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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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과거사 청산 ‘아직도 진행중’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입력2005-02-18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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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과거사 청산 ‘아직도 진행중’
    1930년대 말 독일에서는 이런 유머가 유행했다. “자네, 독일의 고속도로가 폐쇄되었다는 말을 들었나?” “아니, 고속도로가 왜 폐쇄되었는데…” “그것도 몰라? 에다 괴링이 걸음마를 시작했잖아.”

    헤르만 괴링은 누구인가. 히틀러의 총애를 받으며 제1후계자로 지명됐던 인물이다. 덕분에 괴링의 딸 에다는 태어날 때부터 스타였다. 1938년 6월2일 그녀가 태어나던 날은 국경일이나 다름없었고, 히틀러는 기꺼이 에다의 대부(代父)가 돼주었다. 괴링의 아내(에다의 어머니)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이란의 마지막 왕비 파라 디바가 황태자를 낳았을 때 축하전보가 1만6000통 왔다고 하지만 제 딸(에다)이 태어났을 때는 62만8000통이나 왔어요.”

    괴링의 딸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죽은 아버지의 후광 아래 특별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다(한 예로 그녀는 매년 바이로이트 축제 개막공연의 초대권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SS친위대 총대장이었던 하인리히 힘믈러, 히틀러의 비서 마틴 보르만, 히틀러가 구술한 ‘나의 투쟁’을 필기한 장본인이며 총통대리였던 루돌프 헤스, 폴란드 총독으로 대량학살에 앞장선 한스 프랑크, 히틀러 소년단을 만든 발두어 폰 쉬라흐 등 괴링 못지않게 히틀러의 총애 속에 권력을 다툼하던 일급 전범의 자식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모두 괴링의 딸처럼 전범이자 살인마였던 아버지를 우상시하며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고통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살아가는 것일까.

    독일의 심리학자 볼프강 슈미트바우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치시절 집단수용소의 살인자와 그 덕분에 큰 이익을 본 사업가들은 과거의 죄를 부인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며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 반면, 희생자들은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전후 독일은 신속하게 희생자에 대한 사과와 경제적 보상을 함으로써 하루 빨리 역사의 수치심이나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레버르트 부자(父子)는 ‘나치의 자식들’이라는 책을 통해 21세기에도 과거 청산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우선 이 책은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아버지(노르베르트 레버르트)와 아들(슈테판 레버르트)이 40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사람을 인터뷰해 나란히 엮었다.

    독일 저널리스트였던 노르베르트 레버르트는 1959년부터 1년간 ‘벨트빌트’지에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까닭에…’라는 시리즈를 연재했다. 이 기사에는 앞서 언급한 주요 전범들의 자식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40년 후 아들 슈테판 레버르트(베를리너 타게스슈피겔 편집국장)는 그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한다. 그가 이 추적에 나서게 된 계기는 옛 나치들을 돕는 ‘조용한 손길’이라는 단체의 존재를 알고나서부터였다. 이 단체의 핵심인물은 유대인 말살의 주역인 하인리히 힘믈러의 딸이었다. 그녀는 1964년 국수주의자들이 중심이 돼 결성한 독일국가민주당(NPD)에 적극 참가하고 있으며, 나치 동조자들의 모임인 ‘조용한 손길’을 통해 전쟁 후 나치 간부들의 해외도피를 돕고 늙고 병든 나치들을 보살피면서 지금도 아버지 힘믈러의 명예회복을 꿈꾸고 있다. 이에 대해 슈테판은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눈먼 인생”이라고 비판했다. 슈테판은 나치 전범의 자식들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하나는 세상으로 향하는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돌같이 단단하게 굳은 삶을 살고 있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의혹과 분노, 무력감, 그리고 진리를 받아들인 삶이다.

    전후 아버지를 감금하고 있는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없다며 군복무를 거부했던 헤스의 외아들과 “잔혹한 힘믈러와는 아무 관련도 없겠죠?”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당하게 “아니요, 전 그의 딸입니다”고 밝혔던 구드룬 힘믈러, 나치 전범의 딸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그 영광을 즐겼던 에다 괴링은 전자에 속한다.

    반면 가톨릭 신부가 돼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자녀들과 교류하는 마틴 보르만의 아들이나 ‘슈테른’지의 기자로 해마다 아버지가 처형당한 10월16일이면 죽은 아버지의 사진 위에서 수음을 한다는 한스 프랑크의 아들은 분명 후자에 해당된다.

    나치독일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 노르베르트가 전범의 자식들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동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면, 아들 슈테판은 살인마였던 아버지 헤스를 ‘세계 평화를 위한 순교자’로 기억하며 스스로 열렬한 히틀러 숭배자이자 반유대주의자가 된 헤스의 외아들을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측은하게 바라본다.

    복역중이던 루돌프 헤스는 4월23일 첫 손녀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에게 “잘만 했으면 생일을 맞출 수 있었을 텐데”는 말을 했다고 한다. 히틀러의 생일이 4월20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년 뒤 헤스의 손자가 태어났는데 생일이 바로 4월20일이었다. 그 손자가 자라 할아버지를 추모하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슈테판은 헤스의 아들과의 인터뷰 끝에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친일파 자식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치의 자식들’은 끝나지 않은 우리의 과거 청산에 대해 무거운 짐을 지워준 책이다.

    나치의 자식들/ 노르베르트 레버르트·슈테판 레버르트 지음/ 이영희 옮김/ 134쪽/ 5000원

    독일 과거사 청산 ‘아직도 진행중’
    1946년 히틀러를 추종하던 나치의 일급 전범들은 뉘른베르크재판에 회부됐다. 헤스는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슈판다우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93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마틴 보르만은 독일 패망후 베를린 탈출을 꾀하다 사망했으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때 궐석인 상태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히틀러 앞에서 ”나는 오늘 또 15만명의 폴란드인을 학살했음을 보고합니다” 라고 외치던 한스 프랑크는 1946년 교수형을 당했고 , 힘믈러는 영국군 포로로 잡힌 뒤 음독자살했다.

    괴링은 교수형 판결을 받았으나 처형직전 자살했고, 쉬라흐는 20년 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옥 후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으로 나치 독일의 악몽도 완전히 끝난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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