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먹어라, 알츠하이머!”
SBS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여주인공 서연은 느닷없는 불치병 선고에 이렇게 맞섰다. 앞날이 창창한 서른 살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면 서연처럼 꿋꿋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찬바람이 쌩쌩 부는 늦가을 오후, 경기 파주시의 드라마 세트장. 서연을 연기하는 배우 수애(31)는 “내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면 절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서연은 남동생 문건(박유환 분)에게 쌀쌀맞다 싶을 만큼 냉정하게 굴지만 11월 8일 방송에서 속내를 보였다. “나는 날마다 조금씩 바보가 돼가는 치매환자야. 생각만 해도 구질구질해. 문건이만 아니면 지금 그만둬도 되는데…”라고. 그의 병을 뒤늦게 알고 찾아온 지형(김래원 분)에게도 매몰차게 군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눈물이 많아서 울음을 잘 참지 못하는데 서연이는 다르더라고요. 부모 없이 자랐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남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애인 있는 남자와 거리낌 없이 연애할 만큼 당돌한 구석도 있고요. 불치병을 선고받고도 담담하게 대처하는 굳건한 여자죠.”
드라마 ‘무사 백동수’ 후속으로 10월 17일부터 방송된 ‘천일의 약속’은 정혼한 여자가 있는 남자 지형과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 서연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다. 방송가 명콤비인 김수현 작가와 정을영 PD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부모님 전상서’ ‘엄마가 뿔났다’ ‘불꽃’ ‘내 남자의 여자’ ‘인생은 아름다워’ 등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드라마는 지금까지 모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천일의 약속’도 예외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방송 시작 이후 줄곧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다.
더구나 김 작가가 집필한 미니시리즈의 여주인공은 하나같이 인기가 급상승했을 뿐 아니라, 연기력도 크게 향상됐다. ‘청춘의 덫’의 심은하, ‘불꽃’의 이영애, ‘완전한 사랑’의 김희애가 좋은 예다. 수애 역시 ‘수애의 모노드라마’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일취월장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수애가 극중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 결기 어린 분노를 뿜어낸 양치질 신은 이 드라마의 백미로 꼽힌다. 그의 생각도 그럴까.
“양치질 장면도 기억에 남지만 개인적으로는 형광펜과 가위라는 단어를 기억하지 못해 그 말을 절박하게 외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지형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여주며 애교 부리는 장면이나 혼자 소주를 마시며 독백하는 신을 찍을 때는 대본에 네잎클로버를 꽂아뒀어요. 걱정되는 신에 네잎클로버를 꽂아두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 지형과 헤어질 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을 때 어느 쪽이 연기하기가 더 힘들던가요.
“지형과의 이별 신보다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심적 고통이 더 컸어요. 연인과의 이별은 내 의지로 극복할 수 있지만 평생을 함께해온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니까요.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감정을 억제하거나 절제하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서른 살에 기억을 잃어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감정이 복받쳐 오르거든요. 그걸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표현한다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아요. 이번 작품을 마치면 긴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서른 살에 이별 준비 쉽지 않은 연기
▼ 왜 이 작품을 선택했나요.
“사실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을 끝내고 휴식기를 충분히 가지려 했어요. 그러다 이 대본을 보고 바로 출연을 결정했죠. 지금까지 해온 작품과 느낌이 다르고 김수현 선생님이 쓰신 정통 멜로드라마여서 더욱 끌렸어요. 김수현 선생님의 관록과 깊이가 묻어나는 작품이어서 소화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배역에 점점 빠져들고 있어 다행이에요. 서연을 연기하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어요.”
▼ 어떤 때 대리만족을 느끼나요.
“순간순간 느껴요. 지형에게 사랑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할 때도 그렇고, 조건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한 남자를 온전히, 열렬히 사랑하는 서연이 좋아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도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참 부럽기도 하고요. 제가 추구하는 여성상도 서연처럼 내적으로 강인한 여자예요.”
1999년 청소년드라마 ‘학교5’로 데뷔해 드라마 ‘러브레터’ ‘회전목마’에 출연할 때까지 그는 청순한 이미지를 고수했다. 배우 정윤희를 닮은 외모 때문에 한동안 ‘정윤희의 딸’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가 ‘정윤희를 닮은 배우’라는 꼬리표를 떼고 연기력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2008년 영화 ‘님은 먼곳에’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이 작품에서 수애는 월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만나러 베트남까지 찾아가 군인을 상대로 위문 공연을 하는 가수 순이로 등장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수애는 당시 “연기 변신에 성공할 자신이 없어서 그전에는 도전할 엄두조차 못 냈는데 이준익 감독이 확신을 준 덕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데뷔 후 처음 스릴러 영화 ‘심야의 FM’에 출연해 청룡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이리스2’로 불리며 뜨거운 관심을 모은 전작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은 비록 시청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액션 여전사로 분한 수애의 연기 변신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다른 모습이 튀어나올 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해요.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희열과 보람을 느끼고 때론 좌절감을 맛보면서 배우로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촬영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김해숙, 임채무, 이미숙, 박영규, 오미연 등 조연을 맡은 중견배우들은 든든한 조력자를 자처하면서 젊은 배우들에게 연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수애는 “현장 분위기가 좋고 연기자 간 호흡도 잘 맞아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며 김 작가에게서 격려 메시지를 받은 일화를 공개했다.
“대사 양이 많은 데다 속도도 빠르고 내면 연기가 많아 걱정과 부담이 적지 않았어요. 그에 대한 스트레스로 초반에는 경직돼 있었던 게 사실이고요. 그런데 김수현 선생님이 격려를 많이 해주셔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선생님이 간간이 문자로 ‘잘하고 있다’고 격려 메시지를 보내주시거든요. 그걸 볼 때마다 불끈불끈 힘이 나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수진(손예진 분)도 서연처럼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간다. 이번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손예진의 연기를 참고했느냐고 묻자 수애는 “병명만 같을 뿐 인물의 성격도, 작품 내용도 전혀 다르다”며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참고하는 건 대본”이라고 밝혔다.
“대본에 모든 답이 있어요. 김수현 선생님 대사는 연기가 아니라 말처럼 느껴져요. 대본을 보고 또 보면서 숙지하면 서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어요.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때도 애틋한 감정이 저절로 생기고요. 촬영하지 않을 때도 서연의 감정선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드라마는 파격적인 러브신으로 초반부터 안방극장을 후끈 달궜다. 김래원과 수애의 베드신, 수중 키스신은 TV 방송용으로는 선정적이라는 질타를 받을 정도로 상당히 수위가 높았다.
“사실 첫 장면부터 격정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게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촬영 전 김래원 씨와 개인적으로 만나 식사도 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어요. 그다지 친하지 않을 때 진한 사랑 연기를 하려니 내심 어색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편하게 찍지 않았나 싶어요.”
사이버대에 입학 지독한 노력파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극중 수애의 남자인 김래원과 사촌오빠로 나오는 이상우의 명품 몸매도 화제가 됐다. 김래원은 군 소집 해제 후 두 달 동안 남산을 오르내리며 체중 15kg을 감량했다고 한다. 수애는 김래원의 몸매에 대해 “실제로 보면 감탄할 정도”라며 “이상우 씨도 몸이 정말 좋다”고 칭찬했다.
수애의 패션은 명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가 걸치고 나오는 의상과 가방이 서연 처지에 맞지 않는 고가 명품이라는 것이다.
“오해가 있었던 같아요. 드라마에서 착용한 시계와 신발, 가방 모두 국내 브랜드 제품으로 알고 있어요. 촬영 전부터 의상을 준비하는 분에게 명품을 자제해야 한다고 일러뒀거든요. 딱 하나가 명품이었는데, 소품 중에서 가장 무난해 보이는 걸로 고른다는 게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나 봐요. 이런 관심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다시는 논란이 일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있어요.”
그는 지독한 노력파다. 2009년 뒤늦게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영어학부에 입학한 것도 그런 성격에서 비롯됐다. 경기여상을 졸업한 후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지만, 연기자로 성공한 뒤에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기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는 사이버대를 선택한 것이다. 배우 생활도 장녀로서 부모님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그동안 그는 좋은 연기자가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지금은 누구보다 연기를 신나게 즐기고 있다.
수애라는 이름을 더욱 빛내준 ‘천일의 약속’ 서연은 11월 28일 드디어 지형과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과연 앞으로도 알츠하이머라는 시련에 초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서연은 아프지만 당차고 꿋꿋한 캐릭터라 처음부터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연기하고 있어요. 이제 점점 더 많은 것을 잊어야 하는 서연과 그런 서연을 감당해야 하는 지형이 어떤 사랑을 펼쳐나갈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세요.”
SBS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여주인공 서연은 느닷없는 불치병 선고에 이렇게 맞섰다. 앞날이 창창한 서른 살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면 서연처럼 꿋꿋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찬바람이 쌩쌩 부는 늦가을 오후, 경기 파주시의 드라마 세트장. 서연을 연기하는 배우 수애(31)는 “내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면 절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서연은 남동생 문건(박유환 분)에게 쌀쌀맞다 싶을 만큼 냉정하게 굴지만 11월 8일 방송에서 속내를 보였다. “나는 날마다 조금씩 바보가 돼가는 치매환자야. 생각만 해도 구질구질해. 문건이만 아니면 지금 그만둬도 되는데…”라고. 그의 병을 뒤늦게 알고 찾아온 지형(김래원 분)에게도 매몰차게 군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눈물이 많아서 울음을 잘 참지 못하는데 서연이는 다르더라고요. 부모 없이 자랐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남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애인 있는 남자와 거리낌 없이 연애할 만큼 당돌한 구석도 있고요. 불치병을 선고받고도 담담하게 대처하는 굳건한 여자죠.”
드라마 ‘무사 백동수’ 후속으로 10월 17일부터 방송된 ‘천일의 약속’은 정혼한 여자가 있는 남자 지형과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 서연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다. 방송가 명콤비인 김수현 작가와 정을영 PD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부모님 전상서’ ‘엄마가 뿔났다’ ‘불꽃’ ‘내 남자의 여자’ ‘인생은 아름다워’ 등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드라마는 지금까지 모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천일의 약속’도 예외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방송 시작 이후 줄곧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다.
더구나 김 작가가 집필한 미니시리즈의 여주인공은 하나같이 인기가 급상승했을 뿐 아니라, 연기력도 크게 향상됐다. ‘청춘의 덫’의 심은하, ‘불꽃’의 이영애, ‘완전한 사랑’의 김희애가 좋은 예다. 수애 역시 ‘수애의 모노드라마’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일취월장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수애가 극중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 결기 어린 분노를 뿜어낸 양치질 신은 이 드라마의 백미로 꼽힌다. 그의 생각도 그럴까.
“양치질 장면도 기억에 남지만 개인적으로는 형광펜과 가위라는 단어를 기억하지 못해 그 말을 절박하게 외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지형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여주며 애교 부리는 장면이나 혼자 소주를 마시며 독백하는 신을 찍을 때는 대본에 네잎클로버를 꽂아뒀어요. 걱정되는 신에 네잎클로버를 꽂아두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 지형과 헤어질 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을 때 어느 쪽이 연기하기가 더 힘들던가요.
“지형과의 이별 신보다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심적 고통이 더 컸어요. 연인과의 이별은 내 의지로 극복할 수 있지만 평생을 함께해온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니까요.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감정을 억제하거나 절제하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서른 살에 기억을 잃어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감정이 복받쳐 오르거든요. 그걸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표현한다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아요. 이번 작품을 마치면 긴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서른 살에 이별 준비 쉽지 않은 연기
▼ 왜 이 작품을 선택했나요.
“사실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을 끝내고 휴식기를 충분히 가지려 했어요. 그러다 이 대본을 보고 바로 출연을 결정했죠. 지금까지 해온 작품과 느낌이 다르고 김수현 선생님이 쓰신 정통 멜로드라마여서 더욱 끌렸어요. 김수현 선생님의 관록과 깊이가 묻어나는 작품이어서 소화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배역에 점점 빠져들고 있어 다행이에요. 서연을 연기하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어요.”
▼ 어떤 때 대리만족을 느끼나요.
“순간순간 느껴요. 지형에게 사랑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할 때도 그렇고, 조건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한 남자를 온전히, 열렬히 사랑하는 서연이 좋아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도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참 부럽기도 하고요. 제가 추구하는 여성상도 서연처럼 내적으로 강인한 여자예요.”
1999년 청소년드라마 ‘학교5’로 데뷔해 드라마 ‘러브레터’ ‘회전목마’에 출연할 때까지 그는 청순한 이미지를 고수했다. 배우 정윤희를 닮은 외모 때문에 한동안 ‘정윤희의 딸’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가 ‘정윤희를 닮은 배우’라는 꼬리표를 떼고 연기력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2008년 영화 ‘님은 먼곳에’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이 작품에서 수애는 월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만나러 베트남까지 찾아가 군인을 상대로 위문 공연을 하는 가수 순이로 등장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수애는 당시 “연기 변신에 성공할 자신이 없어서 그전에는 도전할 엄두조차 못 냈는데 이준익 감독이 확신을 준 덕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데뷔 후 처음 스릴러 영화 ‘심야의 FM’에 출연해 청룡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이리스2’로 불리며 뜨거운 관심을 모은 전작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은 비록 시청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액션 여전사로 분한 수애의 연기 변신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다른 모습이 튀어나올 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해요.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희열과 보람을 느끼고 때론 좌절감을 맛보면서 배우로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촬영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김해숙, 임채무, 이미숙, 박영규, 오미연 등 조연을 맡은 중견배우들은 든든한 조력자를 자처하면서 젊은 배우들에게 연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수애는 “현장 분위기가 좋고 연기자 간 호흡도 잘 맞아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며 김 작가에게서 격려 메시지를 받은 일화를 공개했다.
“대사 양이 많은 데다 속도도 빠르고 내면 연기가 많아 걱정과 부담이 적지 않았어요. 그에 대한 스트레스로 초반에는 경직돼 있었던 게 사실이고요. 그런데 김수현 선생님이 격려를 많이 해주셔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선생님이 간간이 문자로 ‘잘하고 있다’고 격려 메시지를 보내주시거든요. 그걸 볼 때마다 불끈불끈 힘이 나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수진(손예진 분)도 서연처럼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간다. 이번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손예진의 연기를 참고했느냐고 묻자 수애는 “병명만 같을 뿐 인물의 성격도, 작품 내용도 전혀 다르다”며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참고하는 건 대본”이라고 밝혔다.
“대본에 모든 답이 있어요. 김수현 선생님 대사는 연기가 아니라 말처럼 느껴져요. 대본을 보고 또 보면서 숙지하면 서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어요.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때도 애틋한 감정이 저절로 생기고요. 촬영하지 않을 때도 서연의 감정선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드라마는 파격적인 러브신으로 초반부터 안방극장을 후끈 달궜다. 김래원과 수애의 베드신, 수중 키스신은 TV 방송용으로는 선정적이라는 질타를 받을 정도로 상당히 수위가 높았다.
“사실 첫 장면부터 격정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게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촬영 전 김래원 씨와 개인적으로 만나 식사도 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어요. 그다지 친하지 않을 때 진한 사랑 연기를 하려니 내심 어색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편하게 찍지 않았나 싶어요.”
사이버대에 입학 지독한 노력파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극중 수애의 남자인 김래원과 사촌오빠로 나오는 이상우의 명품 몸매도 화제가 됐다. 김래원은 군 소집 해제 후 두 달 동안 남산을 오르내리며 체중 15kg을 감량했다고 한다. 수애는 김래원의 몸매에 대해 “실제로 보면 감탄할 정도”라며 “이상우 씨도 몸이 정말 좋다”고 칭찬했다.
수애의 패션은 명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가 걸치고 나오는 의상과 가방이 서연 처지에 맞지 않는 고가 명품이라는 것이다.
“오해가 있었던 같아요. 드라마에서 착용한 시계와 신발, 가방 모두 국내 브랜드 제품으로 알고 있어요. 촬영 전부터 의상을 준비하는 분에게 명품을 자제해야 한다고 일러뒀거든요. 딱 하나가 명품이었는데, 소품 중에서 가장 무난해 보이는 걸로 고른다는 게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나 봐요. 이런 관심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다시는 논란이 일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있어요.”
그는 지독한 노력파다. 2009년 뒤늦게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영어학부에 입학한 것도 그런 성격에서 비롯됐다. 경기여상을 졸업한 후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지만, 연기자로 성공한 뒤에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기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는 사이버대를 선택한 것이다. 배우 생활도 장녀로서 부모님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그동안 그는 좋은 연기자가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지금은 누구보다 연기를 신나게 즐기고 있다.
수애라는 이름을 더욱 빛내준 ‘천일의 약속’ 서연은 11월 28일 드디어 지형과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과연 앞으로도 알츠하이머라는 시련에 초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서연은 아프지만 당차고 꿋꿋한 캐릭터라 처음부터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연기하고 있어요. 이제 점점 더 많은 것을 잊어야 하는 서연과 그런 서연을 감당해야 하는 지형이 어떤 사랑을 펼쳐나갈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