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는 한국인에게 ‘마음의 심연(深淵)’이다. ‘동해(East Sea)냐, 일본해(Sea of Japan)냐’는 표기 논란 하나만 봐도 동해를 둘러싼 한-일간 자존심 갈등은 간단치 않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정책위원회가 지난 1월30일 세계지도에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기로 한 결정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민감한 지정학적 바다라는 측면 외에도 동해는 21세기 경제와 삶의 질(보건-환경), 국가안보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해양이다.
이런 동해에 대해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애국가로 외쳐 부르는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지나치게 동해의 ‘상징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동해가 처한 실제 상황과 변화의 추이에 대해선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난 1월 국내 언론에는 동해와 관련한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 내용은 이렇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동해의 해류가 약해져 바다 깊은 곳에 ‘죽음의 해역’(dead zone)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으며, 해저 2500m의 산소비율도 떨어져 앞으로 350년 이내에 산소량이 제로(0)가 될 것이다.” 일본 규슈 응용역학연구소 윤종환 박사(해양물리학)가 자신의 연구보고서를 통해 밝힌 이런 주장은 같은 달 영국 과학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에도 발표됐다. 이는 물론 하나의 가설이다. 하지만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산소가 결핍된 환경은 생물이 존재할 수 없는 파국적 상황, 곧 ‘동해의 죽음’을 의미한다. 과연 동해는 죽어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동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산소가 더 풍부해질 것이다.” 동해연구 전문가인 서울대 김구 교수(물리해양학)는 “350년이란 기간은 해양환경 변동이 극심한 동해의 장래를 예측하기엔 현실성이 떨어지는 너무 긴 시간이어서 윤박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진단한다.
변화속도 대양보다 10배나 빨라
이와 관련해 ‘크림스’(CREAMS·Circulation Research of East Asian Marginal Seas)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지난 93년 시작된 크림스는 한-일-러 3국 해양학자들이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공동참여한 ‘동아시아 연해 해양순환 연구과제’. 1단계(93∼97년) 연구에서 사상 최초로 표층에서 해저까지 동해에 관한 정밀관측을 수행하고 현재 2단계(98년∼2002년)가 진행중이다.
크림스 학술종합탐사 결과에 따르면, 350년은 고사하고 2030년경만 돼도 동해엔 산소 농도가 희박한 저층수(동해 바닷물을 이루는 3개의 서로 다른 층 중 가장 깊은 수심 2400m 이하의 바닷물)와 심층수(수심 1700∼2400m 사이의 바닷물)가 크게 줄어드는 반면, 상대적으로 산소가 풍부한 중앙수(해수면에서 수심 1700m까지의 바닷물)가 많아져 동해 전체 산소량은 오히려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것. 이런 분석은 바다 표층에서 심층으로 가라앉는 양만큼의 물이 다시 표층으로 올라와 하나의 순환이동 고리를 만드는, 이른바 ‘컨베이어 벨트’(48쪽 상자기사 참조) 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국내 대다수 학자들에게 새로운 학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적어도 산소의 관점에서만큼은 ‘적신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윤박사의 주장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해의 현 상황이 결코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전세계 바다는 모두 조금씩 변하고 있다. 문제는 동해의 변화속도가 대양(大洋)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히 빠르다는 데 있다. 즉 대양에서 1000년 걸려 이뤄질 해수 순환이 동해에서는 단지 100년 만에 완료될 정도로 ‘작은 대양’으로서의 독특한 연구가치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를 부정하는 학자는 없다. 되레 한걸음 더 나아가 불과 30, 40년 뒤의 변화조차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운 바다’가 바로 동해라는 데 주목한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상반된 거시적 가설의 진위를 차치하더라도 최근 동해 연근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이상 징후’들은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우선 두드러진 변화는 최근 곧잘 매스컴에 오르내린 한류성 어종의 감소. 지난 십수년간 동해에서 명태, 도루묵 등 한류성 어종이 급감한 데 비해 오징어, 꽁치 등 난류성 어족 어획은 크게 증가했다. 2000년 한 해 명태 어획량은 766t. 반면 오징어는 22만t에 이른다. 지난 81년 명태 최대 어획량이 15만7000t, 80년 오징어 어획량이 5만t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변화다. 더욱이 독도 근해에서는 아열대성 어종까지 발견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국립수산진흥원(이하 수진원) 동해수산연구소 전영열 연구관은 “어종 변화는 주로 겨울철 동해의 수온 상승 때문”이라며 “최근 30년간 해수면 온도가 0.6도 상승하는 등 동해의 수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1주일간(2001년 2월25일∼3월3일)의 수온만 보더라도 주문진이 평년 대비 3도, 포항은 1.5도, 부산은 0.5도가 높다.
그러나 이처럼 어획고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수온 상승의 원인에 대한 명확한 연구 결과는 없다. 막연히 지구 온난화와 관련 있다고 추정할 뿐 일시적 변화인지, 새로운 장기변화의 시작인지가 불분명한 것이다. 하지만 해수 온도는 물덩어리(수괴)가 움직이는 해류에 따라 변하고 해류 또한 시시각각 그 방향과 크기가 변하므로 수온 변화를 예측하려면 반드시 해류의 장기변동을 알아내야만 한다.
울진 원전의 냉각수를 끌어들이는 취수구에 종류 미상의 해양생물이 끼여 취수가 불가능해지자 안전을 위해 발전을 중단한 사례가 수차례 발생한 것도, 외래종 바다 동식물의 침입에 따른 생태계 파괴도 동해의 해양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 역시 기초 데이터의 부족으로 아직 원인 규명을 못하고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발생한 고등어떼의 김 양식장 습격 사건의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양식 어민 67가구가 5억여원의 피해를 본 이 ‘전례 없는’ 현상에 대해 피해의 직접 원인은 고등어떼가 김을 먹어치웠기 때문이란 결론이 났지만 ‘어업재해심의협의회’는 농어업재해대책법상 규정된 ‘자연재해’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결국 어민들은 피해를 보상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 부산시 수산진흥과 관계자는 “수온 상승에 따른 일시적인 고등어군 형성 때문인지, 양식장 로프 시설에 붙은 갑각류를 먹으려 고등어떼가 출현한 것인지, 탐식성 어류인 고등어가 물결에 흔들리는 김 포자를 먹어치운 것인지, 몇 가지 가능성만 추정해볼 뿐 아직 확실한 인과관계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렇듯 동해에서 잇따르고 있는 몇몇 국지적 현상에 대한 분석조차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크림스가 한반도와 일본 열도,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둘러싸인 동해의 전 해역을 관찰조사한 첫 케이스라면, 아쉽게도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국내 동해 연구는 기껏해야 독도(또는 울릉도) 해역까지의 연근해에만 치중돼 극히 제한적이다. 그것도 대부분 수산자원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수심 500m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동해의 평균 수심은 1550m에 달하고 가장 깊은 곳은 무려 3700m에 이른다.
“미시적 접근이 문제다. ‘바닷가를 노니는’ 수준의 좁은 연구는 때로 장기 해양변동을 가늠해야 할 진취적 연구까지 가로막는다. 동해의 미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심층 바다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한국해양연구원 변상경 박사(한국해양과학위원회 부위원장)는 “국내 대표적 해양연구기관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수진원의 정기적인 자료수집 관측점을 보면 조사대상 해역은 동해 전역의 20분의 1 가량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물론 한국해양연구원이 간행한 해양자료집에 나타난 조사해역도 수진원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해양수산부(이하 해양부)가 밝히는 국내 해양조사선은 모두 25척. 그러나 대다수가 학생들의 실습과 훈련을 목적으로 한 까닭에 소형이다. 심해 관측에 필수적인 1500t급 이상 조사선은 ‘온누리’호(해양연구원 소속) 등 3척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의 해양조사는 수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조선총독부 수산과가 1917년 실시한 정선해양관측을 그 효시로 꼽는다. 그러나 현대적 조사가 시작된 60년대 이후에도 연근해를 제외하곤 아직 이렇다 할 연구성과가 없다. 해양-수산연구 전문인력도 1941년 개교한 부산수산대(현 부경대)와 1968년 이후 서울대 등 13개 대학에서 배출한 600여명(박사급 이상) 정도에 머물고 있다. 96년 해양부 발족으로 정부의 해양업무가 일원화되면서부터 수진원과 국립해양조사원, 해양경찰청, 한국해양연구원 등에서 해양조사를 주로 맡고 있다.
물론 돌아보면, 동해 전역에 대한 연구 관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1980년 당시 서울대 교수진이 수로국(현 국립해양조사원)과 협력해 독도 근해역 특별조사계획을 수립한 적이 있지만 정부 관련부처간 협의과정에서 취소됐다. 이때부터라도 동해 전역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철저히 했더라면 한-일어업협정에서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란 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 축적된 동해 연구 데이터가 빈약한 건 당연하다. 해양 선진국과의 교류도 몇몇 개별 학자 차원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한국해양연구원 유신재 박사(해양생태학)는 “모든 해양연구는 자료수집이 그 기초다. 거시적 시각에서 동해 전역에 걸친 광역 데이터를 빨리 확보하지 않으면 미비한 자료가 미비한 연구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기초자료 부족은 때로 뼈아픈 결과를 낳는다. 지금은 잊혔지만, 98년 북한 무장간첩의 동해 침투시 간첩 모선 수색과 침투경로를 역추적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서 가장 필수적인 해당 해역의 해류 유속조차 추정해볼 수 없었던 사실은 기초자료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 때문에 최근엔 남북한간 해양연구 협력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수진원 해양연구과 서영상 연구관은 “동해는 북한, 일본, 러시아와 해양경계가 중첩돼 어느 한 국가의 해역 조사로만 전체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인접국과의 학술교류와 공동연구가 절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북 공동연구는 98년 함경남도 신포 부근 원전 건설과 관련해 양측 학자들이 500t급 ‘이어도’호에 승선해 주변 해양환경조사를 실시한 것이 전부. 하지만 바닷물엔 국경이 없다. 여름철 동해 연안 저층에 나타나는 냉수대는 가깝게는 북한의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멀게는 극동 러시아의 냉수가 남하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이런 냉수대 출현이 어장 상황과 날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관련 연구는 아직 피상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동해 연구와 관련한 또다른 문제는 미미한 기초자료들마저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는다는 점. 동해가 과거에도 지금처럼 ‘그 어떤’ 순환과정(어떤 순환인지 알 수 없지만)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동안의 변화 상황에 대한 자료는 전무하다. 이는 국내 동해 연구가 주로 수산과 항해 안전이란 상업적 고려에 치우친 결과, 관련 기관들이 공동조사를 실시해 자료를 생산-공유하는 공조체제가 구축되지 않은 탓이다. 때문에 학자들은 “해양수산부엔 ‘해양’은 없고 ‘수산’만 있다”는 비판을 종종 해왔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99년 정부가 국가지정연구실(NRL)의 하나로 해양순환계 연구실(실장 김경렬·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을 선정해 5년간 동해 연구에만 전념토록 지원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 현재 이 연구실은 동해를 연속 관측할 수 있는 첨단 부표 개발 및 실용화에 전력하고 있으며, 동해가 지금까지 변화해온 양상을 분석하는 한편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동해 해수의 나이(해수가 바다 표면층을 떠나 바닷속을 움직인 시간)를 측정하는 ‘컨베이어 벨트’ 추적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다. 또 최근 수진원이 ‘특정과제 프로젝트 연구팀’을 가동해 동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등 가시적 변화가 미약하나마 시작되고 있어 다소 위안을 주고 있다.
과연 동해는 어떤 양상으로 변해갈까. 동해의 ‘미래’에 대한 학자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따라서 장래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살아 꿈틀거리는’ 동해 환경 변동에 대한 장기적 연구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과제’가 됐다. 아무리 “동해는 우리 바다”라고 외쳐본들 동해의 ‘진정한 소유자’는 동해를 더 잘 아는 존재일 뿐이다. 국내외 해양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런 동해에 대해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애국가로 외쳐 부르는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지나치게 동해의 ‘상징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동해가 처한 실제 상황과 변화의 추이에 대해선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난 1월 국내 언론에는 동해와 관련한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 내용은 이렇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동해의 해류가 약해져 바다 깊은 곳에 ‘죽음의 해역’(dead zone)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으며, 해저 2500m의 산소비율도 떨어져 앞으로 350년 이내에 산소량이 제로(0)가 될 것이다.” 일본 규슈 응용역학연구소 윤종환 박사(해양물리학)가 자신의 연구보고서를 통해 밝힌 이런 주장은 같은 달 영국 과학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에도 발표됐다. 이는 물론 하나의 가설이다. 하지만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산소가 결핍된 환경은 생물이 존재할 수 없는 파국적 상황, 곧 ‘동해의 죽음’을 의미한다. 과연 동해는 죽어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동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산소가 더 풍부해질 것이다.” 동해연구 전문가인 서울대 김구 교수(물리해양학)는 “350년이란 기간은 해양환경 변동이 극심한 동해의 장래를 예측하기엔 현실성이 떨어지는 너무 긴 시간이어서 윤박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진단한다.
변화속도 대양보다 10배나 빨라
이와 관련해 ‘크림스’(CREAMS·Circulation Research of East Asian Marginal Seas)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지난 93년 시작된 크림스는 한-일-러 3국 해양학자들이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공동참여한 ‘동아시아 연해 해양순환 연구과제’. 1단계(93∼97년) 연구에서 사상 최초로 표층에서 해저까지 동해에 관한 정밀관측을 수행하고 현재 2단계(98년∼2002년)가 진행중이다.
크림스 학술종합탐사 결과에 따르면, 350년은 고사하고 2030년경만 돼도 동해엔 산소 농도가 희박한 저층수(동해 바닷물을 이루는 3개의 서로 다른 층 중 가장 깊은 수심 2400m 이하의 바닷물)와 심층수(수심 1700∼2400m 사이의 바닷물)가 크게 줄어드는 반면, 상대적으로 산소가 풍부한 중앙수(해수면에서 수심 1700m까지의 바닷물)가 많아져 동해 전체 산소량은 오히려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것. 이런 분석은 바다 표층에서 심층으로 가라앉는 양만큼의 물이 다시 표층으로 올라와 하나의 순환이동 고리를 만드는, 이른바 ‘컨베이어 벨트’(48쪽 상자기사 참조) 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국내 대다수 학자들에게 새로운 학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적어도 산소의 관점에서만큼은 ‘적신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윤박사의 주장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해의 현 상황이 결코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전세계 바다는 모두 조금씩 변하고 있다. 문제는 동해의 변화속도가 대양(大洋)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히 빠르다는 데 있다. 즉 대양에서 1000년 걸려 이뤄질 해수 순환이 동해에서는 단지 100년 만에 완료될 정도로 ‘작은 대양’으로서의 독특한 연구가치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를 부정하는 학자는 없다. 되레 한걸음 더 나아가 불과 30, 40년 뒤의 변화조차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운 바다’가 바로 동해라는 데 주목한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상반된 거시적 가설의 진위를 차치하더라도 최근 동해 연근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이상 징후’들은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우선 두드러진 변화는 최근 곧잘 매스컴에 오르내린 한류성 어종의 감소. 지난 십수년간 동해에서 명태, 도루묵 등 한류성 어종이 급감한 데 비해 오징어, 꽁치 등 난류성 어족 어획은 크게 증가했다. 2000년 한 해 명태 어획량은 766t. 반면 오징어는 22만t에 이른다. 지난 81년 명태 최대 어획량이 15만7000t, 80년 오징어 어획량이 5만t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변화다. 더욱이 독도 근해에서는 아열대성 어종까지 발견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국립수산진흥원(이하 수진원) 동해수산연구소 전영열 연구관은 “어종 변화는 주로 겨울철 동해의 수온 상승 때문”이라며 “최근 30년간 해수면 온도가 0.6도 상승하는 등 동해의 수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1주일간(2001년 2월25일∼3월3일)의 수온만 보더라도 주문진이 평년 대비 3도, 포항은 1.5도, 부산은 0.5도가 높다.
그러나 이처럼 어획고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수온 상승의 원인에 대한 명확한 연구 결과는 없다. 막연히 지구 온난화와 관련 있다고 추정할 뿐 일시적 변화인지, 새로운 장기변화의 시작인지가 불분명한 것이다. 하지만 해수 온도는 물덩어리(수괴)가 움직이는 해류에 따라 변하고 해류 또한 시시각각 그 방향과 크기가 변하므로 수온 변화를 예측하려면 반드시 해류의 장기변동을 알아내야만 한다.
울진 원전의 냉각수를 끌어들이는 취수구에 종류 미상의 해양생물이 끼여 취수가 불가능해지자 안전을 위해 발전을 중단한 사례가 수차례 발생한 것도, 외래종 바다 동식물의 침입에 따른 생태계 파괴도 동해의 해양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 역시 기초 데이터의 부족으로 아직 원인 규명을 못하고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발생한 고등어떼의 김 양식장 습격 사건의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양식 어민 67가구가 5억여원의 피해를 본 이 ‘전례 없는’ 현상에 대해 피해의 직접 원인은 고등어떼가 김을 먹어치웠기 때문이란 결론이 났지만 ‘어업재해심의협의회’는 농어업재해대책법상 규정된 ‘자연재해’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결국 어민들은 피해를 보상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 부산시 수산진흥과 관계자는 “수온 상승에 따른 일시적인 고등어군 형성 때문인지, 양식장 로프 시설에 붙은 갑각류를 먹으려 고등어떼가 출현한 것인지, 탐식성 어류인 고등어가 물결에 흔들리는 김 포자를 먹어치운 것인지, 몇 가지 가능성만 추정해볼 뿐 아직 확실한 인과관계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렇듯 동해에서 잇따르고 있는 몇몇 국지적 현상에 대한 분석조차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크림스가 한반도와 일본 열도,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둘러싸인 동해의 전 해역을 관찰조사한 첫 케이스라면, 아쉽게도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국내 동해 연구는 기껏해야 독도(또는 울릉도) 해역까지의 연근해에만 치중돼 극히 제한적이다. 그것도 대부분 수산자원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수심 500m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동해의 평균 수심은 1550m에 달하고 가장 깊은 곳은 무려 3700m에 이른다.
“미시적 접근이 문제다. ‘바닷가를 노니는’ 수준의 좁은 연구는 때로 장기 해양변동을 가늠해야 할 진취적 연구까지 가로막는다. 동해의 미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심층 바다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한국해양연구원 변상경 박사(한국해양과학위원회 부위원장)는 “국내 대표적 해양연구기관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수진원의 정기적인 자료수집 관측점을 보면 조사대상 해역은 동해 전역의 20분의 1 가량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물론 한국해양연구원이 간행한 해양자료집에 나타난 조사해역도 수진원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해양수산부(이하 해양부)가 밝히는 국내 해양조사선은 모두 25척. 그러나 대다수가 학생들의 실습과 훈련을 목적으로 한 까닭에 소형이다. 심해 관측에 필수적인 1500t급 이상 조사선은 ‘온누리’호(해양연구원 소속) 등 3척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의 해양조사는 수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조선총독부 수산과가 1917년 실시한 정선해양관측을 그 효시로 꼽는다. 그러나 현대적 조사가 시작된 60년대 이후에도 연근해를 제외하곤 아직 이렇다 할 연구성과가 없다. 해양-수산연구 전문인력도 1941년 개교한 부산수산대(현 부경대)와 1968년 이후 서울대 등 13개 대학에서 배출한 600여명(박사급 이상) 정도에 머물고 있다. 96년 해양부 발족으로 정부의 해양업무가 일원화되면서부터 수진원과 국립해양조사원, 해양경찰청, 한국해양연구원 등에서 해양조사를 주로 맡고 있다.
물론 돌아보면, 동해 전역에 대한 연구 관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1980년 당시 서울대 교수진이 수로국(현 국립해양조사원)과 협력해 독도 근해역 특별조사계획을 수립한 적이 있지만 정부 관련부처간 협의과정에서 취소됐다. 이때부터라도 동해 전역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철저히 했더라면 한-일어업협정에서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란 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 축적된 동해 연구 데이터가 빈약한 건 당연하다. 해양 선진국과의 교류도 몇몇 개별 학자 차원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한국해양연구원 유신재 박사(해양생태학)는 “모든 해양연구는 자료수집이 그 기초다. 거시적 시각에서 동해 전역에 걸친 광역 데이터를 빨리 확보하지 않으면 미비한 자료가 미비한 연구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기초자료 부족은 때로 뼈아픈 결과를 낳는다. 지금은 잊혔지만, 98년 북한 무장간첩의 동해 침투시 간첩 모선 수색과 침투경로를 역추적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서 가장 필수적인 해당 해역의 해류 유속조차 추정해볼 수 없었던 사실은 기초자료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 때문에 최근엔 남북한간 해양연구 협력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수진원 해양연구과 서영상 연구관은 “동해는 북한, 일본, 러시아와 해양경계가 중첩돼 어느 한 국가의 해역 조사로만 전체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인접국과의 학술교류와 공동연구가 절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북 공동연구는 98년 함경남도 신포 부근 원전 건설과 관련해 양측 학자들이 500t급 ‘이어도’호에 승선해 주변 해양환경조사를 실시한 것이 전부. 하지만 바닷물엔 국경이 없다. 여름철 동해 연안 저층에 나타나는 냉수대는 가깝게는 북한의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멀게는 극동 러시아의 냉수가 남하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이런 냉수대 출현이 어장 상황과 날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관련 연구는 아직 피상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동해 연구와 관련한 또다른 문제는 미미한 기초자료들마저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는다는 점. 동해가 과거에도 지금처럼 ‘그 어떤’ 순환과정(어떤 순환인지 알 수 없지만)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동안의 변화 상황에 대한 자료는 전무하다. 이는 국내 동해 연구가 주로 수산과 항해 안전이란 상업적 고려에 치우친 결과, 관련 기관들이 공동조사를 실시해 자료를 생산-공유하는 공조체제가 구축되지 않은 탓이다. 때문에 학자들은 “해양수산부엔 ‘해양’은 없고 ‘수산’만 있다”는 비판을 종종 해왔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99년 정부가 국가지정연구실(NRL)의 하나로 해양순환계 연구실(실장 김경렬·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을 선정해 5년간 동해 연구에만 전념토록 지원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 현재 이 연구실은 동해를 연속 관측할 수 있는 첨단 부표 개발 및 실용화에 전력하고 있으며, 동해가 지금까지 변화해온 양상을 분석하는 한편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동해 해수의 나이(해수가 바다 표면층을 떠나 바닷속을 움직인 시간)를 측정하는 ‘컨베이어 벨트’ 추적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다. 또 최근 수진원이 ‘특정과제 프로젝트 연구팀’을 가동해 동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등 가시적 변화가 미약하나마 시작되고 있어 다소 위안을 주고 있다.
과연 동해는 어떤 양상으로 변해갈까. 동해의 ‘미래’에 대한 학자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따라서 장래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살아 꿈틀거리는’ 동해 환경 변동에 대한 장기적 연구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과제’가 됐다. 아무리 “동해는 우리 바다”라고 외쳐본들 동해의 ‘진정한 소유자’는 동해를 더 잘 아는 존재일 뿐이다. 국내외 해양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