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건물.
이런 전망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최 회장이 △선물옵션 투자 등으로 각 금융권에서 빌린 총 1조 원(추정치)의 담보로 SK그룹 소유·지배구조의 연결고리인 SK C&C 주식 대부분을 제공했고 △그룹사의 대표이사, 회장 등 모든 임원직에서 물러남으로써 최악의 경우 한 해 400억 원이 넘는 대출금에 대한 이자도 지급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자 연체 땐 주식 넘어갈 개연성
최 회장 형제의 대법원 확정 판결 후 재계의 최대 관심사는 이들의 SK그룹 내 등기·비등기 이사직 사퇴 여부였다. 이번 판결이 있기 전까지 최 회장은 SK그룹 지주회사격인 SK C&C와 SK㈜, SK 이노베이션, SK 하이닉스의 상법상 등기이사(대표이사)를, 최 부회장은 SK 네트웍스와 SK E&S의 등기이사를 맡고 있었다. 최 회장은 지난해 구속된 상태에서도 4개 회사의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등기임원 보수로 115억 원 이상을 챙겼고, 배당금으로 286억 원을 받았다.
최 회장 형제의 임원직 사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검찰의 대법원 재상고 포기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실형(횡령 및 배임)이 확정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형 확정 직후인 2월 18일 지주사인 ㈜한화를 포함한 7개 계열사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사퇴 압력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경우,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상 해당 법령을 위반해 집행유예 이상의 실형이 확정된 사람이 임원으로 있으면 해당 기업의 화약류 제조업 허가를 취소하도록 한 법 조항(㈜한화 임원 사퇴 이유)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가 관련 회사에 취업할 경우 해당 회사 업무를 제한하고 취업자도 처벌토록 한 조항(6개 계열사 임원 사퇴 이유)이 걸림돌이 됐다. 이 중 횡령 혐의 조항은 최 회장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항목으로 그의 임원직 사퇴를 점치는 이유가 됐다.
이 때문일까. 2월 27일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3월 3일까지 “최 회장 형제는 한화 김승연 회장과 경우가 다르다”며 방어적 자세를 취했던 SK그룹 측은 3월 4일 최 회장 형제의 등기·비등기 임원직 사퇴 사실을 전격 발표했다. 최 회장은 3월 4일 열린 SK 이노베이션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의장직과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
문제는 최 회장 형제가 경영진에서 물러남으로써 SK C&C 주식을 담보로 진 개인 빚에 대한 이자도 내기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만약 최 회장이 이 빚에 대한 이자를 내지 못하고 계속 연체할 경우 그가 담보로 맡긴 SK C&C 주식이 금융권으로 몰수되거나 공개 매각을 통해 다른 이의 수중으로 넘어갈 개연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SK C&C를 정점으로 한 SK그룹의 지배구조상 최 회장의 실각을 의미한다. 즉, 최악의 경우 그룹 오너가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또한 지난해 7월 최 회장이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사기 혐의로 고소할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낸 고소장에 따르면 2008년 6월부터 2010년까지 최 회장은 최 부회장과 그 지인들 명의로 저축은행에서 3755억 원을 빌리면서 SK C&C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명의는 빌렸지만 결국 최 회장이 갚아야 할 빚인 셈이다.
저축은행 주식담보 대출의 경우 담보가치가 시가의 절반도 안 되는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이 동생 명의로 3755억 원을 대출하며 맡긴 SK C&C 주식 담보의 당시 총시가는 빌린 돈의 2배인 7000억 원이 넘을 가능성도 있다. 2008년 6월부터 2010년까지 SK C&C 주식의 평균가격을 7만 원 선으로 잡으면 최 회장이 저축은행에 담보로 맡긴 주식은 약 1000만 주에 이르며 이는 최 회장 보유 주식의 52.6%다.
주식 처분 땐 지배권 상실 딜레마
최태원 SK그룹 회장 횡령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
이는 총대출금을 1조 원으로 보고, 이자율을 4% 선으로 잡았을 때 최 회장이 한 해 400억 원 이상의 이자를 금융권에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 회장은 지난해 구속 수감된 상태에서도 배당금 286억 원과 등기임원 보수 115억 원 등 401억 원으로 이자를 갚아나간 것으로 보이지만 올해 등기임원을 사퇴하면서 이자조차 갚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 총대출금을 보수적으로 잡아 7500억 원 수준이라 해도 배당금만으로는 이자를 낼 수 없는 상황.
만약 밀린 이자와 원금을 갚으려고 최 회장이 스스로 SK C&C 주식을 처분하거나 대출 원리금과 상계하는 조건으로 금융권에 주식 지분을 매도한다면 자칫 SK그룹 전체에 대한 경영권과 소유 지배권 상실이 현실화할 공산도 크다. 실제 최 회장이 38%의 지분을 보유한 SK C&C는 SK㈜ 주식 지분의 31.8%를 가지고 그룹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SK C&C-SK㈜-각 계열사’로 이어지는 순환 지배구조인 셈. 그런데 최 회장의 이자 연체로 SK C&C 주식이 금융권에 몰수되거나 스스로 주식 매각에 나설 경우 최 회장 중심의 순환 지배구조는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SK C&C와 함께 SK그룹의 지주사 기능을 하는 SK㈜는 최 회장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기 전날인 2월 27일 “앞으로 석 달에 걸쳐 자사주 235만 주를 4195억 원에 장내 매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증권가에선 이를 “SK C&C와 SK㈜의 합병을 통해 각 사가 소유한 자사주를 소각함으로써 최 회장의 SK C&C 주식 소유 지분율을 현재 38%에서 41%로 올려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 개인적으로 진 빚에 대해선 그룹 차원에서 알지도 못하고 관여할 수도 없다. SK㈜가 자사주를 매입키로 한 것은 주가 안정 차원이지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 차원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