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콘텐츠진흥원과 SM이 주최한 ‘음악, 인공지능을 켜다’ 쇼케이스 현장.[뉴시스]
장면 둘. 무대에 설치된 커다란 반투명 천막. 그 안에는 책상, 컴퓨터 등 생활공간을 재현한 세트가 설치돼 있다. 세트 가운데엔 마이크가 있다. 그 옆에서 잠들어 있던 여성이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트레칭을 하고, 책장을 넘기고, 노트북컴퓨터를 두들기고…. 그러자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인공지능이 생활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소음을 포착해 그에 맞는 음악을 생성, 재생한 것이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꺾은 후 인공지능은 ‘미래’ 자체를 상징하는 단어이자 화두가 됐다.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가 몰렸고 관련 전문가들의 언론 노출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 ‘향후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군’ 같은 기사가 속속 쏟아지면서 우리에게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줬다.
다행히 예술은 대체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축에 속했다. 애초에, 그리고 최후에 무엇을 어떻게 창작할지 결정하는 건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예술과 인공지능이 어떻게 만나게 될지 궁금했다. 어쩌면 예술의 역사야말로 ‘반상의 수’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상상력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11월 1일 오전 11시 1분 서울 홍릉 콘텐츠시연장에서 열린 ‘음악, 인공지능을 켜다’ 최종 쇼케이스는 이 같은 상상을 채워주는 행사였다. 8월부터 10주간 한국콘텐츠진흥원과 SM엔터테인먼트가 진행해온 융합형 콘텐츠 협업 프로젝트의 마지막 장이었다. 퓨처플레이, 구글캠퍼스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 등에 속한 전문가들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했고, 최종적으로 여섯 팀이 쇼케이스 무대에 섰다.
비보잉 동작을 빅데이터화해 인공지능이 새로운 동작을 시연해 보인 팀, 스타의 언어 습관 등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대화에 적용한 ‘셀렙봇’을 통해 ‘소녀시대 써니봇’과 실시간 채팅을 한 팀, 앞서 말한 생활소음을 분석해 배경음악을 생성한 팀 등이 있었다. 이들의 콘셉트를 잘 발전시킨다면 인간과 인간지능이 함께 음악 및 관련 콘텐츠를 창작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 행사의 심사위원이었다. 쇼케이스가 끝난 후 다른 심사위원들과 어느 팀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대화를 나눴다. 마지막 팀을 꼽은 이가 제법 있었다. 인공지능이 제시한 멜로디를 바탕으로 음악가가 음악을 완성하고, 인간이 제시한 단어들로 인공지능이 가사를 만든 ‘몽상지능’팀이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동등한 협업을 보여준 게 특징적이었다. 저작권 및 예술가 존중 등 앞으로 풀어야 할 여러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현실에서 가장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인공지능의 음악 창작은 인간을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알파고가 그랬듯 더 많은 데이터가 쌓이고 기술이 발달하면 우리가 기존 음악을 통해 만났던 세계 그 이상의 것을 인공지능이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역대 인기곡을 송두리째 학습한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이 음원차트를 1년 내내 도배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만약 그 시대가 온다면 인류에게 음악이란, 음악가란 어떤 존재로 남을까. 기술의 현재가 던진 작은 철학적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