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가 3월 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실 이 내정자 지명은 시장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계속 하마평에는 올랐지만 그때마다 ‘만에 하나 내부 출신이 된다면’이라는 전제가 따라다녔다. 원래 청와대는 다재다능하고 국제 경험도 풍부한 저명한 민간 경제학자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기부양 및 일자리 증가를 원하는 정부와 ‘코드’가 일치하는 것도 차기 총재의 필요조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결과는 다소 뜻밖이었다. 이 내정자는 1977년 이후 35년간 한은에서만 근무했다. 유연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는 있었지만 전형적인 ‘한은맨’답게 물가안정을 중시하리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가 지명된 직후 이틀간 금융시장에서는 국고채 금리가 0.06~0.08%p 급등했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며 시장에서 채권 투매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내정자의 성향을 두고 금융계에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그중 대세를 이루는 여론은 그를 딱히 ‘매파’(통화긴축론자)나 ‘비둘기파’(통화완화론자)로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이 내정자는 당연직 금융통화위원이던 한은 부총재 시절 어느 한쪽에도 경도되지 않고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한은에서 오래 근무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매파’가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더 많을 뿐이다.
그는 또 같은 내부 출신 총재였던 이성태 전 총재와도 종종 비교된다. 주로 “상대적으로 고집이 셌던 이 전 총재보다 좀 더 부드러운 스타일이 아니겠느냐”는 기대가 많다. 이 내정자는 3월 3일 기자간담회에서 자기 성향을 평가해달라는 언론의 질문 공세에 “한번 보시죠”라며 짙은 여운을 남겼다.
통화긴축론자 평가도 나와
원주 대성고,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 이 내정자는 경력 대부분을 한은에서만 채우다 보니 이렇다 할 적(敵)이 없는 편이다. 재산은 14억 원 남짓하고, 선거판에 뛰어들거나 정치적 논란을 일으킨 적도 없다. 3월 19일로 예정된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수월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물론 부총재 시절 금융위기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발언했는지에 따라 과거 정책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여지는 있다.
이 내정자는 김중수 총재와는 불편한 관계다. 그는 2012년 부총재직을 퇴임하는 자리에서 김 총재를 두고 “많은 직원에게 상처를 줬다”며 정면으로 비판한 바 있다. 김 총재는 각종 인사 및 조직 개혁을 통해 보수적인 한은에 역동성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통화정책의 독립성 논란을 일으키며 중앙은행 위상을 떨어뜨리고 직원들 사기를 저하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김 총재가 임기 내내 주도했던 개혁 가운데 긍정적인 부분은 이 내정자가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경제 부처의 한 전직 장관급 인사는 “김 총재가 연공서열을 깨고 역량에 따라 인사를 단행한 점이나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 환경에 맞춰 한은의 국제화를 이끈 점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