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사진작가 크리스(대니얼 칼루야 분)는 백인 여자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엄스 분)와 사귀고 있다. 그는 5개월간 교제 끝에 로즈의 부모가 사는 집에 방문하기로 하는데, 자신이 흑인이라는 점을 ‘여친’ 부모가 불편해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각각 정신과 의사, 최면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진 로즈의 부모는 버락 오바마를 지지하는 진보 성향의 엘리트. 이들 가족은 크리스에게 지나치리만치 친절하지만 집 안 분위기가 수상쩍다. 특히 이들과 함께 사는 흑인 관리인들은 크리스를 다소 적대적으로 대한다.
영화 ‘겟 아웃’ 예고편을 보면 스파이크 리 감독의 1991년 작 ‘정글 피버’가 떠오른다. ‘정글 피버’는 성공한 흑인 중산층 남성과 백인 여성의 불륜을 그린 멜로드라마. 반면 ‘겟 아웃’의 장르는 미스터리공포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흑인 감독이 만들었고, 남자 주인공은 흑인, 여자 주인공은 백인이라는 점 정도다. 그럼에도 두 작품이 겹쳐지는 것은 흑인 남성-백인 여성 커플이 주인공인 작품이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드물기 때문이다. 백인 히어로 남성과 흑인 혹은 유색인 미녀 커플은 흔해 빠졌지만, 그 반대는 여전히 튄다.
물론 예고편이 아닌 영화를 보면 ‘겟 아웃’이 ‘정글 피버’와 비슷한 듯 다른 주제를 다뤘고, 결도 꽤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정글 피버’가 정색하고 만든 사회성 짙은 멜로라면, ‘겟 아웃’은 인종차별을 다룬 공포물이지만 무서우면서 기괴하고 심지어 간혹 웃기기도 한, 경계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모호한 영화다.
이 영화는 흑인이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박수까지 받으며 퇴장한(것으로 보이지만 결론은 트럼프인), 20여 년 전보다 다소 진일보한 듯 보이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함축적이다. 늦은 밤 백인 주택가를 걷던 흑인 남성이 가면을 쓴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이후 영화는 주인공 커플과 그 여자친구 가족의 이야기로 전환해 앞서 예고했던 불안한 징후들이 실제로 드러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국내 홍보용 포스터는 ‘로튼 토마토(미국 영화 비평 사이트) 신선도 지수 99%’를 내걸고 있는데, 미스터리공포 장르를 즐겨보는 이라면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진행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건 그런 공포 상황에 인종주의, 흑인이라는 또 다른 편견에 대한 풍자를 입힌 것이다. 예컨대 로즈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한 백인 손님은 하나같이 크리스에게 호감을 보인다.
그를 앞에 두고 백인 중 누군가는 타이거 우즈의 뛰어난 골프 실력을, 또 다른 누군가는 흑인들의 성적 능력을 언급한다. 심지어 손님 가운데 일부는 “지난 몇백 년 동안이야 흰 피부가 유행이었지만 이제 대세는 흑인”이라고 말한다.
어느새 흑인은 유전적으로 탐나는 존재가 됐으나 여전히 주체는 아닌 셈이다. 게다가 로즈 가족 주변 흑인들의 태도는 무척이나 백인을 빼닮았다.
영화에서 주인공과 절친한 교통경찰 역을 맡아 감초 연기도 보여준 조던 필 감독은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출신이다. 그는 이 데뷔작으로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했다. 450만 달러(약 50억 원)라는 저예산으로 만들었으나 2월 미국 개봉 후 현재까지 2억 달러(약 2244억 원) 이상 흥행 수입을 거뒀다. ‘겟 아웃’ 속 백인 어법을 빌려 평가하자면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이처럼 성공한 것은 꽤 이례적이며, 필 감독은 데뷔작으로 2억 달러 수익을 낸 최초의 흑인 감독이기도 하다.
어쩌면 웃기면서 꽤나 섬뜩한 이 공포물의 흥행은 오바마에 이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미국 사회의 심리적 불안감을 상징하는 듯하다.
구가인은 두 아이의 엄마로 한때 ‘애 재우고 테레비’를 보다 이젠 평일 대체휴일에 조조영화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