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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규제 완화의 주요 내용은 △주류 외 제품 생산 허용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허용 △주류 배달 기준 명확화 등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규제 완화로 수제맥주업체 숨통 트여
앞으로 주류 공장에서 주류 외 제품 생산이 허용된다. [GETTYIMAGES]
이제는 맥주 공장에서 무알콜 맥주뿐 아니라 ‘맥콜’ 같은 보리맛 음료도 만들 수 있다. 주류 공정에서 나오는 다양한 부산물로 독특한 제품을 선보일 수도 있다. 필자는 ‘탈모방지용 샴푸’를 유력한 후보로 본다. 맥주 효모가 탈모 방지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에는 맥주 효모로 만든 발모제가 출시돼 있다. 우리도 조만간 탈모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카스 샴푸’ ‘테라 린스’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막걸리 공정에는 식혜 제조 공정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따라서 장수막걸리가 ‘아침햇살’ 같은 쌀 발효음료를 출시할 수도 있다.
화장품도 막걸리 공장의 유력한 후보. SKⅡ의 ‘피테라 에센스’는 사케 장인의 손이 유독 곱다는 데 착안해 사케 원료를 화장품에 적용, 크게 히트한 제품이다. 우리 막걸리는 사케보다 영양이 더 풍부해 ‘막걸리 화장품’ 성공에 더 유리할 수 있다.
과거 전통시장에서는 큰 항아리에 절인 장아찌를 덩어리째 판매하곤 했다. 이때 장아찌에 같이 넣어주는 게 있었는데, 바로 막걸리에서 나온 술지게미다. 술지게미는 영양이 풍부하고 알코올이 함유돼 있어 식품의 보존성을 높인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막걸리 양조장에서 장아찌를 생산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겠다. 또 술지게미를 활용한 ‘양조장 술빵’도 나올 수 있다.
이제는 ‘참이슬’ 소주를 ‘처음처럼’ 공장에서 제조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동안은 ‘내 술은 내 공장에서만’ 생산해야 했다. 그래서 캔맥주 제조나 살균 시설 등을 갖추지 못한 국내 수제맥주업체는 아예 해외에 주류 제조를 위탁해왔다.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덕분에 최근 위기에 봉착한 120여 개 국내 수제맥주업체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매장 내 판매만 가능하던 수제맥주의 외부 유통이 허용되면서 전국적으로 수제맥주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최근 열풍이 가라앉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소비가 급감하면서 이들 업체는 고충을 겪어왔다. 특히 맥주 공장은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추려면 매우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카스나 테라 공장이 다양한 수제맥주를 위탁생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판매 및 유통에서도 대기업 도움을 받아 유리해질 수 있다.
다양성 꽃피는 질적 성장 기대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한다면 이제는 치킨, 피자, 보쌈 전문점이 아예 자체적으로 수제맥주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관련 면허를 취득한 뒤 생산은 위탁을 맡겨 ‘BBQ 맥주’ ‘피자알볼로 맥주’ ‘원할머니 보쌈 맥주’를 출시하는 것이다.한편 앞으로는 맥주에 질소가스를 넣어 거품이 부드러운 맥주를 만들 수도 있다. 질소가 들어간 대표적 맥주는 ‘기네스 드래프트’. 맥주 맛이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위탁생산이 너무 활성화하다 보면 수제맥주의 개성이 사라질 수 있다. ‘맥주,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의 저자 심현희 씨는 “수제맥주란 지역성과 농업성, 독창성을 가진 제품”이라며 “OEM 시장이 커지면 제품이 단조로워져 수제맥주 본연의 가치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규제 완화로 음식을 배달 주문하면서 가격이 ‘음식 값보다 적은’ 술도 함께 주문할 수 있게 됐다. 그간 ‘음식에 부수하여’ 주류 배달이 가능하긴 했지만, 그 기준이 명확지 않아 혼란이 있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술과 함께 주문하는 음식 종류가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막걸리에 파전’ ‘스테이크에 와인’을 주문해 집에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각종 도시락과 밀키트에도 가벼운 맥주가 추가될 수 있다. 제사나 차례 음식을 주문할 때 전통주를 포함하는 것도 가능할 테다. 주류 값이 음식 값보다 적어야 하기 때문에 ‘혼술’ 제품이 늘 것으로도 보인다.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찾아 마시는 페어링 문화도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음 행사 역시 좀 더 다양하고 활발해지리라 전망된다. 지금까지는 소주 양조장에서 소주를 활용한 다양한 소주 칵테일 시음 행사를 열 수 없었다. ‘소주’로 제조면허를 받은 업체는 소주 이외의 주류를 제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판매 목적이 아니라면 면허를 받은 주종 외 주류도 제조할 수 있다. 전통주를 활용한 다양한 칵테일의 시음 행사를 얼마든 열 수 있는 것이다.
문정훈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는 정부의 이번 주류 규제 완화에 대해 “주류산업을 규제 대상이 아닌 신성장동력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라며 “주류산업에 다양성을 더하는 질적 성장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깔아준 판에 새로운 도약을 하려는 의지, 그리고 참신한 상상력을 더한다면 이번 규제 완화는 주류업계에 최고의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