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걷다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경우가 있다. 가끔은 나와 함께 걷던 친구도 내가 마주친 그 사람을 알고 있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내가 마주친 직장 동료가 함께 걷던 친구의 여동생의 초교 동창생인 식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세상 참 좁다. 그치?”라며 감탄하곤 한다. 필자 옆 연구실을 쓰는 동료 교수는 필자의 고교 동창과 같은 교회에 다니고, 필자와 물리학과에서 함께 공부했던(사실 함께 당구를 친 기억이 더 많은) 한 교수는 필자 동생의 남편의 가까운 친척이다. 이런 예는 이 글을 읽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놀라운 일이라도 자주 생긴다면 그건 이유가 있다. 과학적인, 따라서 이해할 수 있는.
자,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부에서 최근 몇 년간 한 번이라도 통화한 지인이 얼마나 있는지 한 번 세어보라. 마당발 정치인이 아니라면 아무리 많아도 몇백 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처음 제안한 사람 이름을 따 ‘던바(Dunbar)의 수’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의 한 종이 사회관계를 유지하는 집단 크기를 뜻한다. 흥미롭게도 이 수는 각 영장류의 뇌 크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장류에 속하는 사람도 예외가 아닌데, 사람의 ‘던바의 수’는 약 150명이다. 휴대전화 전화부에서 좀 전에 세어본 지인 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온라인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맺는 의미 있는 사회관계의 수는 여전히 뇌의 크기라는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회관계 유지 ‘던바의 수’ 150명
이제 편의상 이 수가 누구에게나 100명이라고 가정하자. 필자는 사람 100명에게 소식을 직접 전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가 아는 100명도 마찬가지로 각자 100명의 사람에게 소식을 직접 전할 수 있으니, 두 다리만 건너면 필자 소식은 1만 명에게 전달된다. 세 다리면 그 100배가 돼 100만 명에게, 네 다리면 1억 명이 필자 소식을 접할 수 있으리라.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필자 소식을 듣게 되는 셈이다.
즉, 필자와 연결되는 ‘다리의 길이’가 하나, 둘, 셋 이렇게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필자가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람 수는 100배씩 커진다. 이 이야기를 뒤집으면 100, 1만, 100만, 1억 이렇게 사람 수를 100배씩 크게 하면 그 사람들을 필자와 연결하는 중간다리 길이는 단지 하나씩만 늘어난다는 얘기가 된다. 100배당 달랑 한 칸씩.
‘좁은 세상 효과’라고 표현하는 이 현상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막상 알고 보면 중간 다리 몇 명만 넣으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사람을 연결하는 중간 다리를 한 칸, 두 칸씩만 늘려도 연결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아주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임의로 2명을 택할 경우 평균적으로 다섯 다리만 건너면 연결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1960년대 행한 이 실험 방식은 이렇다. 최종적으로 받을 사람 이름만 적은 편지를 서로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끼리만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몇 다리를 거쳐야 편지가 최종 수취인에게 전해지는지를 실제로 조사했다.
미국에서 다섯 다리라면, 세계적으로는 여섯 다리면 된다. 왜 그럴까. 그 실험에 사용된 편지를 처음 받은 사람이 미국인이 아니라, 필자 같은 한국인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필자는 미국에 아는 사람이 있다. 아마 독자 중에도 미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한두 명쯤 있는 분이 많을 것이다. 편지를 필자가 맨 처음 받았다면, 그 편지를 최종 수취인이 사는 미국의 한 지인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이후 미국 내에서 평균 다섯 다리니, 필자도 통틀어 여섯 다리면 그 편지를 최종 수취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미국에 지인이 없는 독자가 그 편지를 받았다면 필자에게 주면 된다. 한 단계 늘어난 일곱 다리면 전달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시작하더라도 지구상 두 사람은 평균 예닐곱 다리면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한 신문사가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와 함께 평균 3.6다리만 건너면 두 사람이 연결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필자도 한 대학에서 학생들이 평균 두 다리만 건너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좁은 세상 효과’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 사는 두 사람이 놀랍도록 짧은 다리 수로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주며, ‘내 친구 둘은 그 둘이 서로 친구인 경우도 많다’는 것을 함께 의미하는 말이다. 이 때문에 앞에서 이야기한 필자 친구 100명의 친구를 모두 더하면 1만 명보다는 상당히 적을 것이다. 친구들이 많이 겹치니까.
알고 보면 친구 ‘좁은 세상 효과’
‘그림 1’은 사회연결망 서비스인 페이스북에서 필자 친구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됐는지를 보여준다. 커다란 원 모양 둘레에는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서 있다. 원 위에 두 친구를 연결하는 선이 있으면 그 두 친구가 또 서로 페이스북 친구라는 뜻이다. 그림을 보면, 필자 친구들끼리 서로 친구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직장 동료가 친구의 동생의 초교 동창일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이 맺는 사회연결망(network)이 가진 ‘좁은 세상 효과’ 때문이다.
연결망 혹은 네트워크는 사실 별게 아니다. 많은 점을 선으로 이은 것일 뿐이다. 물론 어떤 ‘점’을 어떤 의미의 ‘선’으로 이었는지에 따라 사람 사이의 사회관계를 보여주는 사회연결망일 수도, 수많은 컴퓨터가 네트워크 케이블로 연결된 인터넷일 수도 있다. ‘그림 2’에 있는 작은 동그라미는 각각 사람을 나타내고, 이들 사이 ‘관계’는 두 동그라미를 잇는 연결선으로 표현돼 있다. 그림에 있는 연결망이 대체 어떤 사람을 어떻게 연결한 것인지, 즉 두 사람을 잇는 ‘관계’의 의미가 무엇일지 한 번 답해보라.
이 질문을 듣자마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첫 번째 도움말. 그림을 가만히 쳐다보면 그림 안에 사각형 모양으로 점이 이어졌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삼각형은 찾을 수 없다. 또 육각형은 있지만 오각형도, 칠각형도 없다. 즉 그림에 짝수각형 모양만 보이지 홀수각형 모양은 아무리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는다. 무슨 뜻일까.
자, 연결망의 한 점을 택해 빨간색으로 칠하고 그 빨간색 점에 다리 하나로 직접 연결된 점은 파란색으로, 또 그 파란색 점에 연결된 점을 다시 빨간색으로…, 이렇게 계속 다리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빨강과 파랑을 번갈아가며 칠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직접 선으로 연결된 두 점에 빨강과 파랑 두 색을 입히는 경우, 네 개 선으로 연결된 사각형의 네 점은 문제없이 색칠할 수 있다. 네 점 가운데 하나에 빨간색을 칠하고 그 점과 직접 선으로 연결된 두 점에는 각각 파란색을 칠하고, 남은 한 점에는 빨간색을 칠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빨간색과 직접 연결된 점은 둘 다 파란색이고, 마찬가지로 파란색과 직접 연결된 점은 또 둘 다 빨간색이 돼 점을 잇는 연결선은 다른 색깔 점 사이에만 있게 된다.
삼각형이라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한 점을 빨간색으로 칠하고 나머지 두 점을 파란색으로 칠하면, 빨간색 점은 친구 둘 모두 파란색이니 행복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파란색 점은 빨간색 친구뿐 아니라 파란색 친구도 있어 불만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홀수각형의 경우 이처럼 ‘연결된 두 점을 다른 색깔로 칠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홀수각형이 하나도 없는 ‘그림 2’의 연결망은 모든 점을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색으로 나눌 수 있고, 두 점을 잇는 연결선은 빨강-파랑처럼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점들 사이에만 있지 빨강-빨강, 파랑-파랑처럼 같은 색깔을 가진 점 사이에는 없는 구조를 보여준다.
자, 필자가 제시한 질문에 답하기가 이제 조금 쉬워졌다. ‘그림 2’의 연결망은 사람을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고, 서로 상대 그룹에 있는 사람들하고만 연결선이 있는 그런 연결망이 된다. 이제 많은 독자가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그림 2’는 바로 남녀관계 연결망이다. 위의 글에서 남자를 빨강으로, 여자를 파랑으로 바꿔 읽어보길.
‘그림 2’의 연결망은 필자가 외국에 있던 시절 박사과정 지도학생으로 처음 만났고, 현재는 필자와 같은 우리나라 대학에서(세상 참 좁다) 교편을 잡고 있는 페터 홀메(Petter Holme) 교수가 만들었다. 유명 영화 스타 사이의 ‘언론에 공개된 적 있는 남녀관계’ 연결망이다. 그림에 만약 삼각형이 있었다면 무슨 의미였을지 생각해보길.
유명 배우와 일반인의 연결망
그림 속 연결망에서 몇 개 눈에 띄는 사각형 모양(네 명)의 남녀관계는 일일연속극이라면 모를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내 전처의 지금 남편이 내가 재혼해서 함께 사는 지금 아내의 전남편’이 된 경우, 즉 ‘두 쌍 부부 사이의 배우자 뒤바뀜’에 해당한다. 미국 한 고교에서 마찬가지로 남녀관계 연결망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고교생 288명의 18개월간 남녀관계 연결망에서는 앞서 나온 유명 배우들과는 달리 사각형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필자와 함께 연결망 그림에서 한 점이 다른 점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다양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림 2’가 남녀관계 연결망이라는 것, 또 영화 스타 사이의 남녀관계는 삼각형은 안 보이지만 사각형은 흔해서, 일반인의 남녀관계 연결망과는 그 특성이 다르다는 점 등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연결망을 만든 다음, 점과 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만 눈여겨봐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현재 많은 학문 분야에서 ‘연결망으로 보기’ 연구가 크게 유행하는 이유다. ‘망치를 잡고 있으면 모두 다 못으로 보인다’는 영어 속담이 있다. 속담에서 경고하듯 모든 현상을 다 ‘연결망’이라는 망치로 내리치다가는 ‘선무당이 사람 잡듯’ 큰코다칠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조심해야 하지만, 어쨌든 ‘연결망’ 망치를 손에 쥐었으니 여기저기 살살 두드려는 볼일이다. 상당히 강력한 이 ‘연결망’ 망치로 제대로 공략해 설명할 수 있는 현상들에는 뭐가 더 있는지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다.
자,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부에서 최근 몇 년간 한 번이라도 통화한 지인이 얼마나 있는지 한 번 세어보라. 마당발 정치인이 아니라면 아무리 많아도 몇백 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처음 제안한 사람 이름을 따 ‘던바(Dunbar)의 수’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의 한 종이 사회관계를 유지하는 집단 크기를 뜻한다. 흥미롭게도 이 수는 각 영장류의 뇌 크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장류에 속하는 사람도 예외가 아닌데, 사람의 ‘던바의 수’는 약 150명이다. 휴대전화 전화부에서 좀 전에 세어본 지인 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온라인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맺는 의미 있는 사회관계의 수는 여전히 뇌의 크기라는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회관계 유지 ‘던바의 수’ 150명
이제 편의상 이 수가 누구에게나 100명이라고 가정하자. 필자는 사람 100명에게 소식을 직접 전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가 아는 100명도 마찬가지로 각자 100명의 사람에게 소식을 직접 전할 수 있으니, 두 다리만 건너면 필자 소식은 1만 명에게 전달된다. 세 다리면 그 100배가 돼 100만 명에게, 네 다리면 1억 명이 필자 소식을 접할 수 있으리라.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필자 소식을 듣게 되는 셈이다.
즉, 필자와 연결되는 ‘다리의 길이’가 하나, 둘, 셋 이렇게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필자가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람 수는 100배씩 커진다. 이 이야기를 뒤집으면 100, 1만, 100만, 1억 이렇게 사람 수를 100배씩 크게 하면 그 사람들을 필자와 연결하는 중간다리 길이는 단지 하나씩만 늘어난다는 얘기가 된다. 100배당 달랑 한 칸씩.
‘좁은 세상 효과’라고 표현하는 이 현상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막상 알고 보면 중간 다리 몇 명만 넣으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사람을 연결하는 중간 다리를 한 칸, 두 칸씩만 늘려도 연결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아주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임의로 2명을 택할 경우 평균적으로 다섯 다리만 건너면 연결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1960년대 행한 이 실험 방식은 이렇다. 최종적으로 받을 사람 이름만 적은 편지를 서로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끼리만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몇 다리를 거쳐야 편지가 최종 수취인에게 전해지는지를 실제로 조사했다.
미국에서 다섯 다리라면, 세계적으로는 여섯 다리면 된다. 왜 그럴까. 그 실험에 사용된 편지를 처음 받은 사람이 미국인이 아니라, 필자 같은 한국인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필자는 미국에 아는 사람이 있다. 아마 독자 중에도 미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한두 명쯤 있는 분이 많을 것이다. 편지를 필자가 맨 처음 받았다면, 그 편지를 최종 수취인이 사는 미국의 한 지인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이후 미국 내에서 평균 다섯 다리니, 필자도 통틀어 여섯 다리면 그 편지를 최종 수취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미국에 지인이 없는 독자가 그 편지를 받았다면 필자에게 주면 된다. 한 단계 늘어난 일곱 다리면 전달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시작하더라도 지구상 두 사람은 평균 예닐곱 다리면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한 신문사가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와 함께 평균 3.6다리만 건너면 두 사람이 연결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필자도 한 대학에서 학생들이 평균 두 다리만 건너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좁은 세상 효과’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 사는 두 사람이 놀랍도록 짧은 다리 수로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주며, ‘내 친구 둘은 그 둘이 서로 친구인 경우도 많다’는 것을 함께 의미하는 말이다. 이 때문에 앞에서 이야기한 필자 친구 100명의 친구를 모두 더하면 1만 명보다는 상당히 적을 것이다. 친구들이 많이 겹치니까.
알고 보면 친구 ‘좁은 세상 효과’
‘그림 1’은 사회연결망 서비스인 페이스북에서 필자 친구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됐는지를 보여준다. 커다란 원 모양 둘레에는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서 있다. 원 위에 두 친구를 연결하는 선이 있으면 그 두 친구가 또 서로 페이스북 친구라는 뜻이다. 그림을 보면, 필자 친구들끼리 서로 친구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직장 동료가 친구의 동생의 초교 동창일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이 맺는 사회연결망(network)이 가진 ‘좁은 세상 효과’ 때문이다.
연결망 혹은 네트워크는 사실 별게 아니다. 많은 점을 선으로 이은 것일 뿐이다. 물론 어떤 ‘점’을 어떤 의미의 ‘선’으로 이었는지에 따라 사람 사이의 사회관계를 보여주는 사회연결망일 수도, 수많은 컴퓨터가 네트워크 케이블로 연결된 인터넷일 수도 있다. ‘그림 2’에 있는 작은 동그라미는 각각 사람을 나타내고, 이들 사이 ‘관계’는 두 동그라미를 잇는 연결선으로 표현돼 있다. 그림에 있는 연결망이 대체 어떤 사람을 어떻게 연결한 것인지, 즉 두 사람을 잇는 ‘관계’의 의미가 무엇일지 한 번 답해보라.
이 질문을 듣자마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첫 번째 도움말. 그림을 가만히 쳐다보면 그림 안에 사각형 모양으로 점이 이어졌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삼각형은 찾을 수 없다. 또 육각형은 있지만 오각형도, 칠각형도 없다. 즉 그림에 짝수각형 모양만 보이지 홀수각형 모양은 아무리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는다. 무슨 뜻일까.
자, 연결망의 한 점을 택해 빨간색으로 칠하고 그 빨간색 점에 다리 하나로 직접 연결된 점은 파란색으로, 또 그 파란색 점에 연결된 점을 다시 빨간색으로…, 이렇게 계속 다리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빨강과 파랑을 번갈아가며 칠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직접 선으로 연결된 두 점에 빨강과 파랑 두 색을 입히는 경우, 네 개 선으로 연결된 사각형의 네 점은 문제없이 색칠할 수 있다. 네 점 가운데 하나에 빨간색을 칠하고 그 점과 직접 선으로 연결된 두 점에는 각각 파란색을 칠하고, 남은 한 점에는 빨간색을 칠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빨간색과 직접 연결된 점은 둘 다 파란색이고, 마찬가지로 파란색과 직접 연결된 점은 또 둘 다 빨간색이 돼 점을 잇는 연결선은 다른 색깔 점 사이에만 있게 된다.
삼각형이라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한 점을 빨간색으로 칠하고 나머지 두 점을 파란색으로 칠하면, 빨간색 점은 친구 둘 모두 파란색이니 행복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파란색 점은 빨간색 친구뿐 아니라 파란색 친구도 있어 불만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홀수각형의 경우 이처럼 ‘연결된 두 점을 다른 색깔로 칠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홀수각형이 하나도 없는 ‘그림 2’의 연결망은 모든 점을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색으로 나눌 수 있고, 두 점을 잇는 연결선은 빨강-파랑처럼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점들 사이에만 있지 빨강-빨강, 파랑-파랑처럼 같은 색깔을 가진 점 사이에는 없는 구조를 보여준다.
자, 필자가 제시한 질문에 답하기가 이제 조금 쉬워졌다. ‘그림 2’의 연결망은 사람을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고, 서로 상대 그룹에 있는 사람들하고만 연결선이 있는 그런 연결망이 된다. 이제 많은 독자가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그림 2’는 바로 남녀관계 연결망이다. 위의 글에서 남자를 빨강으로, 여자를 파랑으로 바꿔 읽어보길.
‘그림 2’의 연결망은 필자가 외국에 있던 시절 박사과정 지도학생으로 처음 만났고, 현재는 필자와 같은 우리나라 대학에서(세상 참 좁다) 교편을 잡고 있는 페터 홀메(Petter Holme) 교수가 만들었다. 유명 영화 스타 사이의 ‘언론에 공개된 적 있는 남녀관계’ 연결망이다. 그림에 만약 삼각형이 있었다면 무슨 의미였을지 생각해보길.
유명 배우와 일반인의 연결망
그림 속 연결망에서 몇 개 눈에 띄는 사각형 모양(네 명)의 남녀관계는 일일연속극이라면 모를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내 전처의 지금 남편이 내가 재혼해서 함께 사는 지금 아내의 전남편’이 된 경우, 즉 ‘두 쌍 부부 사이의 배우자 뒤바뀜’에 해당한다. 미국 한 고교에서 마찬가지로 남녀관계 연결망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고교생 288명의 18개월간 남녀관계 연결망에서는 앞서 나온 유명 배우들과는 달리 사각형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필자와 함께 연결망 그림에서 한 점이 다른 점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다양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림 2’가 남녀관계 연결망이라는 것, 또 영화 스타 사이의 남녀관계는 삼각형은 안 보이지만 사각형은 흔해서, 일반인의 남녀관계 연결망과는 그 특성이 다르다는 점 등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연결망을 만든 다음, 점과 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만 눈여겨봐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현재 많은 학문 분야에서 ‘연결망으로 보기’ 연구가 크게 유행하는 이유다. ‘망치를 잡고 있으면 모두 다 못으로 보인다’는 영어 속담이 있다. 속담에서 경고하듯 모든 현상을 다 ‘연결망’이라는 망치로 내리치다가는 ‘선무당이 사람 잡듯’ 큰코다칠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조심해야 하지만, 어쨌든 ‘연결망’ 망치를 손에 쥐었으니 여기저기 살살 두드려는 볼일이다. 상당히 강력한 이 ‘연결망’ 망치로 제대로 공략해 설명할 수 있는 현상들에는 뭐가 더 있는지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