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 두산의 2017 KBO 한국시리즈 1차전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채 열흘이 지나지 않은 10월 15일에는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을 깜짝 방문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이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힘껏 지원하되 운영은 영화인에게 맡기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싼 논란으로 부침을 겪은 부산국제영화제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영화인은 물론, 부산시민도 반색할 수밖에 없는 행보였다. 닷새 뒤인 20일에는 충북 충주에서 열린 제98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개회식에 참석했다. 전직 대통령들도 참석한 행사라 이례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 자리에서 전국체전 사상 처음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먼저 개최한 것을 언급하며 충북도민에게 각별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다시 닷새 뒤인 25일에는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KBO 한국시리즈 1차전에 앞서 시구를 했다.
그다음 날인 10월 26일에는 전남 여수 세계박람회장에서 개최된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연이틀 호남행이라는 점에서 특별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하겠다. 강력한 지방분권 공화국을 국정 목표로 삼고 흔들림 없이 추진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열린 제2회 시·도지사 간담회를 주재한 자리에서는 지방분권 개헌에 시·도지사들이 함께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지방의 숙원 사항이었기에 거부하기 힘든 카드를 던졌다.
대통령비서실의 임종석 실장, 조국 민정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박수현 대변인(왼쪽부터).[동아 DB, 뉴스1, 뉴시스]
이호철 전 민정수석비서관,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왼쪽부터).[동아 DB,뉴시스]
안동 →부산 →충주 →광주 →여수
문 대통령은 11월 1일 국회에서 열린 2018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지방분권 개헌을 또다시 언급했다. 그는 “변화한 시대에 맞게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해야 한다”며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개헌 희망 시점도 재차 확인했다.이런 행보를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정치적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개헌과 지방선거 승리를 동시에 잡는 두 마리 토끼 전략이다. 그 열쇠가 바로 지방분권 개헌이라고 보는 것 같다. 지방분권 개헌이 그토록 파괴력이 강할까. 그렇다. 지방분권 개헌에는 보수도, 진보도 찬성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거의 전부가 이념 성향이나 소속 정당을 불문하고 지방분권 개헌에 찬성한다. 지역주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타 경제와 안보 정책을 둘러싼 진영 간 갈등에도 이 문제만큼은 이견이 거의 없는 것이다.
지방분권 개헌은 그래서 다른 모든 이슈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 경제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소재인 반도체와 2차 전지 등에서 강세를 보이며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기조가 적어도 내년 하반기까지는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다. 더욱이 10월 31일 한국과 중국이 공동발표한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도 호재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촉발된 중국의 보복 조치가 종결될 조짐이다. 내년 지방선거 직전에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한다면 변수가 될 수 있지만, 최근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이후 1인 지배체제를 강화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대북제재 의지가 강력하다면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욱이 최근 북한과 미국이 비공식 접촉을 늘려가는 추세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설령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더라도 최근 선거에서처럼 ‘북풍(北風)’이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지방분권 개헌을 압도할 이슈가 없다면 문 대통령은 이미 고지를 선점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최근 “내년 지방선거 뒤로 개헌을 연기하자”고 한 데는 이런 상황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개헌 명목으로 지방분권을 앞세우지만, 문 대통령은 권력구조 개편도 내심 바랄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이 그것이다. 개헌이 되면 차기 대선은 2020년 총선 때 함께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문 대통령은 잔여 임기를 포기하는 대신 재선에 도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대선에서 또 승리하면 문 대통령은 7년 동안 집권이 가능해진다. 문 대통령이 개헌에 애착을 보이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청와대 핵심 참모진 차출론도 그 연장선에서 나오는 것 같다. 과거 정권에서처럼 이번에도 출마 희망 인사가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실 차출이라기보다 ‘자천(自薦)’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경우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을 반강제적으로라도 내보내야 한다.
청와대 참모 차출론이 제기된 이후 거론된 인물은 대통령비서실의 임종석 실장, 조국 민정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박수현 대변인 등이다. 이 가운데 임 실장은 국회의원 출신에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한 까닭에 오래전부터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았다. 임 실장은 문 대통령의 한국시리즈 시구와 여수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도 자리해 전남도지사 출마설이 돌기도 했다.
박 대변인도 오래전부터 충남도지사에 도전해온 터라 반강제 차출로 보기 애매하다. 윤 수석의 경우 이재명 성남시장이 경기도지사로 출마할 경우 성남시장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비슷한 맥락에서 문대림 대통령비서실 제도개선비서관도 제주도지사 출마설이 나온다. 이렇게 보면 조 민정수석의 부산시장 출마설 정도가 진정한 의미의 차출에 해당하지 않을까.
차출설이 기정사실처럼 떠돌자 임 실장과 조 민정수석은 최근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불출마 선언의 형식에서 약간 차이를 보였다. 조 민정수석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직접 ‘누차 의사와 능력이 없음을 밝혔는데도 근래 여러 언론에서 저를 부산시장 후보로 계속 거론하고 있습니다. 제 앞에는 문재인 정부 첫 민정수석으로 완수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저는 향후 오로지 대통령님을 보좌하는 데 전념하고자 함을 재차 밝힙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반면 임 실장은 청와대 관계자가 대신 뜻을 전달했다.
“세간에서 임 실장의 전남도지사 출마를 유력하게 보고 있는데, 본인이 직접 부인했다. 지금 출마하기가 쉽겠느냐.”
그런데 명확하게 부인한 것은 전남도지사 출마설뿐이다.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지 않았다. 그날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말도 남겼다.
“현재까지 임 실장은 지방선거 출마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현재는 99% 불출마지만 나머지 1%는 정치 상황에 따라 단정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
문 대통령이 강권하거나 정치적 여건이 조성된다면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조 민정수석도 직접 부인하긴 했지만, 이 또한 알 수 없다. 조 민정수석은 인사 검증 논란으로 이미 야권의 집중포화를 맞은 상태다. 자유한국당은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법무부가 10월 15일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마련한 권고안에 비해 현저히 후퇴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안을 내놓은 뒤 진보 진영에서도 회의론이 일고 있다.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 때문에 청와대는 내년 봄 인적 개편을 해야 한다. 이때 조 민정수석을 차출해 출마하게 하는 쪽으로 선택이 이뤄질지도 모른다.
대규모 징병, 文 결심에 달려
차출은 본인 의지와 무관한 것이다.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또 지지세력의 간절한 바람에 따라 반강제, 거의 타의로 나서야 비로소 차출이라 할 수 있다. 그 여지는 열려 있다고 봐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까지 8개월이나 남았다.청와대 참모는 아니지만, 문 대통령 최측근의 지방선거 출마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미 ‘3철 재등판설’이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경기도지사 도전 의사를 사실상 피력한 상태다. 10월 11일 한 방송에 출연해 “아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시장과 양강구도를 형성할 것이란 관측이 나돌기도 한다.
이호철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의 부산시장 출마도 가시권에 들어섰다는 관측이다. 오래전부터 지지세력 사이에서는 ‘이호철 등판론’이 돌았다. 문 대통령 최측근 중에도 으뜸인 양정철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의 경우 아직 거론되는 지역이 없다. 당분간 일본에서 집필에 전념할 예정이라고 전해질 뿐이다. 양 전 비서관은 2012년 총선 당시 서울 중랑을 지역에 도전했지만 경선에서 패해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2020년 총선에 재도전할 것으로 보이긴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 대통령의 결심이다. 지방분권 개헌을 화두로 내년 지방선거 승리와 7년 집권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이들은 기꺼이 차출에 응할 것이다. 이제까지 차출 대상으로 거론된 청와대 참모진 외에도 출마 대기자는 꽤 많다. 문 대통령의 초기 대선캠프 구성원으로서 청와대 참모진으로 입성한 이른바 ‘광흥창팀’ 구성원 10여 명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좌장격이던 대통령비서실의 임종석 실장, 조한기 의전비서관,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한병도 정무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김종천 비서실장실 선임행정관,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과거 출마 경력이 있다. 이들 모두가 실은 차출 대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