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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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영구주둔지 설치한 폴란드, ‘나토 창(槍)’으로 러시아 겨눈다

러시아 위협에 정면 대응… 푸틴,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로 맞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04-0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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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이 폴란드 포즈난에서 ‘캠프 코시치우슈코’ 개소식을 하고 있다. [Stars & stripies]

    미군이 폴란드 포즈난에서 ‘캠프 코시치우슈코’ 개소식을 하고 있다. [Stars & stripies]

    미국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공원에는 폴란드 출신인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1746~1817) 장군의 동상이 있다. 코시치우슈코 장군은 미국 독립전쟁에 자원 참전해 1776년부터 1783년까지 공병대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뉴욕에 위치한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를 비롯해 많은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당시 대륙군 총사령관이던 조지 워싱턴 장군은 그의 업적을 기려 준장으로 진급시켰다.

    폴란드로 귀국한 후에는 조국 독립을 위해 싸웠다. 육군 중장에 임명된 그는 1794년 최고사령관으로 제정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무기조차 없던 농민들을 이끌고 라츠와비체 전투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결국 전쟁에 패배한 그는 러시아군에 의해 1796년까지 시베리아에 유배됐고, 석방된 후 미국을 거쳐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폴란드 독립을 위해 노력하다 말년에 스위스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숨졌다. 그는 친구이자 미국 독립의 아버지이기도 한 토머스 제퍼슨에게 자신이 미국으로부터 받은 모든 연금 및 재산을 노예 해방과 흑인을 위한 학교 설립에 써달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중·동유럽 첫 미군 영구주둔기지

    미군 공수부대와 폴란드 기갑부대가 연합 군사훈련을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미군 공수부대와 폴란드 기갑부대가 연합 군사훈련을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미국 정부가 3월 21일(현지 시간) 폴란드 서부 포즈난에 그의 이름을 따 ‘캠프 코시치우슈코(Camp Kos′ciuszko)’라고 이름 붙인 미군 영구주둔기지를 설치했다. 미국이 중·동유럽 지역에 영구주둔기지를 설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로운 기지는 유럽 전체를 관할하는 미 육군 제5군단의 전방 사령부 폴란드 본부가 된다. 폴란드 정부는 그동안 미국 정부 측에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일시 순환 배치 대신 자국 내 미군 영구주둔을 요청해왔다.

    미 육군 제5군단장인 존 콜라셰스키 중장은 “폴란드 내 미군 영구주둔기지 설치는 중·동유럽에서 미국의 역할이 새롭게 시작됨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콜라셰스키 중장은 “미군의 폴란드 주둔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의 유럽 활동 역사에서 획기적인 일로 평가할 만하다”면서 “상징적 주둔이 아닌, 실제적인 억지력으로 활동할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 브레진스키 주폴란드 미국대사는 “이번 영구주둔기지 신설은 폴란드와 나토에 대한 미국의 헌신과 러시아 침공에 맞선 우리의 단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지는 폴란드에 순환 배치된 미군 병력 1만여 명을 관할하고 지원한다. 폴란드에는 포즈난을 비롯해 자간 등에 미군 병력이 순환 배치돼 있다. 특히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폴란드에 병력과 최신예 탱크인 M1A2 SEPv3, PAC-3 MSE 2개 포대 등 각종 무기를 증강 배치해왔다. 또한 폴란드 북부 레드지코보에 건설 중인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 미사일 기지를 올해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미국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세계 최강 전투기 F-22 6대를 폴란드에 배치하기도 했다.



    미국이 이처럼 폴란드를 군사적으로 중시하는 이유는 폴란드가 유럽 남서부와 북동부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옛 소련이 폴란드를 차지하려고 각축전을 벌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폴란드는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유럽 국가들을 공산화하면서 나토에 대항하기 위해 1955년 창설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핵심 국가였다. 당시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은 소련을 비롯해 폴란드, 동독,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8개국이었다.

    현재 유럽의 안보 구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놓고 충돌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폴란드는 나토 등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폴란드는 과거 소련 위성국으로 불리던 중·동유럽 9개국 모임인 ‘부쿠레슈티 나인(B9)’의 수장도 맡고 있다. B9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을 계기로 2015년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결성된 중·동유럽 국가의 안보 협의체다. 폴란드·불가리아·체코·헝가리·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가 회원국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미국은 앞으로도 폴란드가 러시아를 겨냥한 나토의 날카로운 ‘창(槍)’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제정러시아와 소련에 잇달아 짓밟힌 폴란드

    폴란드는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친미·친서방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 불행한 역사와 관련이 깊다. 폴란드는 1918년 11월 11일 독립할 때까지 제정러시아 등 유럽 강대국의 침략과 분할 점령으로 123년간 고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소련과는 이후에도 악연을 이어왔다.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또다시 소련과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분할됐다. 소련과 나치 독일은 1939년 6월 폴란드와 발트3국 등을 각각 분할 통치한다는 비밀의정서(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를 맺었다. 이에 따라 나치 독일은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서부 지역을, 소련은 폴란드 동부 지역을 각각 침공했다. 소련은 점령 직후 폴란드군 장교와 경찰 간부, 대학교수, 성직자, 의사 등 2만2000여 명을 처형한 이른바 ‘카틴숲 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8월 폴란드 저항세력은 수도 바르샤바에서 나치 독일 점령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지만 소련군은 이를 지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치 독일로부터 무자비한 보복을 당하면서 폴란드인 20만 명이 학살당하고 바르샤바는 잿더미가 됐다. 폴란드에 공산정부를 세우기 위해 사태를 수수방관하던 소련군은 1945년 1월에야 바르샤바에 입성했다. 이후 소련은 1947년 폴란드에 공산정권을 세우고 사실상 간접적으로 통치했다. 폴란드에서 냉전 시절 반소(反蘇) 운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와 언어, 혈통이 같은 슬라브 계통이지만 사회·문화적 정체성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폴란드 국교는 여느 슬라브 국가들과 달리 가톨릭이고 문자도 라틴 알파벳(로마자)을 사용한다.

    폴란드는 무엇보다 군사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9년 중·동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나토에 가입한 폴란드는 미국과의 군사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2019년 중·동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F-35A 스텔스 전투기 32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또 PAC-3 MSE 요격미사일 208기를 도입해 2025년까지 8개 포대를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미국과 최신예 탱크 M1A2 SEPv3 250대, M1A1 116대를 각각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으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18문 등 100억 달러(약 13조 원) 규모의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구매할 예정이다.

    폴란드는 올해 국방예산을 나토 회원국 중 최대치인 국내총생산(GDP)의 4%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폴란드의 국방력 강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매가 됐다. 폴란드는 남동쪽으로 우크라이나와 500㎞, 북쪽으로는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위치한 러시아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와 230㎞에 이르는 국경을 접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군사동맹국인 벨라루스와는 416㎞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발 벗고 나섰다. 소련제 미그(MiG)-29 전투기 12대와 독일제 레오파르트-2 탱크 14대 등 각종 무기를 나토 회원국 가운데 미국, 영국에 이어 가장 많이 지원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자국 항구에 도착한 한국산 K9 자주포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폴란드 대통령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자국 항구에 도착한 한국산 K9 자주포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폴란드 대통령실]

    군 병력 5년 내 30만 명으로 확대

    폴란드는 앞으로 나토의 유럽 회원국 중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해 러시아 견제에 앞장서겠다는 의도까지 보이고 있다. 폴란드가 지난해 한국과 K2 전차 980대, K9 자주포 648문, FA50 경공격기 48기, K239 천무 다연장로켓 288문 등 초대형 계약을 체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폴란드는 또 한국산 차세대 전투장갑차 레드백 구매를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에 K9 포탄과 K2 전차탄을 연간 10만 발씩 생산할 수 있는 현지 공장 건설을 요청했다.

    폴란드는 군 병력도 현재 14만3500명에서 5년 내 30만 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징병제에 대한 국민 여론도 크게 변하고 있다. 폴란드는 2009년 소련 시절 잔재라는 이유로 징병제를 폐지했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 징병제 부활에 찬성하는 의견이 54%에 달했다. 특히 폴란드는 미국에 독일·벨기에·네덜란드·이탈리아·튀르키예 등 나토 5개 회원국처럼 자국 전술핵 배치를 제의했다. 독일 등 나토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의 위협에 정면 대응할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가 향후 중·동유럽 국가는 물론, 서유럽 국가들을 이끌어갈 군사 분야의 ‘새로운 맹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25일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겠다고 밝힌 것도 폴란드의 이런 군사력 강화 행보를 견제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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