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나흘 만인 5월 14일 북한이 놀라운 도발을 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바짝 접근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북한이 발표한 이 미사일은 ‘화성-12형’이고 한미연합군이 명명한 코드명은 KN-17이다. KN은 ‘Korea North’의 약어로, 한미연합군은 북한이 새로 개발한 미사일엔 KN 뒤에 숫자를 붙여 분류한다.
5월 15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전날 새벽 5시 27분쯤 평북 구성시 인근에서 발사된 이 미사일이 예정된 비행궤도를 따라 최대 2111.5km까지 올라갔다 발사지에서 787km 떨어진 공해상의 목표 수역을 정확히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정상 각도로 쐈으면 5000여km를 비행할 수 있는데, 고각(高角)발사를 했기에 비행거리는 787km로 줄어들었다는 주장이었다.
화성-12형은 1단(段)인지라, ‘단 분리’ 없이 날아갔다. 이 1단은 3월 18일 평북 철산군 동창리 발사장 인근에서 지상 분출실험을 성공시킨 ‘신형 고(高)출력 액체엔진’으로 추정된다. 그날 김정은은 매우 기분이 좋았는지, 엔진 개발 책임자로 추정되는 이를 업고 사진을 찍었다(사진A).
이 1단의 추력은 100여t으로 추정됐다. 따라서 5~10t 추력을 가진 2단을 올리면 ICBM이 될 수도 있다. ‘단 추가’와 ‘비행 중 단 분리’, 그리고 이 미사일에 적합한 핵탄두의 완성과 핵탄두를 실은 탄두부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을 개발한다면,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미국 본토를 핵 공격할 수 있게 된다.
산을 뚫어 만든 활주로
우리를 선득선득 놀라게 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비밀을 밝혀보기로 하자. 날카로운 독자라면 북한은 날이 어두울 때 몇몇 비행장과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인근에서만 미사일 발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로나 추수가 끝난 농경지에서도 발사했지만, 그곳 역시 이 비행장 등에서 멀지 않았다.춘분(春分) 직후라 아직 밤이 길었던 3월 22일 새벽 원산 인근의 강다리비행장에서 폭발이 있었다. 우리 군은 북한 미사일이 발사되지 못하고 폭발한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가 운영하는 ‘38노스’는 유럽 에어버스의 위성이 찍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사진을 공개하는 인터넷 블로그로 유명하다. 38노스는 엿새 뒤인 28일 강다리비행장을 찍은 위성사진을 공개했는데, 2번 활주로에 100여m 크기의 폭발 흔적이 있었다(사진B).
38노스는 폭발 직전이나 직후의 사진을 확보하지 못하고, 북한이 폭발 잔해를 다 치워 활주로에 그을린 흔적만 촬영한 것이다. 왜 북한은 강다리비행장에서 미사일을 쏘려 했을까. 그 이유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산을 관통한 강다리비행장의 2번 활주로다(사진C). 1번 활주로는 정상적으로 지상(地上)에 건설됐으나, 2번 활주로는 산을 남북(南北)으로 뚫어, 활주로의 상당부분과 격납고를 산속에 넣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북한군 처지에서 강다리비행장은 최전방이니, 유사시 이곳은 한미연합군의 집중공격을 받아 1번 활주로와 2번 활주로의 남쪽 부분은 파괴된다. 그러나 2번 활주로의 북쪽 부분은 산이 ‘방패’가 돼 포탄을 막아줄 수 있으니, 공군기들은 이착륙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북한 공군기들은 거의 작전을 하지 않으니, 북한은 이 갱도 활주로를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인 TEL(수송, 기립, 발사를 뜻하는 Transport, Erection, Launch의 약어)을 넣는 곳으로 사용한다.
지난해 6월 22일 북한은 강다리비행장에서 무수단(화성-10형) 두 발을 발사했는데, 첫 번째는 150km를 날아가 공중 폭발하고, 두 번째는 1413.6km까지 치솟아(고각발사) 400여km를 비행했다. 북한은 여섯 번 만에 무수단 발사를 성공시킨 것인데, 무수단 하단에 무게중심을 낮춰주는 ‘그리드 핀’이 달려 있어 주목을 끌었다. 그때도 북한은 이 갱도 활주로에 무수단 TEL을 숨겨놓았다. 북한의 비행장 가운데 갱도 활주로가 있는 곳은 온천과 장진 등 3곳이다. 갱도 격납고는 15개 비행장에 건설돼 있으니, 북한은 그곳에 TEL을 숨겨놓을 수 있다.
북한은 한미연합군의 추적을 피하고자 TEL과 미사일 조립도 산속에서 하고 있다. 예리한 독자라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한미와 북한의 평가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미군보다 우리 군의 평가가 인색하고, 하루 이틀 뒤 나오는 북한의 설명은 충실해지고 있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정보 관계자들은 “사실만 이야기하고 ‘능력은 별거 아니다’라고 평가해놓으면 북한이 알아서 다 밝혀준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김정일의 75주년 생일이 다가온 2월 12일 아침 북한은 평북 구성시 인근에서 북극성-2형(KN-15) 발사를 성공시켰다(사진D). 그러자 다음 날 북한 ‘노동신문’은 ‘(2월) 11일 (김정은이) 위험천만한 탄도탄 총조립 전투현장(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 찾아와 1박 2일간 머물며 미사일 발사 과정을 보고받고 국방과학 일꾼들을 격려하시었다’고 썼다. 조선중앙TV는 ‘최고 령도자 동지께서 1박 2일간 현장에 머무르셨다’며 김정은이 북극성-2형 발사 준비를 점검하는 동영상을 방송했다.
북한 매체들은 처음으로 미사일 발사지(地)를 밝힌 것이다. 2월 11~12일의 김정은 동선도 공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군은 어렴풋하던 정보를 확신할 수 있었다. 구성시 인근에는 방현비행장이 있는데(사진E), 그곳은 후방인지라 산을 관통한 활주로는 건설되지 않았다. 하지만 활주로의 한쪽 끝은 격납고가 건설된 산속으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인근에 산을 끼고 방현비행기공장이 있는데, 북한 매체의 상세한 보도 덕에 정보당국은 이 공장이 미사일조립공장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사진F).
산속 공장에서 TEL 조립해
정보당국은 휴민트(Humint) 등을 통해 방현비행기공장도 산속에 공장을 갖고 있고, 이 공장과 방현비행장 사이에 터널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 터널은 야트막한 언덕이 있는 곳에 출입구를 내놓고 있는데(사진G), 방현비행기공장에서 나온 TEL은 지하터널로 이동해 2월 11일 밤 이 출구 근처로 와서 대기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북극성-2형은 고체연료를 탑재했기에 기립 후 바로 발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낮에 발사를 하고 북한은 자화자찬을 했다.
550km까지 치솟아 500여km를 비행했다며 이를 중거리탄도탄(IRBM)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석 달 뒤인 5월 14일 이곳에서 화성-12형 발사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15일에는 공중 폭발로 끝난 북극성-10형(무수단)의 발사도 있었다. 이 때문에 방현비행기공장은 신형 IRBM 조립처로 판단됐다. 이곳에서 나온 IRBM을 제대로 된 TEL과 결합시킬 수 있으면, 강다리비행장 등 다른 곳으로 가져가 실험발사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이곳에서 실험발사를 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5월 14일 이곳에서 있었던 화성-12형의 발사는 TEL에서 분리된 상태에서 이뤄졌다. 이는 북한이 화성-12형에 맞는 TEL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북한은 유엔 제재 때문에 중국 등지로부터 새로 만든 미사일에 맞는 TEL을 구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위성을 발사하는 평북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도 갱도 진지를 갖고 있기에 TEL을 숨겨놓았다 쏘는 곳으로 활용된다. 3월 6일 북한은 그 갱도에서 꺼낸 TEL을 인근 농경지에 전개시키고 스커드-ER 네 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도로 사정은 매우 열악하다. 4차선으로 가장 좋다는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조차 움푹 파인 곳이 많아 고속으로 달릴 수 없다. 나머지 도로는 비포장이 대부분이고, 굽은 구간도 많아 트레일러 크기의 TEL이 다니기 불편하다. 북한은 그러한 길 가운데 터널이 있고 TEL이 다닐 수 있는 곳을 찾아내 발사장으로 활용한다.
지난해 9월 5일 북한은 황주의 포장도로에서 터널에 숨겨놓았던 TEL을 꺼내 스커드-ER(추정) 세 발을 쏘는 훈련을 하고 이를 TV로 방영했다(사진H). 이 때문에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이 유사시 TEL을 쏠 수 있는 도로를 찾아내는 데도 주목하게 됐다. 우리 군은 회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북한의 자랑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수집, 분석하게 된 것이다.
현상을 알면 대책도 세울 수 있다. 북한 미사일 가운데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고체연료를 탑재하고 있어 급작사격이 가능한 북극성-2형이다. 북한은 북극성-2형을 TEL에서 쏘았으니, 우리 군은 이 미사일 발사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킬체인(Kill chain)을 가동시켜 선제타격해야 한다.
나머지 TEL들은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고, 24시간 이상 체공할 수 있으며, 헬 파이어 같은 공격미사일을 탑재하는 고고도나 중고도 무인기를 띄워놓고 있다 땅속에서 나오면 바로 정밀타격해 없애버려야 한다. 군당국은 타우루스나 벙커버스터로 입구를 파괴해 갱도를 아예 ‘무덤’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더 좋은 방안으로 보고 있다. 정보 관계자들은 북한이 미사일 개발과 개발한 미사일을 숨겨놓는 데 ‘악전고투’하고 있음을 잘 알기에, 북한 미사일 발사를 무조건 두려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