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말, 심대평 충남지사의 관용 차가 충남도청 청사를 빠져나온 것은 오전 10시30분경. 목적지는 1시간30분 거리에 위치한 충남 청양군 장평면 지천리. 몇몇 관내 기관장들과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나선 심 지사의 승용차에 동승한 기자는 자연스레 심 지사를 둘러싸고 있는 ‘소문과 진실’ 사이를 탐험했다. 먼저 자민련 탈당과 본격 정치활동 등에 관련한 정치적 입장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정치적 상황을 예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때가 되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생기고, 나에게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때가 되면 나는 또 어디에서, 누군가와 무슨 ‘일’을 할 것이다.”
판 흔들어 활동공간 만들기
평소 말을 아끼던 모습과 달리 심 지사는 분명하게 자신의 ‘정치관’을 제시했다. 심 지사는 10개월 뒤인 2005년 3월8일 자민련을 탈당, 이를 현실화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심 지사 주변엔 중부권 신당설과 여권과의 연대론이 동시에 따라붙는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입당과 총리설 등 온갖 ‘설’도 춤을 춘다. 심 지사에게 정말 때가 온 것일까. 심 지사는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심 지사의 결단을 부추긴 것은 두 동강 난 행정수도라는 것이 측근들의 이구동성이다.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처지지만 심 지사는 ‘행정중심 복합도시특별법’(이하 특별법)에 따라 추진될 행정중심도시에 대해 불만이 많다. 반쪽 수도란 의미다. 심 지사 한 핵심 측근의 설명이다.
“심 지사는 중앙정치권의 정치 놀음에 따라 반쪽 수도가 결정됐다고 본다. 그 와중에 거중조정에 나서야 할 자민련의 무력함에 또 분노하고 절망했다.”
자민련을 나온 배경에는 꽉 막힌 정치적 입지도 작용했다. 심 지사는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3선 제한 규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자연스럽게 변화에 순응하든가, 공세 전환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심 지사는 후자를 택했다. 크게 판을 흔들어 활동공간을 만든 것이다.”
마침 JP(자민련 김종필 전 총재)가 떠난 중원(충청)은 무주공산, 주인이 없다. 행정수도는 충청을 관통하는 핵심 쟁점이다. 그러나 잘못 건드리면 내상을 입기 십상인 양날의 칼이다. 때문에 누구도 선뜻 거머쥘 생각을 않는다. 판 엎기에 나선 심 지사가 이 두 개의 핫 이슈를 하나로 묶어 명분과 주도권을 선점했다.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뒤통수를 친 기습이다. 한 측근은 그런 심 지사를 ‘황산벌 전투에 나선 계백’에 비유한다.
문제는 방법이다. 심 지사 본인은 신당 창당 의지를 분명히 했다. 창당 시나리오도 나온다. 4월 공주와 아산 재·보궐선거에 심 지사의 5000결사대가 투입된다. 장수는 정진석 전 의원과 이명수 전 부지사. 이들을 종횡으로 묶는 끈은 ‘무소속 연대’. 거기에 ‘심대평 브랜드’를 보태 평가를 받는다는 것. 이후 삼고초려에 나섰으나 영입에 실패한 염홍철 대전시장, 이원종 충북도지사, 손학규 경기도지사, 김진선 강원도지사 등과 접촉해 동조 세력을 규합한다. 극심한 내홍에 휩싸인 한나라당 일부 인사의 동참도 유도하고 ‘뉴 라이트’와의 전략적 제휴도 모색한다. 이를 토대로 2005년 말, 중부권 신당을 띄운다는 그림이다.
한 단계 진일보한 ‘버전’도 눈에 띈다. 이른바 심 지사의 대권출마론이다. 자민련의 조부영 전 부총재는 10일, “심 지사는 2007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애드벌룬을 띄웠다. 정진석 전 의원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보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다. 한 측근의 토로다.
“심 지사는 15년에 걸쳐 대전시장과 충남도지사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충청에선 ‘킹’이다. 그러나 충청을 벗어난 그의 경쟁력은 검증받은 적이 없다. JP도 ‘불임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여년간 발버둥쳤지만 결국 실패했다. 심대평 브랜드가 JP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인사는 “2007년 대권출마설은 정치적 재기에 나선 몇몇 정치인들의 홍보용 멘트”라고 평가했다.
또 신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심 지사 주변에서부터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측근은 “신당론자들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충청과 중부권이라는 지역 기반을 입에 올린 것이 첫 번째 실수고, 창당의 명분과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두 번째 실수다”고 평가절하했다.
정치력 증명 등 현실 벽 높아
그렇다면 40여년 공직의 길을 걸어온 심 지사가 ‘도박’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한 측근은 심 지사가 또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른바 중립내각에 입각한 총리론이다. 한 측근의 설명이다.
“심 지사는 언젠가는 다시 행정수도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대선을 전후해 서울과 수도권에서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경우 출마 후보들이 무슨 공약을 내걸겠는가. 2002년 공약이 지금 반쪽으로 줄어든 것도 결국 정치 놀음이 빚은 비극이다. 이를 막을 비책을 생각하고 있다. 나아가 남은 ‘반쪽’을 찾아 자신의 손으로 제대로 된 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싶어한다.”
이 측근은 이와 관련 ‘자신의 손으로’란 부분을 강조한다. 여야의 정치적 목소리를 배제하고 흔들림 없이 자신이 손으로 행정수도를 건설할 수 있는 자리는 중립내각의 수장, 바로 총리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자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이를 토대로 여야를 넘나드는 외교전을 펼 수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 각 정파와 대등한 위치에서 제휴와 연정이 가능해진다. 그때가 되면 정부 여당에 거국적인 중립내각 구성을 외칠 수도 있다.”
심 지사와 총리는 낯선 관계가 아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심 지사는 여권 요로로부터 몇 차례 입당 제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고, 그때마다 따라다닌 당근이 총리였다. 참여정부 초기 지방 순시에 나선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은 술자리에서 이런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심 지사는 우리가 매우 필요로 하는 분인데, 들어와서 수십 년 쌓은 행정 경험을 총리로 꽃피워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물론 이 카드는 총선을 눈앞에 둔 여권의 전략으로, 지금은 용도폐기됐다. 백 전 실장도 심 지사의 총리행에 대해 부정적이다. 백 전 실장은 “주변에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 측근은 “과거의 경우 여권에서 제의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스스로 구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차이점”이라며 “4월 재·보궐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만 통과하면 심 지사가 정치 공간을 확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이든 노정객이 갈 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행정관료로 살아온 심 지사의 정치력에 대한 의문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이다. 1년여 준비한 결단에 비해 심 지사의 결단에 동참한 5000결사대의 면면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콘텐츠’ 부재는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심 지사 측의 중부권 창당설에 혼란을 겪던 중앙정치권은 이미 그 충격을 모두 흡수한 표정이다.
“정치적 상황을 예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때가 되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생기고, 나에게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때가 되면 나는 또 어디에서, 누군가와 무슨 ‘일’을 할 것이다.”
판 흔들어 활동공간 만들기
평소 말을 아끼던 모습과 달리 심 지사는 분명하게 자신의 ‘정치관’을 제시했다. 심 지사는 10개월 뒤인 2005년 3월8일 자민련을 탈당, 이를 현실화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심 지사 주변엔 중부권 신당설과 여권과의 연대론이 동시에 따라붙는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입당과 총리설 등 온갖 ‘설’도 춤을 춘다. 심 지사에게 정말 때가 온 것일까. 심 지사는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심 지사의 결단을 부추긴 것은 두 동강 난 행정수도라는 것이 측근들의 이구동성이다.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처지지만 심 지사는 ‘행정중심 복합도시특별법’(이하 특별법)에 따라 추진될 행정중심도시에 대해 불만이 많다. 반쪽 수도란 의미다. 심 지사 한 핵심 측근의 설명이다.
“심 지사는 중앙정치권의 정치 놀음에 따라 반쪽 수도가 결정됐다고 본다. 그 와중에 거중조정에 나서야 할 자민련의 무력함에 또 분노하고 절망했다.”
자민련을 나온 배경에는 꽉 막힌 정치적 입지도 작용했다. 심 지사는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3선 제한 규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자연스럽게 변화에 순응하든가, 공세 전환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심 지사는 후자를 택했다. 크게 판을 흔들어 활동공간을 만든 것이다.”
마침 JP(자민련 김종필 전 총재)가 떠난 중원(충청)은 무주공산, 주인이 없다. 행정수도는 충청을 관통하는 핵심 쟁점이다. 그러나 잘못 건드리면 내상을 입기 십상인 양날의 칼이다. 때문에 누구도 선뜻 거머쥘 생각을 않는다. 판 엎기에 나선 심 지사가 이 두 개의 핫 이슈를 하나로 묶어 명분과 주도권을 선점했다.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뒤통수를 친 기습이다. 한 측근은 그런 심 지사를 ‘황산벌 전투에 나선 계백’에 비유한다.
자민련 김학원 대표는 3월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심대평 충남도지사의 탈당을 ‘배신 행위’라고 성토했다.
한 단계 진일보한 ‘버전’도 눈에 띈다. 이른바 심 지사의 대권출마론이다. 자민련의 조부영 전 부총재는 10일, “심 지사는 2007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애드벌룬을 띄웠다. 정진석 전 의원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보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다. 한 측근의 토로다.
“심 지사는 15년에 걸쳐 대전시장과 충남도지사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충청에선 ‘킹’이다. 그러나 충청을 벗어난 그의 경쟁력은 검증받은 적이 없다. JP도 ‘불임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여년간 발버둥쳤지만 결국 실패했다. 심대평 브랜드가 JP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인사는 “2007년 대권출마설은 정치적 재기에 나선 몇몇 정치인들의 홍보용 멘트”라고 평가했다.
또 신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심 지사 주변에서부터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측근은 “신당론자들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충청과 중부권이라는 지역 기반을 입에 올린 것이 첫 번째 실수고, 창당의 명분과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두 번째 실수다”고 평가절하했다.
정치력 증명 등 현실 벽 높아
그렇다면 40여년 공직의 길을 걸어온 심 지사가 ‘도박’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한 측근은 심 지사가 또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른바 중립내각에 입각한 총리론이다. 한 측근의 설명이다.
염홍철 대전시장(왼쪽), 정진석 전 의원.
이 측근은 이와 관련 ‘자신의 손으로’란 부분을 강조한다. 여야의 정치적 목소리를 배제하고 흔들림 없이 자신이 손으로 행정수도를 건설할 수 있는 자리는 중립내각의 수장, 바로 총리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충남 연기군 읍내 풍경.
심 지사와 총리는 낯선 관계가 아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심 지사는 여권 요로로부터 몇 차례 입당 제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고, 그때마다 따라다닌 당근이 총리였다. 참여정부 초기 지방 순시에 나선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은 술자리에서 이런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심 지사는 우리가 매우 필요로 하는 분인데, 들어와서 수십 년 쌓은 행정 경험을 총리로 꽃피워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물론 이 카드는 총선을 눈앞에 둔 여권의 전략으로, 지금은 용도폐기됐다. 백 전 실장도 심 지사의 총리행에 대해 부정적이다. 백 전 실장은 “주변에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 측근은 “과거의 경우 여권에서 제의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스스로 구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차이점”이라며 “4월 재·보궐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만 통과하면 심 지사가 정치 공간을 확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이든 노정객이 갈 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행정관료로 살아온 심 지사의 정치력에 대한 의문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이다. 1년여 준비한 결단에 비해 심 지사의 결단에 동참한 5000결사대의 면면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콘텐츠’ 부재는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심 지사 측의 중부권 창당설에 혼란을 겪던 중앙정치권은 이미 그 충격을 모두 흡수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