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보이 인 뉴욕’은 감독 이름이 눈에 띄는 로맨스 영화다. 마크 웨브 감독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 2’를 성공시킨 1974년생 감독. 그 전에 ‘500일의 썸머’라는 로맨스 영화로 데뷔해 주목받았다.
‘500일의 썸머’는 청년 톰이 ‘썸머’라는 여성을 만나고 헤어지며 새로운 사랑(‘오텀’)을 만나기까지 500일간 사랑 이야기를 재치 있고 공감이 가게 그렸다. 국내 로맨스 영화 팬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지난해 재개봉했고, 개봉 당시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았다.
‘리빙보이 인 뉴욕’은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보면 데뷔작 ‘500일의 썸머’를 떠오르게 한다. 주인공 이름은 토머스 웨브. 이름부터가 ‘500일의 썸머’ 주인공의 이름과 감독의 성을 합쳐놓은 듯하다. 두 작품의 주인공이 ‘지질한데 왠지 섹시한’ 이른바 너드(nerd)형 미남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500일의 썸머’가 젊은이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면, 신작 ‘리빙보이 인 뉴욕’은 더는 젊지 않은(?) 이들의 사랑 비중이 더 크다.
뉴욕에 사는 토머스(칼럼 터너 분)는 작가를 꿈꾸는 청년. 그의 부모는 겉보기에 우아한 뉴요커다. 한때 문학도였던 아버지(피어스 브로스넌 분)는 뉴욕에서 성공한 출판인이고 어머니(신시아 닉슨 분) 역시 문화 ·예술인과 교류를 즐긴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속물이며, 어머니는 조울증을 앓고 있다. ‘여사친’ 미미(키어시 클레먼스 분)를 짝사랑하는 평범한 청년 토머스는 우연히 아버지가 애인(케이트 베킨세일 분)과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그 여성을 미행하다 사랑에 빠지고 만다.
줄거리만 봐서는 한국의 여느 막장드라마 못지않다. 주로 토머스의 성장담을 다루지만, 그와 주변인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다 종국엔 주인공의 출생 비밀까지 나온다. 그래서 ‘500일의 썸머’ 같은 로맨스 영화를 기대하고 ‘리빙보이 인 뉴욕’을 본다면 실망할 공산이 크다. ‘500일의 썸머’가 보여줬던 사랑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여름(썸머)이 가고 가을(오텀)이 오듯 사랑도 그러할 것-가 없다. 토머스의 엄마는 아들에게 “인생은 기대와 실망의 영원한 반복”이라 말하고, 토머스 친구 결혼식에서 술 취한 하객은 결혼에 대해 “우리가 밟아 깨뜨린 연약한 유리 조각을 인내심을 갖고 조각조각 맞춰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미국 등에서 먼저 개봉한 이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미국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는 중구난방 스토리라는 비판이 많았다. 아마도 주인공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사람의 사정을 들려준 게 한 이유였으리라 본다.
다만 풋풋한 로맨스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재미있는 구석이 적잖다. 영화와 어우러진 음악이 주옥같다. 영화 원제가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이기도 하다. ‘제임스 본드’ 출신인 브로스넌과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미란다로 익숙한 닉슨이 늙어버린 뉴요커로 등장하는 것이나, 아버지와 불화하던 토머스가 나중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설정 등을 보면서 소소한 공감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영화가 끝날 쯤엔 감독의 나이 들어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500일의 썸머’를 만들 당시 웨브 감독은 30대 중반이었고, 이제는 40대 중반이 됐다. 사랑에 빠진 청년에게만 감정이입하기엔 너무 늙어버렸지만 어린 시절 속물이라고 매도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기엔 적당한 나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