민들의 손을 잡았을 때, 인천공항 트랩을 밟았을 때, 강원도 춘천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을 때, 도청 앞에서 먹먹한 표정으로 맞아주던 시민과 동료들을 봤을 때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결과 앞에서 그마저도 값싸고 흔한 사치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국민께 송구하고 고마운 마음 교차

    “평창, 실력으로 졌다면 덜 억울하지”

    7월5일(한국시각) 과테말라시티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개최지 발표식에서 러시아 소치로 결정되자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침통한 얼굴로 발표장을 나오고 있다.

    먼저 ‘주간동아’ 지면을 빌려 뜨거운 사랑과 성원을 보내주신 도민과 국민께 송구하고 면목 없다는 말씀부터 올립니다. 예상 밖의 결과에 느꼈을 실망과 상실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특히 현장에서 함께 김밥을 먹으며 뛰어주신 노무현 대통령님께도 각별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아쉬움과 안타까움 속에서 절절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고 있을 정부 관계자와 국회, 각 정당, 이건희 박용성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님,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님과 각 경기단체 대표, 후원 기업체, 각 언론사, 유치단, 윤세영 후원회장님을 비롯한 범도민 후원회원과 출향도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서포터스인 ‘동사모’(동계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님 등 도와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

    도지사로 동계올림픽을 처음 구상하고 제안해 지난 8년간 정말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국제스포츠계에서 ‘올림픽 가버너’라는 소리를 들으며 2010 유치 때 문제점으로 지적된 경기장 컨셉트를 수정하고 선수와 경기 중심의 환경을 조성했으며, 약속했던 드림 프로그램도 성실하게 진행했습니다. 또한 평창의 개최 조건, 명분, 비전, 유산 등 국제무대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면밀히 분석하고 완벽하게 준비했으며, 실사 결과와 반응을 보면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과테말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렇지만 현지에서 본 러시아 소치는 지역도시라는 개념보다는 푸틴 대통령의 특별한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것이 유치활동 내내 찜찜하게 남았습니다. 1차 투표에서 잘츠부르크가 떨어지고 소치와 결선을 치를 때 그 불안감은 증폭됐습니다. 잠정적으로 우리에게 기울어진 것으로 판단했던 IOC 위원들과 악수를 나눌 때도 등골이 쭈뼛한 이상기류를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스포츠 관계자와 외신들이 평창 유치를 단언했음에도, 내심 마음 졸이고 걱정하던 대로 결과는 소치의 승리였습니다.



    지금도 자다가 속이 아려 벌떡 일어나 꿈인지 생시인지 한참을 가늠해야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달려온 인생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막막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번 결과는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차라리 개인 실력으로 시험을 쳐서 떨어졌다면 모르지만, 대륙간 이해와 자국 힘의 논리, 개인적 관계 등에 의해 투표로 결정되는 특별한 메커니즘이 작용해 더 안타까울 뿐입니다. 패인에 대한 이런저런 분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치를 주도했던 나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깊은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우리가 제시했고 뛰었던 모든 것을 생각하면 과연 진정한 올림피즘과 올림픽 무브먼트가 무엇인지 되새김질하게 됩니다.

    우리는 4년 전 2010 유치전을 벌일 때 “어디서 슬그머니 나타나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전한 외신들의 보도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눈물겨운 도전이 변방 강원도 평창을 세계지도에 당당히 올려놨으며, 아름다운 실패가 다시금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산이 있으면 산에서, 밭이 있으면 밭에서, 그리고 바다가 있으면 바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평소 신념이 강원도의 자연 특성과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접점을 찾아낸 것이기도 합니다.

    “평창, 실력으로 졌다면 덜 억울하지”

    2014년동계올림픽 개최지 최종선정에서 탈락하자 어른아이할 것없이 깊은 슬픔에 빠진 평창시민들.

    졌지만 평창의 힘과 영향력은 세졌다

    이번 실패를 두고 많은 분께서 강원도 발전에 우려를 표명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이 헛되이 버려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들을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주저앉게 되면 이는 모두 맞는 말이 될 것입니다. 패자는 실패를 걸림돌로 여기고, 승자는 디딤돌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비록 유치엔 실패했지만 보내주신 성원과 함께 아파한 고통만큼 강원도와 평창의 키는 훌쩍 자랐습니다.

    이번 결과를 두고 이미 세계 스포츠계에서는 대회 선정방식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명실상부한 지구촌 축제 본연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만큼 평창의 힘과 영향력이 커졌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지금 숲은 여름을 맞아 한층 짙어지고 있습니다. 가지와 잎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모든 것이 맞물려 울창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아서 처음엔 강원도 발전에 대한 ‘한(恨)’의 차원에서 시작했던 도전이 이제는 국가적·국민적 어젠다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나 혼자의 꿈이었다가, 마침내 모두가 함께 힘을 모으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지금 국내외에서는 재도전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국제 스포츠계에서 쌓인 엄청난 자산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유치 재도전을 선언하라는 조언이 있는가 하면, 좀더 신중하자는 얘기도 들립니다. 이에 대한 지역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로서는 뭐라 얘기할 처지가 못 됩니다. 다만 어떠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더욱 견결한 소명의식으로 임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다”라는 괴테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받아들이긴 힘들겠지만 작금의 결과를 인정하고 다시 한 번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까지도 다 녹여버리는 열정을 지필 때입니다. 하나의 어둠을 사르고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더 이상 실패의 그늘에 드리워진 슬픔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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