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1

..

文의 격노 ‘노여움’에도 타이밍이 있다

[서민의 野說] 국민 정서에 어긋난 감정, 비아냥거림 소재로 전락

  •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bbbenji@naver.com

    입력2021-03-22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난해 10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및 소관 기관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 양산시 매곡동 사저 부지에 대해 ‘농지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동아DB]

    지난해 10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및 소관 기관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 양산시 매곡동 사저 부지에 대해 ‘농지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동아DB]

    ‘격노’.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자주 접하는 단어다. 뭔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대통령은 격노한다. 국어사전에서 ‘격노’를 찾아보니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오름’이라고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자리인 대통령인데, 뭐 그리 화낼 일이 많을까. 게다가 문 대통령은 화를 잘 내지 않는 이미지다. 

    그런데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문 대통령의 격노를 체험할 수 있었다. “선거 시기라 이해하지만, 그 정도 하시지요. 좀스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처음 봤을 때 떠오른 건 해킹이었다. 일국의 대통령이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썼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놀랍게도 그 게시물은 대통령이 직접 쓴 게 맞았다. 청와대가 그 사실을 확인해줬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나도 대통령 비판을 자주 하는데, 이러다 무슨 일 당하는 거 아냐.’ 

    대통령이 왜 화가 났는지 보자. 퇴임 후 머물려고 사들인 땅이 문제였다. 원래 대통령은 취임 전 거주했던 경남 양산 매곡동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그곳이 산으로 둘러싸여 경호가 어렵다는 주위 의견을 받아들여 인근 평산마을 땅을 샀다. 야당은 당시 그곳이 농지라 사들인 후 형질변경을 해야 하는데 이 경우 땅값이 올라 시세 차익을 낼 수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대통령 처지에선 그런 의혹 제기가 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에 일일이 답해야 하는 것이 공인의 의무다. 대통령으로서 권한만 누리고 그에 걸맞은 책임은 지지 않겠다면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말았어야 한다. 꼭 선거철이라서가 아니라, 지금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전현직 직원 투기 의혹으로 전국 민심이 들끓는 시기이지 않은가. 야당 측 주장에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좀스럽고 민망하다”는 말이 더 민망

    문재인 대통령이 3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동아DB]

    문재인 대통령이 3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동아DB]

    대통령 사저는 대통령 거주 후 국가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자식에게 상속 가능하다. 게다가 농지를 산 뒤 형질변경을 하는 건 투기에서 곧잘 쓰이는 방법이다. 결정적으로 대통령은 평산마을 땅을 살 때 ‘농사 경력 11년’이라고 적었다. 우리가 아는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대표를 맡아 당을 이끌었고, 정권교체에 유리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버선발로 달려가 희생자들 곁을 지켰다. 나 나름 문 대통령을 오래 관찰했지만, 농사를 짓는 모습은 거의 본 적 없다. 그런데 11년 차 농업인이라니, 이상하게 생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대통령은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 야당 측 행위를 ‘좀스럽고, 민망’하다고 반박했다. 정당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야당에 대한 대통령의 반박은 국민을 향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많은 이가 이 글에서 섬뜩함을 느낀 건 이 때문이다. 

    대통령이라고 늘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파렴치한 사건이 벌어졌다면 화를 안 내는 게 오히려 욕먹을 짓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격노가 비아냥거림의 소재가 되는 이유는 그 타이밍과 대상이 국민과 엇박자를 이루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문 대통령은 검찰의 1차 압수수색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격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당시 압수수색 소식을 보고받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들었다.” 

    조국 사태 초기인 2019년 9월 초 나온 기사다. 당시 국민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가족의 비리 의혹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입시 비리는 물론이고 사모펀드, 주식 차명 거래, 위장이혼 등은 늘 정의의 편이라 믿었던 조국 교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것만 봐도 당시 검찰 수사는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니, 당시 대통령의 격노는 조국을 향했어야 맞다. “자네, 이제 보니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구먼” 하고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엉뚱하게도 검찰에 화를 냈고, 이는 이후 ‘검찰 죽이기’의 서막이 됐다.


    대통령도 ‘긍정 강화’ 필요

    두 번째 기사는 이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문재인대통령개별기록관’을 만들겠다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발표에 대해 ‘나는 개별기록관을 원하지 않는다’며 불같이 화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보도를 통해서야 이 사실을 접하고 ‘당혹스럽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정부는 172억 원을 들여 문재인대통령개별기록관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야당은 “세종시에 이미 통합대통령기록관이 있는데 왜 별도의 기록관을 만드느냐”고 비판했다. 

    야당으로서 충분히 문제 제기를 할 만한 일이었지만 대통령은 격노했다. 더 황당한 사실은 대통령 본인이 직접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문재인대통령개별기록관 건립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했다는 점이다. 그럼 대통령은 자기 자신에게 격노한 것일까. 아니면 이걸 발표한 국가기록원이 마음에 안 든 것일까. 대상이 누구든, 뜬금없는 건 마찬가지다. 

    이 밖에도 대통령은 “북한에 원전을 지어준다면 그건 이적 행위”라고 한 야당대표의 발언에 격노하는 등 총 10차례 이상 격노했다. 그리고 그 격노는 국민의 공감을 받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대통령의 격노는 그 타이밍과 대상이 늘 국민과 어긋난다. ‘격노’의 사전적 정의에는 이런 뜻도 있다. ‘(심리) 주로 어린아이와 미성숙한 어른에게서 발달 장애나 좌절감의 결과로서 생기는 감정의 폭발 또는 폭력 행위. 긍정 강화와 같은 행동 수정 기법을 적용하여 해소할 수 있다.’ 아무래도 대통령에게 긍정 강화가 필요할 성싶다.

    서민은… 제도권 밖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로운 입담으로 풀어낸다. 1967년생.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 서울대 의학박사(기생충학).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저서로는 ‘서민독서’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서민적 글쓰기’ 등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