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개관은 2012년 5월 5일, 아파트 대금 ‘완납’은 4월 26일
“20억 원 모아 세웠다”는 박물관, 정부에는 24억5900만 원짜리 사업으로 신고
박물관 건립 모금액 17억→15억→16억→15억 원으로 ‘들쑥날쑥’
곽상도 의원, “집 다섯 채를 전부 현찰 구매…현금 흐름 밝혀야”
정의기억연대, “검찰에 회계 자료 압수돼 해명 불가”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와이즈건축 홈페이지]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박물관)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이룬 대표적 성과 가운데 하나다. 정대협은 2003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십시일반 내놓은 돈을 주춧돌 삼아 박물관 건립을 추진, 수많은 국민의 성원을 이끌어내 위안부가 겪은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2012년 5월 5일 박물관 개관 당시 정대협 상임대표이자 박물관 관장이던 윤미향(56) 당선인은 하루 전날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박물관은 완성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며 “‘행동하는 박물관’으로 내용을 채우고 형성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우리 활동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이용수 할머니가 정대협의 후신으로 윤 당선인이 이사장을 지낸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유용 의혹을 폭로하면서 ‘행동하는 박물관’마저도 거짓 결산 의혹의 도마에 올랐다. 정대협이 정부에 제출한 박물관 건립 총 소요액과 실제 건립에 사용된 금액 사이에 5억 원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그래프1 참조).
국고보조금 들어온 시점에 아파트 낙찰받아
국회예산정책처의 2017회계연도 결산에 따르면 2012년 박물관 결산액은 24억6000만 원. 이 중 5억 원이 여성가족부를 통해 국비로 지원됐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정대협이 박물관 건립에 드는 총 소요액이 24억5900만 원이라며 국고보조금 교부신청서를 제출했고, 5억 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정대협은 2011년 4월 박물관으로 사용할 성산동 주택을 14억9200만 원에 매입했다. 리모델링 비용으로는 4억 원가량이 소요된 것으로 보인다. 정대협은 새건축사협의회를 통해 박물관 리모델링 설계 및 공사 공모전을 개최했는데, 전진삼 건축평론가는 새건축사협의회가 그해 8월 25일 개최한 ‘당선작 선정 후 공개 리뷰’ 행사에 관한 글에서 ‘(박물관 리모델링은) 전시 포함 총공사비 3억5000만 원, 설계감리비 4000만 원이 책정된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따라서 박물관 부지 매입 및 공사 비용으로 18억8200만 원이 소요된 것으로 추산된다. 5222만 원의 부동산 취등록세(세율 3.5% 적용)를 감안하더라도 총 사업비는 20억 원을 넘지 않는다. 다만 사립미술관은 부동산 취등록세 등을 면제받을 수 있다.
여성가족부의 국비 지원은 박물관 개관이 임박해 이뤄졌다. 박물관 개관 반년 전만 해도 여성가족부는 국비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2011년 11월 1일 국회에서 열린 2012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정대협의 박물관 리모델링 비용 지원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여성가족부는 “2011년 4월 정대협 측이 박물관 건립과 관련해 예산 3억 원을 지원 요청했으나, 재정 여건상 민간에서 추진하는 박물관 건립에 국비 지원이 어려워 2012년 정부 예산에 미반영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몇 달 뒤 여성가족부는 정대협이 당초 요청한 3억 원보다 2억 원 많은 5억 원을 지원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정대협이 교부신청서에 박물관 건립 사업 기간을 2012년 2~5월이라고 명시했기 때문에 국고보조금도 2~5월 사이에 지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5채에 대출이 없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뉴스1]
해당 아파트 등기부등본에는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은 “전부 현금 매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경매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에서 대출받아 경매 낙찰금을 납부할 경우 근저당권 설정 때문에 낙찰금을 전부 납부하는 날 등기접수까지 마친다. 윤 당선인의 아파트에서 완납과 등기접수 날짜가 2주가량 차이 나는 것은 대출을 받지 않고 구입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해당 아파트의 구입 자금 출처에 대해 “전에 살던 아파트를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에 살던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파트의 매매일자가 2013년 1월로 경매 아파트를 인수하고 반년 이상 지난 시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적금과 예금을 해지하고 모자란 부분은 가족으로부터 빌렸다”고 번복했다.
윤 당선인 일가가 대출 없이 부동산을 구매한 것은 이외에도 더 있다. 1995년 1월 수원 장안구 빌라, 1999년 10월 수원 영통구 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샀고, 2001년 11월 윤 당선인의 아버지가 그와 같은 단지인 수원 영통구의 아파트를, 2017년 5월 윤 당선인의 남편 김삼석 씨가 경남 함양의 빌라를 매입했다. 이 4건의 부동산에 대해서도 등기부등본에는 근저당권 설정 내역이 전혀 없다. 곽 의원은 “보통 사람은 평생 살면서 집 한 채도 현금으로 구매하기 힘든데, 윤 당선인 가족은 집 다섯 채를 전부 현금으로 구매했다”며 “개인계좌로 모금한 윤 당선인의 현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검찰 수사를 통해 꼭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정대협 감사 맡았던 변호사, “답변하고 싶지 않다”
박물관 건립에는 수많은 손길이 담겼다. 윤 당선인 스스로가 밝혔듯 적금을 부어 1000만 원을 기탁한 위안부 할머니도 있었고 노동자, 일반 회사원, 가족, 학생, 친목 모임, 해외동포, 그리고 일본인들까지 모금에 참여했다. 하지만 정대협은 9년에 걸쳐 박물관 건립 프로젝트를 완성하면서 모금 현황 및 박물관 건립 세부 지출 내역 등을 정리한 결산보고서를 만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오히려 정대협 보도자료, 공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모금액은 ‘억 단위’로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2009년 3월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열린 착공식 때 17억 원이라고 밝힌 모금액이 1년 후인 2010년 3월 언론보도에서는 15억 원으로 2억 원 줄었다. 또 1년 후인 2011년 6월 윤 당선인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개관을 목표로!’라는 글에서 “건물 매입 비용과 관련 공과금은 현재까지 모금된 16억 원으로 충당 가능했지만, 리모델링 및 전시 설계를 위해 5억 원 이상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11년 7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당선인은 “17억 원을 모았다”고 밝혔다. 모금액이 한 달 사이 1억 원 늘어난 것이다. 한편 박물관 개관식 전날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윤 당선인은 “20억 원 넘는 기금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당시는 여성가족부가 국비 5억 원을 지원한 이후라 국비를 제외하면 민간에서 걷은 모금액이 15억 원가량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세청 홈택스에는 정대협 결산 자료가 2014년부터 공개돼 있다. 박물관 건립이 주요 내용이었을 2012년 결산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윤 당선인은 정대협 주간 소식지에 ‘2012년 회계 감사를 정연순 변호사와 이정희 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이 맡아주셨다. 긴 시간동안 두 분이 정대협 사무실에서 2012년도 경상비, 기금, 프로젝트 회계에 대한 감사를 꼼꼼하게 실시하고 감사보고서를 작성해주셨다’고 썼다.
하지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공동건립추진위원장 및 정대협 감사를 역임했던 정연순 법무법인 지향 대표변호사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답변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정의연은 박물관 건립 모금 및 소요 비용 등에 관한 ‘주간동아’의 질의에 “검찰에 회계 자료가 압수돼 해명이 불가하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5억 원은 처벌 수위 가르는 기준
한편 검찰은 윤 당선인을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윤 당선인의 아파트 현금 매입 및 딸 유학비 출처, 8억 원의 국고보조금 누락 등 정의연 회계 부정 의혹과 안성 쉼터 매입 의혹 과정에서 불거진 배임 혐의 등을 수사하고 있다.만약 윤 당선인의 횡령·배임액이 5억 원 이상이라면 처벌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업무상 횡령·배임 액수가 5억 원 이상~50억 원 미만인 경우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게 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제시한 양형 기준도 기본 2~5년이며, 가중할 경우 6년까지 징역형이 가능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뀐 성산동 주택은 홍익대 조소과 교수를 지낸 원로 조각가 박석원(79) 작가의 집이었다. 박 작가 부부는 “아이들이 장성해 독립한 뒤 부부만 지내기에는 넓은 주택이라 20년 살던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정대협으로부터 사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만든다며 모금에 동참해달라고 해 기쁜 마음으로 100만 원을 기부했는데, 이번에 불미스러운 일이 불거져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