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자동차 기업 사브(SAAB)의 음주운전 예방 캠페인 광고. 음주운전을 하면 사물이 원래 위치보다 훨씬 더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SAAB]
경계선을 흐리게 그리는 스푸마토(sfu mato) 기법을 적용한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를 개인적으로 꼭 한 번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드디어 루브르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왔지만 기대는 단숨에 깨졌다. 그림이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서서 보니 저 멀리 방탄유리 속에 자리 잡은 작은 그림이 있었다. 스탠딩 콘서트장처럼 몰려든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공평한 관심 배분 ‘책가도 6폭 병풍’
이형록의 ‘책가도 6폭 병풍(冊架圖六幅屛風)’. 물건들이 모두 같은 크기로 그려져 물리적 거리에 차이가 없다.[사진 제공·국립민속박물관]
우리는 보통 원하는 대상에 가까이 가고 싶어 한다. 친근한 관계를 ‘가깝다’, 어색한 관계를 ‘멀다’라고 표현하듯 관심 정도를 거리감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인간관계를 거리 개념으로 연구한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이를 4단계로 구분했다. 냄새, 소리, 숨결 등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친밀한 거리’에서부터 팔을 뻗으면 닿는 ‘개인적 거리’,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상대와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없는 ‘사회적 거리’, 그리고 7m 이상 먼 ‘공공의 거리’까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물리적으로 관측한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떤 느낌을 갖게 되면 그 마음의 거리는 서서히 물리적 거리로 드러난다. 사랑을 느끼거나 싸우려는 사람은 가까운 거리가 되도록 다가올 테고, 상대방과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뒤로 물러서 거리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여러 대상에게 가지는 관심의 정도가 비슷하다면 거리감도 비슷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한 공간에 놓인 물체들을 비슷한 거리감으로 그린 그림을 보자. 조선 후기에 유행한 민화 가운데 ‘책가도 6폭 병풍(冊架圖六幅屛風)’(책가도)은 서책과 문방구, 두루마리, 도자기, 화병의 꽃 등 선비의 공부방에 있는 사물들을 그렸다. 사물들이 앞뒤로 겹치는 중첩으로 깊이는 표현돼 있지만 뚜렷한 거리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눈은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본다. 다양한 거리에 있는 물체는 안구 수정체에서 굴절돼 망막에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상이 맺힌다.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 그림으로 재현할 때 이러한 시각 원리를 이용해 거리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다. 관람객 시선에서 봤을 때 책가도의 물체들은 공평하다. 어느 것 하나 눈에 띄도록 강조된 부분이 없어 마음에 더 다가오고 물러나는 대상도 없다. 물리적 거리에 차이가 없는 사물들에 대한 관심의 정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람객의 관심을 평등하게 나눠 가진다.
주의력 사라지면 멀리, 작게 보여
이미지에서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려 할 때는 대상의 거리감을 조절하는 방법을 쓴다. 스웨덴 자동차 기업 사브(SAAB)의 음주운전 예방 캠페인 광고는 운전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한 장면을 보여준다. 광고에서 작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이다. 운전자 바로 앞에서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지만 실제보다 매우 작게 표현돼 있다. 보행자들은 현 위치보다 훨씬 더 먼 곳에 있을 법한 크기로 표현돼 있다.광고 아래에는 ‘운전자가 술을 마시고 운전할 경우 주의력이 76%나 감소해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After two drinks, your attention while driving will diminish by up to 76%)’는 문구가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이들을 보지 못해 사고가 일어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운전자와 보행자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데 음주운전을 하면 마치 먼 곳에 있는 것처럼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마음에서 멀어지면 눈에서도 멀어진다’라는 뜻과 마찬가지다.
눈에서 멀어져도 마음에서는 가까울 수 있다. 루브르박물관에 함께 갔던 일행들은 가끔 그때 일을 웃으며 이야기한다. ‘여행을 할수록 목적지가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카를프리트 그라프 뒤르크하임)라는 말처럼 비록 기대했던 모나리자를 가까이서 보지는 못했지만 여행의 추억이 ‘친밀한 거리’가 돼 마음 안에 들어와 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