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엔 대학만 들어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취업준비생 시절엔 취직만 하면 만사가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면 학점에 발목 잡히고, 취업해도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걱정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산다. 마찬가지로 은퇴 준비를 위해 시작한 장기투자가 저절로 수익을 가져오리라 기대하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연애도 상대를 끊임없이 배려하고 관심을 가져야 지속할 수 있듯, 장기투자 역시 수익률 관리가 관건이다.
일반적으로 장기투자는 복리와 비과세(특정 상품의 경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 방법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좋은 일에는 탈도 많듯(호사다마·好事多魔), 장기투자 역시 기대만큼 수익을 실현하기까지는 많은 리스크를 견뎌내야 한다. 펀드평가업체 KG제로인에 따르면 장기투자 목적으로 학부모 다수가 가입한 어린이펀드 23개 가운데 총 7개 종목의 최근 5년간 수익률이 마이너스였다. 심지어 올해 주식시장 호황에도 연초 이후 수익률이 0.84%에 불과했다. 반면 정반대 수익률을 기록한 어린이펀드도 있다. 예를 들어 ‘신영주니어경제박사’ 펀드와 ‘한국밸류10년투자어린이’ 펀드는 최근 5년간 수익률이 각각 33%, 57.93%에 달할 정도로 높다.
수익 올리려면 갈아타기 잘해야
그뿐 아니다. 10년 전 중국펀드 붐이 일었을 때 앞다퉈 가입한 펀드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반 토막 수준으로 수익이 곤두박질쳤지만, 지금은 오히려 원금을 웃돌 정도로 회복된 것도 많다. 결국 많은 사람이 “그때 그 펀드에 들었어야 하는데” “중국펀드 수익률 회복기 때 다시 투자할걸”이라며 후회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 같은 후회를 미래 어느 시점에 또다시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하지만 투자전략에 앞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귀차니즘’을 극복하는 일이다. 언제쯤 펀드를 갈아타면 좋을지, 새로운 펀드의 판매 수수료는 얼마인지, 기존 펀드의 환매 수수료는 얼마인지 등 따져봐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계좌(account)’를 통한 펀드투자 방법이다.‘계좌’를 통한 펀드투자는 위험도(채권형, 혼합형, 주식형)와 투자지역(국내, 미국, 유럽, 아시아 등) 등이 서로 다른 여러 펀드를 한 바구니(계좌)에 미리 담아둔 다음, 투자시장 변화에 따라 해당 금융회사의 △객장 직접 방문 △콜센터 이용 △HTS(홈트레이딩시스템) 이용 등 언제 어디서든 전화 또는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넣거나 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안전한 채권형 펀드에 넣어둔 적립금을 국내 주식형 펀드 혹은 미국 등 선진국에 투자하는 해외주식형 펀드로 이동시키는 식이다. 이처럼 계좌 방식의 투자상품으로는 우리가 잘 아는 연금저축계좌, 퇴직연금 DC(확정기여)형, 개인형퇴직연금(IRP)계좌, 비과세해외주식투자전용펀드(해외비과세펀드), 변액보험 등이 있다. 이들의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연금저축계좌 노후자금을 위한 연금저축은 은행이나 보험사의 금리연동형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금리연동형은 금리하락에 취약해 앞으로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 위험하다. 따라서 금리연동형을 선택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연금저축이전제도를 이용해 증권사나 펀드슈퍼마켓의 연금저축계좌로 옮겨 금리연동형 상품을 ‘실적배당형’으로 바꾸길 추천한다. 연금저축계좌는 연간 1800만 원 한도로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또한 근로소득자는 물론, 개인사업자도 연 4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2017년 소득분부터 근로소득자는 총 급여 1억2000만 원, 개인사업자는 종합소득금액 1억 원을 초과한 경우 공제 한도가 연 300만 원으로 축소된다는 점을 참고하자. 그러나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합산 연 700만 원 공제 한도는 동일하기 때문에 고액 연봉자는 퇴직연금 DC형과 IRP에서 공제 한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다.
퇴직연금 DC형 퇴직연금은 크게 기존 퇴직금과 비슷한 회사책임형 DB(확정급여)형, 회사가 넣어준 부담금을 개인이 자유로이 운용하는 개인책임형 DC형이 있다. 따라서 DC형은 퇴직금의 개인 계좌인 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퇴직연금 상품의 평균 수익률이 1년 전보다 0.57%p 하락한 1.58%였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금리(연 1.6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다만 실적배당형 상품의 8년 누적수익률이 5.61%로 원리금보장형(3.05%)보다 높았던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퇴직연금 DC형은 좀 더 적극적인 펀드 관리가 필요하다.
IRP계좌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만 들 수 있다. 퇴직할 때 받은 퇴직금을 넣어두거나 퇴직 전이라도 퇴직연금과 별도로 개인이 추가 납부할 수 있으며, 이때 연금저축을 포함해 최대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수익금에 대한 세금이 없는 대신 연금을 수령할 때 연금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해외비과세펀드 해외비과세펀드도 계좌 방식으로 투자할 수 있다. 즉 해외비과세펀드 계좌에 해외펀드를 미리 여러 개 담아둔 다음, 투자시장 변화에 따라 이동하는 방법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해외비과세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한도는 모든 금융기관을 합산해 인당 3000만 원이며, 가입 가능 기간도 올해까지다. 해외비과세펀드는 매매차익이나 환차익에 대해 전액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세계경제가 최근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관심도가 높아졌다. 따라서 아직 가입하지 않았다면 먼저 해외비과세펀드 계좌부터 설정해두는 것이 좋다.
변액보험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계좌 방식의 투자상품이다. 보험상품의 특성상 선취수수료를 부과해 초기 사업비 부담감이 있긴 하지만,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일반 펀드의 후취수수료에 비해 저렴할 수도 있다. 또한 월 기본 보험료의 2배까지 가능한 추가납부보험료제도를 활용하면 사업비를 낮출 수 있어 장기투자에 유리하다. 펀드 변경은 보험사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횟수 제한이 없거나 정해졌더라도 1년에 12회 정도로 비교적 넉넉하다. 펀드 변경 수수료는 보험사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연간 4회까지는 무료, 그 이상은 회당 2000원을 넘지 않는다. 펀드 변경은 각 보험사 홈페이지에서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가능하고 보험사 콜센터를 통해서도 할 수 있다.
TV나 신문을 보면 투자에 성공해 부자가 된 ‘서민부자’의 사례가 흔하게 나온다. 부러운 한편, 왜 나는 저런 운이 따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 뒤에는 숱한 고비도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뭐든 쉽게 얻어지는 성공은 없다.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을 가지되, 투자시장의 변화를 이해하고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는 준비와 자세가 장기투자의 성공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