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가 미 법무부 정보공개 사이트를 통해 확보한 계약서와 관련 정보 공개에 따르면, 김 장관은 합참의장에서 물러나고 1년여가 지난 2009년 5월 28일부터 7월 16일까지 미 의회 관계자와 안보 분야 전문가를 만난 것으로 나타났다(김 장관은 2010년 12월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다). 총 접촉 횟수는 25회로 기록됐으나, 이메일 교환이나 단체 접촉 등이 섞였음을 감안한다면 실제 면담이나 회의 등의 형태로 활동한 것은 6~7회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이 미 법무부 자료에 남은 이유는 김 장관이 이 과정에서 미국 연방정부의 인가를 받은 대(對)의회 로비업체인 리빙스턴그룹(The Livingston Group LLC)의 자문조력을 받은 것으로 등록됐기 때문.
워싱턴 유력 정치인 두루 면담
미국 연방정부는 외국 기관이나 단체, 기업, 개인이 전문 업체를 고용해 의회와 정부기관 등에 로비활동을 벌일 경우 법무부에 관련 내용을 신고하도록 규정해놓았다. 통상 ‘FARA’라 부르는 ‘외국로비 공개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이 그것이다. 이렇게 신고된 내용은 관련 홈페이지(www.fara.gov)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일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문 작성 관련 로비업체 고용 문제도 이러한 경로를 통해 확인된 사안이었다.
미 법무부 자료의 기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당시 면담자는 퇴역한 미군 측 고위관계자와 현직 상하원 의원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자리가 모두 리빙스턴그룹의 소개로 이뤄졌고, 면담자리마다 이 회사 관계자가 동석했다는 것. 6월 22일에는 크리스토퍼 본드 상원의원, 6월 24일에는 아이크 스켈튼 하원의원을 만났고 켄트 콘래드, 패트릭 리히 상원의원과 밥 굿라테, 피트 혹스트라, 얼 포메로이, 짐 모란, 데이나 로라바커, 팀 라이언, 존 머사 하원의원 측 인사도 소개받았다. 7월 16일에는 맥 손베리 하원의원을 면담하면서 앞서 접촉했던 로라바커 의원과 본드 의원을 다시 만났다. 이들은 정당으로는 공화당 소속이 다수를 차지하고, 상당수는 국방·안보·정보·예산 분야 상임위원회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워싱턴 정치인이다.
워싱턴 로비업체 리빙스턴그룹의 홈페이지.
미 하원의장을 지낸 로버트 리빙스턴 전 의원이 1999년 설립한 리빙스턴그룹은 주로 미 공화당 측 인사에게 영향력이 높은 로비회사다. 리빙스턴 전 의원은 하원의장 취임 9일 만에 혼외정사 추문에 휩싸여 사임한 경력으로 유명한 인물로, 당시의 컨설팅 계약 역시 리빙스턴 전 의원의 명의로 미 법무부에 등록됐고, 그 자신이 김 장관과 의회 관계자들의 면담에 상당수 동석한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 국내외를 합해 80여 기관 및 업체를 위해서 로비를 펼치는 이 회사는 워싱턴 로비업계에서 순위 10위를 다투는 중견 회사다.
로비 계약 주체는 AK캐피탈
(왼쪽부터) 아이크 스켈튼 하원의원, 김관진 국방부 장관.
계약서 상 서울 태평로 중후빌딩에 주소지를 둔 AK캐피탈은 옛 연합철강 인사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중후산업의 권호성 회장이 해외 비즈니스를 위해 만든 회사다. 권 회장 또한 ‘주간동아’와의 통화에서 문서에 등장하는 ‘알렉스 권(Alex Kwon)’이라는 계약자 이름이 자신의 영문명과 같다고 확인했다.
권철현 전 연합철강 회장의 장남인 권호성 회장은 2003~2004년 옛 한보철강의 매각절차가 진행되던 무렵 군인공제회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AK캐피탈의 공식 영문명칭 뒤에 붙은 ‘NHB’라는 이니셜 또한 ‘뉴 한보’의 약자. 3차 입찰에서 인수 대상자로 선정됐다가 계약금 납입 지연으로 자격을 박탈당했던 AK캐피탈은 이후 매각 주체였던 채권단을 상대로 INI스틸 컨소시엄으로의 매각 절차를 중단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지만, 결과를 뒤엎지는 못했다.
퇴역한 한국의 합참의장이 로비스트 회사를 통해 워싱턴 관계자들을 면담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는 정황은 아니다. 한미동맹 현안에 관한 의견 교환이나 안보 분야 오피니언 리더 사이의 교류를 위한 자리라면 대한민국 정부나 주미한국대사관이 주선하는 게 정석이기 때문. 로비스트를 고용한 수천만 원 규모의 비용을 한국의 민간회사가 지불했다는 점은 특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주간동아’는 11월 29일 국방부에 정식으로 해명을 요청했고, 12월 1일 저녁 국방부 측은 다음과 같이 답변해왔다.
“워싱턴 체류 당시 미 의회 관계자들과 만나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맞지만, 당시 김 장관은 이러한 면담을 주선하는 과정에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고, 당연히 누가 누구에게 얼마의 수수료를 주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지인 소개로 워싱턴 인사들을 만난 것으로 실제로 그렇게 비용이 드는 사안도 아니었다. 이번 일로 국가안보의 중차대한 책임을 맡은 김 장관에 대해 국민이 오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순진해서 벌어진 일?
미 법무부 정보공개 사이트에 등록돼 있는 관련 계약서.
12월 1일 권 회장은 “전후 맥락을 확인했다”며 앞서의 말과는 다른 설명을 제시했다. 워싱턴 체류 기간 김 장관을 도와주라는 지인의 부탁에 따라 AK캐피탈의 고문인 전직 워싱턴 정치인을 소개해줬는데, 확인해보니 이 사람이 리빙스턴그룹 측에 김 장관에 대한 관련 지원을 의뢰했다는 것. 리빙스턴그룹 실무진에 대한 수고비 차원에서 고문이 전결처리한 수수료가 2만 달러였지만, 계산서는 갖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권 회장은 “중후산업이나 AK캐피탈 모두 군과 관련된 비즈니스는 없다”며 “순수한 선의로 이뤄진 일”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자료에 등장하는 전작권 관련 서신 또한 내가 한국 재향군인회 관계자의 부탁을 받아 리빙스턴그룹을 통해 게이츠 장관 측에 전달한 것일 뿐, 김 장관은 관여한 바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양측 설명이 모두 사실이라면, 김 장관이 합참의장 퇴임 후 진행한 개인 차원의 해외 활동 과정에서 민간회사의 지원이 있었던 셈이다. 비용 발생과 처리 과정을 알지 못했다는 김 장관 측 해명을 감안해도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일이 벌어졌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일련의 일이 외국계 로비에 대한 미국 국내법이나 공직자 윤리에 관한 한국 국내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군 최고위 직위를 지낸 인사로서 적절한 행동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돈으로 환산되는 워싱턴 정치의 메커니즘에 섬세하지 못해 벌어진 실수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