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한 신형 쏘나타.
이 살벌한 전쟁터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선수로 뛰고 있는 것이 현대·기아차 그룹이다. 현대·기아차는 그간 양적 팽창과 더불어 세계 수준의 품질 향상에 매진해왔다. 그 결과 2004년을 기점으로 시장 점유율은 물론 품질에서도 비교적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문제는 낮은 브랜드 파워다.
브랜드 조사기관 ‘인터브랜드’에 따르면 현재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높은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곳은 도요타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혼다, 포드, 폴크스바겐(VW), 포르셰, 아우디, 닛산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세계 7위 수준의 생산 규모를 갖췄음에도 브랜드 인지도에서는 그만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 렉서스 미국서 돌풍으로 ‘브랜드 신화’ 찬사
현대·기아차는 이에 1월19일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상품성에 걸맞은 브랜드 가치와 경쟁력 확보를 통해 글로벌 톱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2010년 이후 세계 30대 브랜드 및 자동차 부문 5대 브랜드에 진입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선도 업체들의 기술 경쟁력과 마케팅 능력, 브랜드 파워가 워낙 막강한 까닭이다. 현대·기아차 측은 특히 BMW, 닛산의 성공 사례를 눈여겨보았다고 했다.
최근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BMW는 ‘고급 차의 대명사’로 불린다. 1916년 설립 이래 꾸준한 브랜드 관리를 통해 지금의 안정적이고 강력한 브랜드를 형성했다. 때문에 BMW는 마케팅 전문가들에게서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서브 브랜드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어느 나라에서나 동일한 컨셉트로 나아간다.
2000년 BMW는 브랜드 전략 중 일부를 수정했다. 대표 키워드는 ‘JOY(즐거움)’. 하위 아이덴티티는 ‘Dynamic, Challenging, Cultured(역동적, 모험적, 문화적인)’로 정했다. 과거 BMW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JOY-Dynamic, Luxury(즐거움-역동성, 고급스러움)’였다. 이중 Luxury라는 속성을 약화시키는 대신 Challenging과 Cultured라는 속성을 새롭게 부여한 것. 명품과 성공을 지향하는 고객 수는 줄어든 반면, 실용성을 추구하는 인구가 늘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 같은 능동적 변화를 통해 BMW는 글로벌 톱 브랜드의 자리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대당 매출액도 2000년 이후 연 평균 10% 이상 급신장하고 있다.
3월6일 기아차 로고를 달고 세계빙속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
해외근무자, 광고대행사 담당자 등 ‘신선한 피’로 구성된 전담팀은 18개월의 활동 끝에 ‘Bold & Thoughtful(대담하고 사려 깊은)’을 핵심 키워드로 하는 새 브랜드 전략을 개발했다. 닛산은 사장의 강력한 지원 아래 사내외 전문가 및 외부 자문 그룹의 지원을 받아 전사적으로 자사 브랜드에 대한 체계적이고 확고한 공감대를 구축했다. 닛산의 사례는 품질에 대한 자신감과 참신한 인재, 강력한 추진력만 있다면 곤두박질친 브랜드 가치를 재생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의 브랜드 신화라고 하면 역시 ‘렉서스’(도요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 ‘렉서스’ 브랜드를 처음 선보인 것은 89년이었다.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는 데는 도요타 브랜드로도 무리가 없었지만 고급 차 시장은 달랐던 것. 기존 브랜드 이미지에 한계를 느낀 도요타는 렉서스 브랜드를 런칭했다. ‘렉서스’ 광고 어디에서도 ‘도요타’라는 글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판매망도 새로 짰고 애프터서비스의 수준도 최고급으로 올렸다. 그 결과 렉서스는 2003년 미국에서만 25만9755대가 팔리는 등 대표적인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했다.
현대차는 축구, 기아차는 테니스 마케팅에 힘쏟아
요즘 미국 시장 공략에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현대차도 렉서스와 같은 제2의 브랜드를 계획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도요타가 렉서스를 런칭한 것은 성장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또한 ‘89년의 도요타’와 비교할 때 현대차는 품질에 대한 고객 신뢰도를 더 끌어올려야 하는 시점”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듯 쟁쟁한 경쟁자들에 맞서 ‘자동차 부문 5대 브랜드’ 진입을 계획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복안은 무엇일까.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차별화다. 신차 출시가 중첩되는 것은 물론 고객층도 공유해온 터라, 전체 파이를 키우는 데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 새롭게 정립된 두 회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확실히 다른 컨셉트를 갖고 있다.
2003년 11월 디트로이트 북미국제오토쇼에 선보인 닛산의 ‘맥시마’.
기아차의 주 이미지는 ‘즐겁고 활력을 주는(Exciting & Enabling)’이다. ‘The Power to surprise’라는 슬로건에는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과 역동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의 의지”를 담았다 한다. 기아차는 이러한 방향성 아래 ‘자신감 있고 모험적이며 마음이 젊은(Self-confident, Adventurous & Young at heart) 고객을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즐거움을 강조하는 BMW나 신기술에 방점을 찍는 아우디의 브랜딩 전략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브랜드 인지도 향상을 위한 스포츠 마케팅에도 큰 관심을 쏟고 있다. 2006년 FIFA(국제축구연맹) 독일월드컵 공식 후원사 지정에 이어, 2007~2014년 8년간 FIFA의 자동차 부문 공식 파트너로서 월드컵을 포함한 모든 대회에 공식 후원사로 참여키로 했다.
현대·기아차가 이번에 FIFA와 체결한 파트너십은 ‘최고등급’ 후원 계약으로 아디다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한편 현대차 측은 “컨셉트에 맞춰 현대차는 축구, 기아차는 테니스와 스케이팅을 통한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