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 바른 토스트는 현대인이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기에 좋은 메뉴다.
바쁜 현대인은 아침밥을 거르기 일쑤고, 시리얼과 우유 혹은 토스트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도 종종 있다. 마음은 수라상을 받고 싶지만, 현실은 빵 한 조각이라도 감사하게 된다. 물론 여전히 된장찌개에 온갖 반찬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먹어야 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건 진짜 사치다. 작은 사치가 아닌 큰 사치다. 마냥 부럽기만 하다.
지금은 갓 지은 따끈한 밥이 놓인 아침식탁이 사치가 된 시대다. 그렇다고 굶을 이유는 없다. 어느 집에나 냉장고에 한 개씩은 들어 있을 법한 게 바로 잼이다. 비상식량 같기도 하고, 급하고 아쉬울 때 만능 도구가 되기도 한다.
바쁜 아침 식탁 만능 해결사
잼과 관련한 내 기억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적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사과잼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장기 보관용이 아니라서 설탕을 아주 조금만 넣고 과일 자체 질감을 살렸는데, 일주일 정도밖에 보관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레시피를 익혀 몇 번 해봤지만 어머니 손맛엔 못 미친다.
‘파머스 파티’라는 세련되고 멋진 사과농장에서 만든, 적당히 고급스럽게 생긴 사과잼도 먹어봤는데 어머니 손맛에는 상대가 안 됐다. 내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잼은 오뚜기 딸기잼이다. 패스트푸드 외식업체 ‘파파이스’에서 스콘을 사면 딸기잼이 든 조그만 플라스틱통을 준다. 반으로 딸깍 소리 나게 꺾어 짜먹는 거다. 요즘엔 포장형태가 좀 심심하게 바뀌었는데 청각과 촉각, 미각을 동시에 자극하던 예전 제품이 훨씬 좋다. 이렇게 장황하게 시작한 오늘 주인공, 바로 잼이다.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잼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잼 좀 먹어봤다는 분들, 과연 잼 어디까지 먹어봤나. 오늘 탐닉해볼 잼은 이름도 거창한 슈퍼잼(Super Jam)이다. 슈퍼마켓에서 팔아 슈퍼잼이 아니라, 슈퍼맨에서 이름을 따온 잼이다. 뭐 얼마나 대단한 잼인가 싶으면서도, 유치한 ‘작명 센스’로 보건데 어른이 만든 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거다.
슈퍼잼은 14세짜리 소년이 만든 잼이다. 그래서 초기엔 슈퍼맨 그림이 병에 붙어 있었다는데, 이후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지금 같은 심플한 과일 이미지로 바뀌었다. 참고로 이 잼은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보통 잼이 아닌 거다. 설탕 없이 만들었다는 게 포인트다.
우리가 먹는 일반 잼은 설탕범벅이다. 요즘처럼 건강에 민감한 시기, 설탕을 안 넣은 잼이라 하니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중학생쯤 되는 소년이 뭘 알고 만들었을까 의심이 생길 만도 한데, 사실 이 잼은 그의 할머니로부터 배운 거라고 한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지방 방식으로 과일과 과즙만 이용해 잼을 만든다는데, 먹어보면 꽤 달달하고 맛있다. 정말 설탕을 넣지 않은 거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먹어온 수많은 잼에 옅은 배신감을 느낀다. 설탕 없이도 충분히 달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싶기도 하다.
이 놀라운 레시피는 소년의 할머니도 윗대로부터 배운, 그 동네에선 꽤 많은 이가 아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년은 할머니의 레시피라는 사실을 잼 병에 아주 잘 보이게 써놓았다. 또 1년에 100번 이상씩 노인 500명 이상을 초대하는 슈퍼잼 티파티도 연다고 한다. 우리가 강조하는 노인 공경을 제대로 하는 셈이다. 어린 창업자의 마인드는 아주 노련하고 어른스럽다. 이 기특한 청년 덕분에 슈퍼잼은 더 기분 좋게 달달하다.
할머니로부터 배운 레시피로 잼 사업을 벌인 소년 프레이저 도허티(Fraser Doherty)의 슈퍼잼은 현재 세계 2000개 매장에서 팔린다. 우리나라에도 매장이 있는데, 212g짜리 한 병 가격이 1만 원 정도다. 비슷한 사이즈의 여느 잼에 비해 2~3배가량 비싼 편이지만 한 번은 먹어볼 가치가 있다.
먹는 동안 잼맛만 느낄 게 아니다. 만약 우리 아이가 할머니의 비법으로 창업한다고 하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생각해보자. 아마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학원 가서 열심히 공부나 해’라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졸업 후 취업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CJ그룹 같은 식품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하면 얼마나 기뻐할까.
감동 이야기 달달한 행복
그런데 만약 우리 아이가 프레이저 도허티라면 어떨까. 그는 말 그대로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간 소위 ‘엄친아’를 압도하는 슈퍼 엄친아가 아닌가. 이 소년은 자기가 직접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경영자가 됐다. 14세에 사업을 시작해 17세에 슈퍼잼이란 회사를 차렸고, 18세에는 영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 웨이트로즈에 최연소로 물건을 납품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테스코와 월마트에도 납품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잼 회사 사장이 됐다. 2012년 연매출이 800만 파운드였으니 우리 돈으로 143억 원 정도다.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니 지금은 어림잡아도 1000만 파운드는 족히 될 듯하다.
그 소년은 올해 25세가 됐다. 나는 슈퍼잼을 먹을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한다. 1만 원의 행복은 입만 달달하게 하는 게 아니라 생각 깊숙한 곳까지 흐뭇하게 만든다. 지금 특정 브랜드 잼을 홍보하려는 게 아니다. 누구나 다 먹어봤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그 흔한 잼 속에서 누군가는 세상에 없던 아주 특별한 것을 상품화했고,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 우리를 유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는 거다.
슈퍼잼이 비싸서 ‘작은 사치’인 게 아니라, 잼 속에 우리를 자극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사치스럽다. 새로운 생각을 샘솟게 할 흥미로운 잼. 1만 원으로 얻는 행복을 느끼면서, 혹여 우리 집에는 어떤 매력적인 레시피나 대대로 전해지는 비법이 없을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이야기해보면 좋을 듯하다.
끝으로, 나도 영국산 슈퍼잼을 자주 사 먹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복음자리’라는 국산 브랜드, 수녀원에서 만들었다는 우리나라 과일로 만든 잼을 아낀다. 하지만 가끔은 특별한 잼을 한 번 먹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