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타이완 국민의 건국기념일인 쌍십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매년 받는 정기 종합검진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다.
“제 장담하죠. 이렇게 계속 술 먹고 살 안 빼고 막무가내로 살면 5년 안에 죽습니다. 의학담당 기자가 이래서 되겠습니까. 2년째 100kg이 넘고 게다가 올해는 더 쪘네요.”
지난 10여 년간 정기검진과 취재를 통해 안면을 튼 의사는 안전선을 훨씬 넘긴 혈압과 당(糖), 콜레스테롤 수치가 적힌 차트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이렇게 내뱉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걱정스럽다 못해 안쓰럽다는 표정을 읽었다. 머리 뒤편이 깨지듯 아프고 몸이 천근만근 축축 처져 무슨 질병이 튀어나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죽는다’는 얘기를 들을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의사는 “그 모든 증상이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습관, 스트레스에서 나온다”며 “5년 안에 심혈관질환이나 암이 발생할 확률이 거의 99%”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도 난 정신을 못 차렸다. 건강검진 당일 저녁, 이미 잡아놓은 취재원과의 술자리에서 ‘되바라진’ 의사를 탓하며 또 폭음을 한 것. “의사는 모두 협박꾼이다” “두고 봐라, 너보다 오래 살 거니까”…. 의사에게 당한 수모를 술로 보상했다. 다음 날 저녁은 상사와 또 술 한 잔. 사건은 그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서 벌어졌다. 변기에 앉아 힘을 주는데 피가 숫제 샤워 물줄기처럼 펑펑 쏟아져 나왔다. 정신이 혼미할 지경. 치질이었다. 술로 예민해진 종기가 스트레스를 받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아! 이렇게 가는 것인가.’
‘운출생운(運出生運)’에 필 꽂히다
오전에 휴가를 내고 오후에 출근했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단 살고 봐야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헬스장에 다닐까, 아니면 배드민턴 모임에 동참할까. 매일 등산을 해? 문제는 시간과 지루함이었다. 난 일생에 딱 3번 다이어트를 해봤다. 그때마다 선택한 게 헬스였다. 새벽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이어트에 성공했지만 체중 감량은 10kg 언저리. 재미없는 운동을 피눈물 나게 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도저히 다시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 몸무게는 4년 사이에 30kg이나 불었다. 105kg. 주변 사람들은 그쯤 되면 몸무게가 아니라 ‘가축의 중량’이라고 했다. 0.1t. 나에겐 단판 승부가 아닌, 꾸준히 아무 때나 재미를 느끼며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짧은 기간의 무리한 다이어트가 얼마나 부작용이 심한지는 취재로도, 경험으로도 익히 아는 바였다. 의학담당을 한 지 14년, 이론에만 밝았지 결국 제 머리 깎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저런 번민에 빠졌을 때, 책상에 놓인 한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십중팔구 암에게 이긴다’.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가 쓴 책이었다. 박 교수는 대장암 분야의 명의로 초대 국립암센터장을 지냈고, 금연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책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중 ‘운출생운(運出生運)’이란 낱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게 뭐지? 자세히 읽어보니 ‘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생활 속 운동’의 줄임말.
박 교수는 이 책에서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고 틈날 때마다 빠르게 자주 걸으면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살이 빠지고 건강해지며 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책은 그의 경험담을 오롯이 담았다. 그는 병원에서 회진을 돌 때도, 출퇴근길에도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하철과 버스도 한두 정거장 미리 내려 걸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뛰어다닌다. 책 표지 속 그는 하얀 가운, 정장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바로 이거다.’ 시쳇말로 ‘필이 꽂혔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집에서 서대문구 충정로 회사까지는 2km 남짓이니 출퇴근길에 걷고 계단만 오르내려도 4km. 그날 오후 당장 주인을 닮아 기름만 퍼먹고 여기저기 끊임없이 고장을 일으키는 나의 애마를 버렸다. 치질을 치료한다는 빌미로 술도 끊었다. ‘과연 내가 평생 걸어 다닐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끝없이 밀려왔지만 모든 여건이 나를 강제했다. 책을 내려놓고 책상 밑을 보니 사놓고 버려놓다시피 한 ‘워킹화’가 눈에 들어왔다. 날씨도 좋았다. 차를 버리고 걷는 퇴근길. 가로등에 비친 단풍 든 나무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날 처음 알았다.
몸으로 느낀 자연과 ‘일상의 재발견’
다음 날 아침 백팩에 구두를 넣고 회사를 향해 걸었다. 예의를 갖춰야 하는 취재원이 있기에 구두는 필수다(요즘엔 운동화형 구두가 인기다. 비싼 게 흠이지만). 오피스텔 문을 열고 회사의 내 자리에 앉기까지 정확히 25분. 물론 6층 사무실까진 계단을 이용했다. 스마트폰에 담긴 음악을 들으며 씩씩하고 빠르게 걸었다. 자리에 앉으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체력이 바닥났구나’하는 생각이 차를 버릴 결심을 더욱 굳게 했다. 기사를 쓰다 막히면 회사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출퇴근길을 포함해 하루 10km를 걷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회사 뒤편을 따라 신촌의 안산 일대를 오르내리기도 했다. 일과시간에 틈이 나지 않으면 퇴근길을 일부러 돌아서 갔다.
일주일을 걷고 나서 체중계에 올라가니 3kg이 빠져 있었다. ‘아, 되는구나!’ 감이 오기 시작했다. 술을 끊었더니 저녁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치질 때문에 약을 먹는다고 소문을 내니 술을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 덕분에 10km를 걷고 난 후에도 한강공원을 찾을 수 있었다. 한강공원까지 가고 오는 데 왕복 4km, 한강변(마포대교에서 동작대교까지)을 걷는 데 6km, 모두 합해 10km를 더 걸었다. 갑자기 2km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차를 몰고 다녔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2주 차부터는 반경 5km 이내의 식사 약속이나 취재는 무조건 걸어 다녔다. 먼 거리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되 박 교수처럼 한두 정거장 전에 내려 걸었다.
살이 빠지는 게 매일 눈에 보이니 욕심이 생겼다. 몸에 쌓인 지방은 그날 먹은 에너지(음식)에서 운동하는 데 쓴 에너지를 뺀 결과물. 마이너스가 되면 그만큼 살이 빠진다. 지방을 태워 없애는 것이다. 아웃풋은 더 늘릴 수 없으니 인풋을 줄이기로 했다. 하루 10km 이상을 걸으니 발목과 무릎에 통증이 심해 걷는 양을 더 늘릴 수도 없었다. 어차피 치질약이 음식 먹는 중간에 물 한 잔(큰 잔)과 함께 복용해야 하는 것이라, 포만감 때문에 음식 섭취량도 줄 수밖에 없었다. 차제에 먹는 양을 평소의 절반으로 줄이기로 하고 실행에 옮겼다. 치질약과 함께 항상화제와 각종 비타민제도 복용했다. 다이어트로 올 수 있는 영양 결손을 막으려는 처방이었다. 약과 물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차를 버리고 걸은 지 3주 차가 되니 또 다른 재미가 찾아왔다. ‘일상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나 할까. 마포에서 충정로 사이에 손기정 체육공원이 있는 것도, 참기름을 직접 짜내는 옛 방앗간과 아담한 아틀리에가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현감리교회 첨탑에 달린 시계가 그렇게 정확하고 멋있다는 사실, 빌딩 앞에 세운 각각의 조형물은 빌딩주의 철학을 담았다는 사실도 새삼 알았다. 계절 변화를 몸으로 느끼게 된 건 축복이었다. 단풍이 드는지도, 낙엽이 지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세월에 비하면 격세지감. 신촌의 안산 꼭대기 봉수대에서 서울 시내가 다 보이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인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살은 빠지고 주머니는 두둑
누가 기자가 아니랄까 봐, 곳곳에 비판할 게 널렸다. 차를 버리고 ‘뚜벅이’가 되고 보니 차량과 오토바이의 인도 위 주정차 및 운행 실태가 한눈에 보였다. 거의 폭력에 가까웠다. 새로 깐 보도블록이 왜 그리 울퉁불퉁해지는지 답이 절로 나왔다. 주먹구구식 도시행정도 문제였다.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은 9개월째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면서도 보행자 도로 폭을 단 1m도 확보해 놓지 않았다. 서로 걸어가면 어깨가 마주칠 지경. 갓길에 주차한 차 탓에 출퇴근길은 교통지옥을 방불케 했다.
중앙 버스전용차선제도 권력은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서부지방검찰청으로는 좌회전이 금지됐는데, 마주한 마포경찰서로의 좌회전은 버스 전용차선과 횡단보도를 파고들면서까지 허용된 것. 마포에서만은 경찰이 검찰보다 힘이 센가. 사실 도로 신호체계 조정은 경찰 몫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승용차의 도심통행 자체를 제한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걷다 보니 평소에는 무관심했던 대기환경에도 관심이 커졌다. 공장도 없는 마포가 강남과 함께 공기 질이 가장 떨어지는 지역으로 매번 손꼽히는 것은 교통지옥 상황에서 차량이 뿜어대는 매연이 주범 노릇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를 보며 걸을 때면 ‘나는 그래도 움직인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매연 때문에 짜증이 날 때도 적지 않다.
내가 요즘 마스크를 쓰고 출퇴근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날씨가 추워져서이기도 하지만 매연을 조금이라도 적게 마시려는 꼼수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씩 목도하는 경찰 전경버스의 매연 배출 행태는 꼴불견 수준을 벗어나 화까지 치밀게 한다. 일반 버스는 청정 LNG 버스로 바꿔 흰 수증기를 내뿜지만 마포경찰서를 출입하는 전경버스는 유독 시커먼 연기를 뽕뽕 내뱉으면서 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연 때문에 걷지 않는다’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 담 못 담근다는 것과 똑같다. 후배 기자들이 “나쁜 공기 속을 걷다가 더 일찍 가는 게 아니냐”고 험담할 때면 “비만으로 배 터져 죽는 것보다 폐암으로 죽는 게 더 우아하다”고 농 섞인 답을 하곤 한다. 무슨 일이든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으면 그걸 택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난 걷기 시작하면서 ‘환경적 인간’으로 거듭났다. 내가 버린 자동차의 엔진은 15년 차 디젤, 게다가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므로 다른 시민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총량을 줄이는 데 일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자동차를 버리면서 주머니도 두둑해졌다. 한 달에 20만 원 이상 나오던 기름값, 주제 파악 못하고 지불했던 술값이 사라졌다. 집과 회사식당에서 식사하는 횟수가 늘다 보니 몸무게가 준 것만큼 밥값도 줄었다. 한 달 후 신용카드 결제액이 그 전달의 절반. 앞으로 자동차세와 자동차 보험료, 수리비 등 차량 유지비가 줄어든 효과가 나타나면 내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질 것이다. 자동차를 버리고 미친 듯 걸은 것밖에 없는데 정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바둑도 그렇지만 인생은 잘 버려야 성공한다고들 한다. 자동차를 버리면서 얻는 것은 건강만이 아니다. 도시 서민의 삶이 눈에 들어오고 환경에 대한 자각, 도시계획에 대한 식견이 생긴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이웃과 인사하기 시작하면 지역 공동체에도 관심이 커진다. 운전대를 놓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니 사색적이고 철학적 인간이 돼간다. 박재갑 교수는 책에서 우리 인간이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야만 하는 이유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한다.
“인류 조상은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살았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유전자를 지녔다. 그런데 인류 문명은 인간이 타고난 유전자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먹을 것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지면서 걷고 달리는 일이 줄기 시작했다. 걷고 달려야 하는 순간에도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유전자가 달라지는 것은 손상되거나 돌연변이를 일으킬 때뿐이고 이는 곧 암과 같은 질병의 발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몸이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자를 지닌 이상 우리 인간은 걷고 달리는 등 끊임없이 몸을 쓰고 살아야 한다.”
43→37인치 인간의 허리 되다
참, 걷기 예찬을 하다 보니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의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차를 버린 후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에 대한 것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11월 27일 오후 현재 몸무게 88kg. 10월 12일 퇴근길부터 걷기 시작했으니 7주 만에 17kg이 빠진 셈이다. 허리둘레는 43인치에서 37인치로 줄었다. 동물의 중량에서 인간의 몸무게로, 동물의 허리에서 인간의 허리로 돌아왔다. 어제는 3년 만에 처음으로 큰옷 전문매장이 아닌 일반 매장에서 옷을 샀다. 38인치 바지를 샀는데 좀 헐렁했다.
7주 만에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성 두통도 말끔히 사라졌고 자다가 2~3번씩 깨는 일도 없어졌다. 후배들이 얼굴이 맑아졌다고 놀린다. 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치에 많이 근접해 있을 터. 이런 추세라면 가로수에 신록이 푸르른 내년 여름쯤엔 10년 전 나로 돌아가 있지 않을까. 귀마개와 장갑 등 겨울 걷기에 대비한 각종 장구를 사면서 나와 같은 신인류 ‘호모 워커스(walkers)’의 출현이 행여나 이 복잡다단한 세상 문제의 해답은 아닐까라는 공상을 해봤다.
“제 장담하죠. 이렇게 계속 술 먹고 살 안 빼고 막무가내로 살면 5년 안에 죽습니다. 의학담당 기자가 이래서 되겠습니까. 2년째 100kg이 넘고 게다가 올해는 더 쪘네요.”
지난 10여 년간 정기검진과 취재를 통해 안면을 튼 의사는 안전선을 훨씬 넘긴 혈압과 당(糖), 콜레스테롤 수치가 적힌 차트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이렇게 내뱉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걱정스럽다 못해 안쓰럽다는 표정을 읽었다. 머리 뒤편이 깨지듯 아프고 몸이 천근만근 축축 처져 무슨 질병이 튀어나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죽는다’는 얘기를 들을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의사는 “그 모든 증상이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습관, 스트레스에서 나온다”며 “5년 안에 심혈관질환이나 암이 발생할 확률이 거의 99%”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도 난 정신을 못 차렸다. 건강검진 당일 저녁, 이미 잡아놓은 취재원과의 술자리에서 ‘되바라진’ 의사를 탓하며 또 폭음을 한 것. “의사는 모두 협박꾼이다” “두고 봐라, 너보다 오래 살 거니까”…. 의사에게 당한 수모를 술로 보상했다. 다음 날 저녁은 상사와 또 술 한 잔. 사건은 그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서 벌어졌다. 변기에 앉아 힘을 주는데 피가 숫제 샤워 물줄기처럼 펑펑 쏟아져 나왔다. 정신이 혼미할 지경. 치질이었다. 술로 예민해진 종기가 스트레스를 받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아! 이렇게 가는 것인가.’
‘운출생운(運出生運)’에 필 꽂히다
오전에 휴가를 내고 오후에 출근했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단 살고 봐야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헬스장에 다닐까, 아니면 배드민턴 모임에 동참할까. 매일 등산을 해? 문제는 시간과 지루함이었다. 난 일생에 딱 3번 다이어트를 해봤다. 그때마다 선택한 게 헬스였다. 새벽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이어트에 성공했지만 체중 감량은 10kg 언저리. 재미없는 운동을 피눈물 나게 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도저히 다시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 몸무게는 4년 사이에 30kg이나 불었다. 105kg. 주변 사람들은 그쯤 되면 몸무게가 아니라 ‘가축의 중량’이라고 했다. 0.1t. 나에겐 단판 승부가 아닌, 꾸준히 아무 때나 재미를 느끼며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짧은 기간의 무리한 다이어트가 얼마나 부작용이 심한지는 취재로도, 경험으로도 익히 아는 바였다. 의학담당을 한 지 14년, 이론에만 밝았지 결국 제 머리 깎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저런 번민에 빠졌을 때, 책상에 놓인 한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십중팔구 암에게 이긴다’.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가 쓴 책이었다. 박 교수는 대장암 분야의 명의로 초대 국립암센터장을 지냈고, 금연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책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중 ‘운출생운(運出生運)’이란 낱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게 뭐지? 자세히 읽어보니 ‘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생활 속 운동’의 줄임말.
박 교수는 이 책에서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고 틈날 때마다 빠르게 자주 걸으면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살이 빠지고 건강해지며 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책은 그의 경험담을 오롯이 담았다. 그는 병원에서 회진을 돌 때도, 출퇴근길에도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하철과 버스도 한두 정거장 미리 내려 걸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뛰어다닌다. 책 표지 속 그는 하얀 가운, 정장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바로 이거다.’ 시쳇말로 ‘필이 꽂혔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집에서 서대문구 충정로 회사까지는 2km 남짓이니 출퇴근길에 걷고 계단만 오르내려도 4km. 그날 오후 당장 주인을 닮아 기름만 퍼먹고 여기저기 끊임없이 고장을 일으키는 나의 애마를 버렸다. 치질을 치료한다는 빌미로 술도 끊었다. ‘과연 내가 평생 걸어 다닐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끝없이 밀려왔지만 모든 여건이 나를 강제했다. 책을 내려놓고 책상 밑을 보니 사놓고 버려놓다시피 한 ‘워킹화’가 눈에 들어왔다. 날씨도 좋았다. 차를 버리고 걷는 퇴근길. 가로등에 비친 단풍 든 나무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날 처음 알았다.
몸으로 느낀 자연과 ‘일상의 재발견’
다음 날 아침 백팩에 구두를 넣고 회사를 향해 걸었다. 예의를 갖춰야 하는 취재원이 있기에 구두는 필수다(요즘엔 운동화형 구두가 인기다. 비싼 게 흠이지만). 오피스텔 문을 열고 회사의 내 자리에 앉기까지 정확히 25분. 물론 6층 사무실까진 계단을 이용했다. 스마트폰에 담긴 음악을 들으며 씩씩하고 빠르게 걸었다. 자리에 앉으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체력이 바닥났구나’하는 생각이 차를 버릴 결심을 더욱 굳게 했다. 기사를 쓰다 막히면 회사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출퇴근길을 포함해 하루 10km를 걷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회사 뒤편을 따라 신촌의 안산 일대를 오르내리기도 했다. 일과시간에 틈이 나지 않으면 퇴근길을 일부러 돌아서 갔다.
일주일을 걷고 나서 체중계에 올라가니 3kg이 빠져 있었다. ‘아, 되는구나!’ 감이 오기 시작했다. 술을 끊었더니 저녁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치질 때문에 약을 먹는다고 소문을 내니 술을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 덕분에 10km를 걷고 난 후에도 한강공원을 찾을 수 있었다. 한강공원까지 가고 오는 데 왕복 4km, 한강변(마포대교에서 동작대교까지)을 걷는 데 6km, 모두 합해 10km를 더 걸었다. 갑자기 2km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차를 몰고 다녔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2주 차부터는 반경 5km 이내의 식사 약속이나 취재는 무조건 걸어 다녔다. 먼 거리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되 박 교수처럼 한두 정거장 전에 내려 걸었다.
살이 빠지는 게 매일 눈에 보이니 욕심이 생겼다. 몸에 쌓인 지방은 그날 먹은 에너지(음식)에서 운동하는 데 쓴 에너지를 뺀 결과물. 마이너스가 되면 그만큼 살이 빠진다. 지방을 태워 없애는 것이다. 아웃풋은 더 늘릴 수 없으니 인풋을 줄이기로 했다. 하루 10km 이상을 걸으니 발목과 무릎에 통증이 심해 걷는 양을 더 늘릴 수도 없었다. 어차피 치질약이 음식 먹는 중간에 물 한 잔(큰 잔)과 함께 복용해야 하는 것이라, 포만감 때문에 음식 섭취량도 줄 수밖에 없었다. 차제에 먹는 양을 평소의 절반으로 줄이기로 하고 실행에 옮겼다. 치질약과 함께 항상화제와 각종 비타민제도 복용했다. 다이어트로 올 수 있는 영양 결손을 막으려는 처방이었다. 약과 물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차를 버리고 걸은 지 3주 차가 되니 또 다른 재미가 찾아왔다. ‘일상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나 할까. 마포에서 충정로 사이에 손기정 체육공원이 있는 것도, 참기름을 직접 짜내는 옛 방앗간과 아담한 아틀리에가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현감리교회 첨탑에 달린 시계가 그렇게 정확하고 멋있다는 사실, 빌딩 앞에 세운 각각의 조형물은 빌딩주의 철학을 담았다는 사실도 새삼 알았다. 계절 변화를 몸으로 느끼게 된 건 축복이었다. 단풍이 드는지도, 낙엽이 지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세월에 비하면 격세지감. 신촌의 안산 꼭대기 봉수대에서 서울 시내가 다 보이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인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살은 빠지고 주머니는 두둑
누가 기자가 아니랄까 봐, 곳곳에 비판할 게 널렸다. 차를 버리고 ‘뚜벅이’가 되고 보니 차량과 오토바이의 인도 위 주정차 및 운행 실태가 한눈에 보였다. 거의 폭력에 가까웠다. 새로 깐 보도블록이 왜 그리 울퉁불퉁해지는지 답이 절로 나왔다. 주먹구구식 도시행정도 문제였다.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은 9개월째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면서도 보행자 도로 폭을 단 1m도 확보해 놓지 않았다. 서로 걸어가면 어깨가 마주칠 지경. 갓길에 주차한 차 탓에 출퇴근길은 교통지옥을 방불케 했다.
중앙 버스전용차선제도 권력은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서부지방검찰청으로는 좌회전이 금지됐는데, 마주한 마포경찰서로의 좌회전은 버스 전용차선과 횡단보도를 파고들면서까지 허용된 것. 마포에서만은 경찰이 검찰보다 힘이 센가. 사실 도로 신호체계 조정은 경찰 몫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승용차의 도심통행 자체를 제한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걷다 보니 평소에는 무관심했던 대기환경에도 관심이 커졌다. 공장도 없는 마포가 강남과 함께 공기 질이 가장 떨어지는 지역으로 매번 손꼽히는 것은 교통지옥 상황에서 차량이 뿜어대는 매연이 주범 노릇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를 보며 걸을 때면 ‘나는 그래도 움직인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매연 때문에 짜증이 날 때도 적지 않다.
내가 요즘 마스크를 쓰고 출퇴근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날씨가 추워져서이기도 하지만 매연을 조금이라도 적게 마시려는 꼼수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씩 목도하는 경찰 전경버스의 매연 배출 행태는 꼴불견 수준을 벗어나 화까지 치밀게 한다. 일반 버스는 청정 LNG 버스로 바꿔 흰 수증기를 내뿜지만 마포경찰서를 출입하는 전경버스는 유독 시커먼 연기를 뽕뽕 내뱉으면서 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연 때문에 걷지 않는다’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 담 못 담근다는 것과 똑같다. 후배 기자들이 “나쁜 공기 속을 걷다가 더 일찍 가는 게 아니냐”고 험담할 때면 “비만으로 배 터져 죽는 것보다 폐암으로 죽는 게 더 우아하다”고 농 섞인 답을 하곤 한다. 무슨 일이든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으면 그걸 택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난 걷기 시작하면서 ‘환경적 인간’으로 거듭났다. 내가 버린 자동차의 엔진은 15년 차 디젤, 게다가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므로 다른 시민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총량을 줄이는 데 일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자동차를 버리면서 주머니도 두둑해졌다. 한 달에 20만 원 이상 나오던 기름값, 주제 파악 못하고 지불했던 술값이 사라졌다. 집과 회사식당에서 식사하는 횟수가 늘다 보니 몸무게가 준 것만큼 밥값도 줄었다. 한 달 후 신용카드 결제액이 그 전달의 절반. 앞으로 자동차세와 자동차 보험료, 수리비 등 차량 유지비가 줄어든 효과가 나타나면 내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질 것이다. 자동차를 버리고 미친 듯 걸은 것밖에 없는데 정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바둑도 그렇지만 인생은 잘 버려야 성공한다고들 한다. 자동차를 버리면서 얻는 것은 건강만이 아니다. 도시 서민의 삶이 눈에 들어오고 환경에 대한 자각, 도시계획에 대한 식견이 생긴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이웃과 인사하기 시작하면 지역 공동체에도 관심이 커진다. 운전대를 놓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니 사색적이고 철학적 인간이 돼간다. 박재갑 교수는 책에서 우리 인간이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야만 하는 이유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한다.
“인류 조상은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살았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유전자를 지녔다. 그런데 인류 문명은 인간이 타고난 유전자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먹을 것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지면서 걷고 달리는 일이 줄기 시작했다. 걷고 달려야 하는 순간에도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유전자가 달라지는 것은 손상되거나 돌연변이를 일으킬 때뿐이고 이는 곧 암과 같은 질병의 발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몸이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자를 지닌 이상 우리 인간은 걷고 달리는 등 끊임없이 몸을 쓰고 살아야 한다.”
43→37인치 인간의 허리 되다
참, 걷기 예찬을 하다 보니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의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차를 버린 후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에 대한 것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11월 27일 오후 현재 몸무게 88kg. 10월 12일 퇴근길부터 걷기 시작했으니 7주 만에 17kg이 빠진 셈이다. 허리둘레는 43인치에서 37인치로 줄었다. 동물의 중량에서 인간의 몸무게로, 동물의 허리에서 인간의 허리로 돌아왔다. 어제는 3년 만에 처음으로 큰옷 전문매장이 아닌 일반 매장에서 옷을 샀다. 38인치 바지를 샀는데 좀 헐렁했다.
7주 만에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성 두통도 말끔히 사라졌고 자다가 2~3번씩 깨는 일도 없어졌다. 후배들이 얼굴이 맑아졌다고 놀린다. 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치에 많이 근접해 있을 터. 이런 추세라면 가로수에 신록이 푸르른 내년 여름쯤엔 10년 전 나로 돌아가 있지 않을까. 귀마개와 장갑 등 겨울 걷기에 대비한 각종 장구를 사면서 나와 같은 신인류 ‘호모 워커스(walkers)’의 출현이 행여나 이 복잡다단한 세상 문제의 해답은 아닐까라는 공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