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GP 총격 도발 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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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 근무자들은 피격 후 10분이 지난 7시 51분, GP 외벽에서 3발의 중기관총 탄흔을 식별했고, 8시 5분 또 하나의 탄흔을 식별해 GP장에게 보고했다. 북한군이 사격한 중기관총탄 4발은 모두 1~2m 내에 탄착했는데, 이 가운데 1발은 GP 관측실 방탄 창문 바로 아래에 명중했다. 7시 56분, GOP(일반전초) 대대장은 K-6 중기관총 대응 사격을 지시했다. 최초 피격 후 1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대장 지시에 따라 해당 GP에서는 8시 1분부터 GP장 통제 아래 K-6 중기관총 원격사격체계로 대응 사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K-6 중기관총은 기능 고장을 일으켰고, 세 차례의 응급조치에도 작동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연대장은 8시 13분, K-3 경기관총 사격을 지시했다. GP 대원들은 K-3 기관총을 꺼낸 뒤 북한 GP 하단부를 향해 15발을 조준 사격했다. 피격 후 32분이 경과한 시점에 이뤄진 첫 대응 사격이었다. 이후 GP장이 바닥에 떨어진 14.5mm 중기관총탄 탄두를 식별해 상급부대에 보고했고, 8시 18분 사단장 지시에 따라 다른 K-6 중기관총을 동원해 북한군 GP에 15발을 추가로 사격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추가 대응을 하지 않았으며, 모두 평소처럼 영농 활동을 했다는 것이 합참이 설명한 당시 사건의 전말이다.
주력 중화기는 발사 불능 상태
육군K6중기관총. [뉴스1]
군 당국은 5월 13일 브리핑에서 “매일 한 차례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데도 미리 발견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15일 브리핑에서는 “1월 말 화기를 점검했을 때는 이상이 없었고, 2월에는 눈이 많이 와 정비를 못했으며, 이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정비를 잠정 중단했다”고 말을 바꿨다.
모든 군필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모든 총기는 매일 점검, 정비하는 것이 원칙이다. 총기는 총구와 삽탄구, 탄피 배출구, 기관부가 노출돼 있어 먼지나 흙 같은 외부 오염물에 취약하고, 사격 훈련을 하면 탄매(탄약 그을음 찌꺼기)가 약실과 총열에 남아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일일 점검과 정비는 필수다.
군의 모든 장비는 일일 정비·주간 정비·월간 정비·분기 정비·반기 정비 명목으로 수시로 점검, 정비하게 돼 있다. 합참 역시 “매일 점검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GP에 설치돼 있는 동안 단 한 차례의 사격도 실시하지 않아 외부 충격이 전혀 가해진 적 없는 총기, 그것도 전날 점검할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멀쩡한 총기의 공이가 하룻밤 사이 갑자기 파열됐다는 것은 도깨비가 와 장난이라도 쳤다는 얘기인가.
경계작전의 실패
시범 철수된 고성GP 감시초소 내부. [뉴스1]
이번 합참 발표에서는 경계작전의 문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군은 사건 발생 당일부터 현재까지 대응 사격에 시간이 걸린 것은 안개 탓에 적이 어느 GP에서 사격했는지 파악이 안 됐기 때문이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군의 이러한 주장에는 여러 모순이 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하절기라 이미 해가 뜬 상태였고, 시야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우리 GP에는 4배율 CCD(전하 결합 소자) 카메라와 열상 카메라로 주야간 감시가 가능한 TAS-815K, 일명 TOD(열상감시장비)가 설치돼 있다. 적 GP에 조준된 상태로 고정된 K-6 중기관총의 원격사격체계(RCW) 역시 고배율 광학장비가 장착돼 있어 2.5km 내 표적을 정확히 식별해 조준 사격할 수 있으며, 해당 광학장비가 촬영한 영상은 실시간으로 GP 상황실 모니터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상훈사령관 기관총 사격훈련 시범. [뉴스1]
앞에서 설명했듯이 GP에 있는 TOD 등 감시장비와 기관총 원격사격체계에는 고배율 광학장비가 설치돼 있고, GP 상황실에서는 이 광학장비를 이용해 적 GP의 상황을 바로 눈앞의 일처럼 살필 수 있다. 합참이 밝힌 바처럼 당시 근무자들은 북한군이 근무 교대를 하고 있었고, 철모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합참 측 설명이 사실이라면 당시 GP 근무자들이 한눈을 팔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합참은 당시 GOP 대대장이 최초 피격 후 15분이 경과한 7시 56분에 K-6 중기관총 대응 사격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표적을 특정해 사격을 지시했다는 것은 적의 어느 GP에서 사격이 이뤄졌는지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즉 안개 탓에 도발 원점을 파악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대응 사격이 늦게 이뤄졌다는 군 당국의 설명은 거짓말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 밖에도 군은 화기 종류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유효 사거리를 축소해 발표하는가 하면, 이번 총격은 북한군의 근무 교대 과정에서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며 지속적으로 사건의 은폐·왜곡·축소를 시도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번 사건도 군 당국의 언론 브리핑대로라면 북한군이 실수로 도발했고, 우리가 피해를 봤지만 일선 장병들의 근무 상태가 엉망이라 상황 파악과 초동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시나리오로 귀결된다.
교류와 협력의 토대는 튼튼한 안보
김연철 통일부장관 경기도 파주 DMZ 평화의 길 철거GP 점검. [통일부 제공]
지난해 북한 목선 ‘대기 귀순’ 사건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북한의 도발을 축소·은폐하고 우리 장병들의 명예와 사기에 흠집을 내는 군 지휘부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의 배경에는 ‘윗선’의 압력이 있어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목선 귀순 당시 일부 언론에 의해 사건이 축소·은폐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됐고, 청와대 행정관이 국방부 기자실에 들어와 군 브리핑을 지켜봤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달 초 우리 군의 서북도서 합동방어훈련을 북한 매체가 강하게 비난한 직후 국가안보실이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 당국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왜 그런 내용이 보도됐느냐”며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군이 왜 이번 총격 도발 사건을 그토록 은폐·왜곡·축소하려 했는지 이해가 간다.
남북교류와 협력 사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청와대가 북한 측 반응에 왜 이토록 민감한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교류와 협력은 튼튼한 안보가 바탕이 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고, 튼튼한 안보를 떠받치는 것은 일선에서 불철주야 헌신하는 우리 장병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