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명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에서만 하는 것인 줄 알았던 이 말을 현실에서도 외쳤다.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향해서다. 코미는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트럼프 선거캠프 정책팀과 러시아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었다. 일각에선 코미를 해고한 일이 ‘탄핵감’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 이슈를 예측해 그에 따라 베팅하는 웹사이트 프리딕트잇(www.predictit.org)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까지 임기를 마칠 확률은 68%로, 해고 뉴스가 나오기 전보다 6%가량 떨어졌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기 전 자진 사퇴하거나 탄핵될 가능성을 점점 더 높게 보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1970년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잖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S&P 500 지수
워터게이트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 주식시장 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은 꾸준히 떨어졌다. 닉슨 대통령이 자진 사임한 직후인 1974년 9월 S&P 500은 68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바로 반등해 상승장이 시작됐다. 이 랠리는 중간에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때 주춤한 것 말고는 80년대까지 쭉 이어졌다(그래프 참조).한 국가의 정치적 불안정은 해당 국가의 주식시장은 물론, 국제 투자자에게도 좋은 소식이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도 주식시장이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더 중요한 사건이 있다. 바로 1973년부터 있었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오일 엠바고(embargo)다. OPEC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시리아의 갈등에서 이스라엘 측에 무기를 제공한 미국에게 앙갚음을 했다. 그 결과 73년 원유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고 1973~74년 세계 주식시장의 하락을 불러왔다. 미국 주식시장 역시 원유가격 급등이라는 경제적 원인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겹치면서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FBI 국장 경질도 곧바로 금융시장에 영향을 끼쳤다. 미국 국채시장이 대표적이다. 미국 국채 거래량이 갑자기 늘어났고, 5년 채권의 가격도 급속히 상승했다. 상황이 불안할 때 투자자들은 위험 자산 대신 미국 국채나 금 같은 안전자산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아직 이 사건이 경제 전반의 펀더멘털을 흔들 만큼 강력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투자자들은 무엇이 불안했던 것일까. 글로벌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취합 가능한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에 일어날 사건의 결과를 예측함으로써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이런 스캔들로 믿음을 잃은 대통령이 기업 수익과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법인세나 의료제도를 개혁할 수 있을지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케어’를 ‘트럼프케어’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이 법안은 3월 하원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보류됐다 5월 둘째 주 하원에서 217 대 213으로 간신히 통과됐다. 아직 상원 통과라는 벽이 남아 있긴 하다. 오바마케어가 트럼프케어로 변경되면 건강보험회사들의 수익구조 역시 바뀔 테니, 펀더멘털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이 법안 통과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트럼프케어보다 더 통과되기 어려운 법인세 개혁을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험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것이 법인세 인하 무산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4월 말 ‘세금개혁’ 지시
4월 마지막 주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내건 ‘세금개혁’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만들라는 지시를 보좌관들에게 내렸다. 이 세금개혁에는 현 35%인 법인세를 15%로 내리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 인하는 큰 파급 효과를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은 이전에도 법인세 인하를 주장해왔지만 15%로 내리는 건 상당히 파격적이다. 이 정도면 세금개혁이 아니라 그냥 세금 감면이라 불러야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꽤 있다. 세금을 내리면 그만큼 정부는 재정이 모자라게 된다. 가뜩이나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 정부에게는 심각한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세금 감면으로 경제가 좋아져 정부 세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공화당은 세금개혁을 상원의 예산 조정 절차를 통해 간단히 처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민주당 의원들이 지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법상 정부의 재정적자를 늘리는 세금개혁은 10년 이상 지속할 수 없다. 법인세 인하가 10년 뒤 다시 원상회복될 수 있다는 건 기업 처지에선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는 일이라 인하 효과가 충분히 구현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법인세 개혁이 미국 기업을 더 경쟁력 있게 만드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경제 전체에 미칠 영향을 따지면 다시 점검해볼 사항이 적잖다. 예를 들어 법인세 인하로 절감된 돈을 기업이 더 투자해 고용이 늘고 경기가 좋아진다는 전망이 맞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기업이 미래를 비관한다면 세금 인하로 절약한 돈을 투자하지 않고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쓸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법인세 개혁이 제대로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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