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자가 1개일 경우 스핀으로 균형상태가 되는 상황 2.전자의 스핀방향 3. 전자가 2개일 경우 스핀으로 균형상태가 되는 경우. [궤도]
전자를 발견한 영국 물리학자 조지프 존 톰슨은 1904년 수많은 건포도와 같은 전자가 양의 전하를 갖는 푸딩 속에 박혀 있는 형태인 ‘건포도 푸딩 원자 모형’을 선보였다. 톰슨의 제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자신이 발견한 알파선(방사선의 하나로 양전하를 띠는 매우 작은 입자)을 원자에 쏴봤다. 그랬더니 당황스럽게도 알파선이 도로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알파선은 양전하를 띠니, 반대 방향으로 튀어나오려면 밀어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원자 내부에 양전하를 띤 원자핵이 있으며, 전자는 그 주위를 돌고 있을 것이라는 모델이 추출됐다. 하지만 전자는 매우 불안정했다. 이론상으로 전자가 주변을 돌면 결국 운동하는 만큼 에너지를 잃게 되고, 원자핵으로 추락해 붕괴해야 했다. 그런데 실제 원자는 쉽게 붕괴하지 않는다. 이때 양자역학의 선구자 닐스 보어가 등장했다. 러더퍼드의 제자였던 보어는 원자가 ‘정상 상태’라는 불연속적 특정 궤도에 위치할 경우 에너지를 잃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에 입각한 보어의 원자 모형과 새로운 주기율표가 등장했다.
전자의 궤도를 찾아서
원소 주기율표(왼쪽). 원자번호와 원자크기 관계[es.123rf.com, 미국 플로리다대]
그런데 신기하게도 원자번호가 커질수록 계속 작아지는 게 아니라, 중간 중간 갑자기 커지는 녀석들이 나온다. 혹시 전자가 존재할 수 있는 궤도가 여러 개 있는 건 아닐까라고 보어는 생각했다. 다시 원자 크기를 설명해줄 콘서트장으로 가보자. 무대 위 아이돌을 중심으로 양파껍질처럼 둥글게 놓인 자리는 전부 스탠딩석이긴 해도 줄마다 허용 인원이 정해진 지정석이다. 예매를 빨리 했다면 앞쪽에 설 수 있겠지만, 맨 앞줄의 예매가 이미 끝났다면 어쩔 수 없이 멀리 떨어진 다음 줄에 서야 한다. 이런 식으로 선착순에 밀린 전자는 뒤로 간다. 원자 크기는 마지막 팬이 서 있는 자리까지, 무대 중앙으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커진다. 하지만 그 줄이 팬으로 꽉 차 있다면 모두가 힘을 합해 아이돌에 가까워지려 노력할 것이다. 원자번호가 커질수록 원자 크기가 작아지는 이유다. 물론 예매를 못 한 전자 하나만 다음 줄로 밀려난다면 갑자기 크기가 커질 수는 있다.
주기율표의 세로축은 전자가 존재할 수 있는 궤도가 되고, 가로축은 궤도에 들어갈 수 있는 전자의 최대 개수다. 크기는 같은 줄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작아지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커진다. 보어가 말한, 전자의 에너지 크기에 따라 정해지는 정상 상태의 궤도를 정수로 표기한 것을 ‘주양자수’라고 한다. 주양자수가 커질수록 전자는 중심으로부터 멀어진다.
독일 물리학자 아르놀트 조머펠트는 전자의 궤도가 꼭 원 궤도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타원 궤도나 다른 궤도도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주양자수가 갖는 여러 형태의 궤도를 궤도양자수로 정했다. 이건 0부터 주양자수보다 1만큼 작은 정수까지 범위를 갖는다. 주양자수가 1이면 궤도양자수는 0, 2면 0과 1, 3이면 0, 1, 2가 되는 것이다.
이걸 3차원 공간으로 넓히면 궤도각운동량(회전하는 물체의 운동 상태를 나타내는 벡터량이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입자의 고유한 상태량으로 사용) Z축 방향 성분의 크기를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럼 각 궤도양자수에 방향을 다르게 해 다시 새로운 양자수로 쓸 수 있다. 이를 ‘자기양자수’라고 한다. 궤도양자수가 0과 1이라면 자기양자수는 0과 대응하는 0, 그리고 1과 대응하는 -1, 0, +1이 된다. 즉 주양자수에 따라 궤도양자수와 자기양자수, 바로 전자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 이게 바로 원자를 고전역학적으로 설명한 방식이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
스핀을 발견하고 명명한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 [위키피디아]
제이만 효과로 갈라진 스펙트럼선은 전자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와 대응한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떻게 해도 자기양자수는 홀수다. 그러면 스펙트럼선은 홀수 개의 선으로만 갈라져야 하는데, 가끔 짝수 개의 선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또한 전자 궤도 주기에서 나오는 2, 8, 18, 32 같은 숫자를 설명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숫자가 나오는 것일까.
그때 에드먼드 스토너라는 영국 과학자가 등장했다. 1924년 그가 발표한 ‘원자 에너지 준위 사이의 전자 분포’라는 논문에는 주양자수로 정해진 궤도에 전자가 가득 차 있을 때, 각 에너지 상태에 분포할 수 있는 전자의 수는 자기양자수의 2배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논문을 본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무릎을 쳤다. 홀수였던 자기양자수를 짝수 개로 만들어줄 새로운 양자수가 하나 더 들어가면 되겠구나! 이것이야말로 고전적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전자의 본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아이디어를 모아 드디어 파울리는 양자역학의 핵심 법칙을 만들었다.
원자 속 전자는 양자수에 의해 정의되는 상태에 절대 하나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콘서트장에서 하나의 자리에 두 명이 동시에 설 수 없다는 말이다. 이로써 콘서트장 지정석을 선착순으로 앞에서부터 채우듯, 모든 전자가 궤도마다 바닥 상태부터 계단처럼 불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냈다. 바로 파울리의 ‘배타 원리’다. 그리고 주양자수, 궤도양자수, 자기양자수 외에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한 새로운 양자수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양자수가 뭔지 몰라도, 전자는 서로 구분돼 쌍으로 존재할 수 있다.
스핀 개념의 등장
주양자수 궤도양자수 · 자기양자수 스핀 [궤도]
그런데 만약 쌍이 아니라면? 전자가 한 개만 있는 경우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해결한 녀석이 바로 스핀이다. 전자 자체가 갖는 각운동량을 스핀각운동량으로 정의하면 전자는 이미 2분의 1의 스핀각운동량을 갖고 있다. 궤도에 한 개만 있어도 2분의 1의 궤도각운동량과 더해 1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전자 하나로도 충분히 당기는 힘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재미있는 건 궤도에 전자가 두 개 있는 경우 다시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각각 2분의 1의 스핀각운동량을 갖고 있다면 합은 1, 여기에 각각의 궤도각운동량까지 더하면 총합은 2가 돼 균형을 잃어버린다. 이것도 스핀으로 멋지게 해결할 수 있다. 바로 스핀 방향을 적용하는 것이다. 궤도 위 두 전자가 서로 반대 방향의 스핀각운동량을 갖고 있다면 서로 상쇄돼 0이 되니, 총 각운동량은 궤도각운동량만 합쳐 1이 된다. 전자가 두 개라도 안정된다. 이제 제이만 효과도 설명할 수 있다. 궤도 위 전자의 스핀은 서로 반대 방향이라 자기장을 가하면 스펙트럼이 분리되고, 스핀이 짝수이기 때문에 제이만 효과에서 짝수 개의 선이 나와도 문제없다.
파울리는 지구가 자전하는 것처럼, 전자가 자신의 축에서 회전하는 상태인 각운동량을 어떻게든 서술하고자 스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는 스핀을 전자의 회전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했다. 스핀은 고전역학적으로 절대 기술할 수 없으며 온전히 양자역학적 개념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자는 공간적 구조를 갖지 않는 점 입자이고 자전도 불가능하다. 스핀은 팽이처럼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갖는 근본적 본성이다. 그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자 했던 노력이 별명처럼 남은 것뿐이다. 지금까지 전자를 설명하기 위한 물리량은 오직 질량과 전하량뿐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전하량과 질량은 물론 스핀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스핀이라는 개념은 훨씬 고차원적인 양자역학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했다. 비록 회전하진 않지만 말이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