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경기도청]
尹 대통령 ‘적극 추진’ 지시에 ‘GTX 추진단’ 출범
잘 만들고 그만큼 큰 인기를 누린 드라마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하지만 최근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가져올 변화는 한 차원 다른 양상이라 눈길을 끈다. 변화 시작점에는 원희룡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이 있다. 이 드라마는 경기도에 사는 젊은 주인공들의 성장기를 담았는데, 특히 4시간 넘게 걸리는 서울 출퇴근길을 매회 생생하게 보여줘 방송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이에 꽂힌 원 장관은 취임 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드라마 내용을 언급하며 수도권 교통망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 중심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있었다.GTX 사업은 경기도 외곽 주요 지점과 서울 중심 지역을 연결하는 급행철도를 지하 40m 이하 대심도(大深度)에 건설하는 것으로, 노선당 사업비만 수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SOC(사회간접자본) 프로젝트다. 평균 속도가 시간당 100㎞로 기존 수도권 전철에 비해 2~3배 이상 빨라서 완공되면 수도권 교통망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파급력도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 1위를 기록한 경기 의왕시의 경우 GTX-C노선 의왕역 신설에 대한 기대감으로 1년간 38.6%가 올랐다.
현 정부의 당초 GTX 관련 계획은 사업계획이 확정된 A~C노선의 조기화 및 연장선 추진에 초점이 맞춰졌다. 또 D~F노선에 대해선 사업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검토에 착수하겠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대선 공약으로 채택된 이후 일관된 방침이었고, 7월 18일 진행된 국토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전까지 유지됐다. 업무보고 전 배포된 보도자료에서도 국토부는 내년 6월까지 A~C 연장선 및 D~F노선 신설에 필요한 최적 노선안과 사업화 방안을 마련하고, 그 내용을 2025년 상반기 수립할 ‘제4차(2021~2030)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수정안’에 반영하겠다고 소개했다.
A~C노선 개통 앞당기고 D~F노선 예타 면제?
그런데 대통령 업무보고 후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원 장관이 언론을 통해 공개한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윤 대통령은 원 장관이 ‘나의 해방일지’를 봤느냐고 묻자 “보지는 못했는데 거기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받았다”고 답했다. 이어 “집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집의 (직장) 접근성, 출퇴근시간에 쓰는 그 시간을 자신과 가족을 위한 시간, 삶의 시간으로 돌려줘야 하는 게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며 “GTX-A 개통 일자를 최대한 당기라”고 주문했다. “하루하루 출퇴근에 시달리는 수도권 국민의 절박함을 봤을 때 1~2년 당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당기고 다른 부처들이 적극 협조해달라”는 지시도 덧붙였다.원 장관은 이런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해 “GTX를 최대한 앞당길 수 있는 스케줄을 다시 짜보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GTX 사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현 정부에서 예타만 진행하기로 했던 D~F노선은 아예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일정이 2~3년 이상 대폭 앞당겨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D~F노선의 예타가 면제될 가능성마저 대두되고 있다. 개략적인 노선도 그려지지 않아 사실상 ‘백지상태’인 D~F노선을 5년 이내에 착공하려면 2~3년이 걸리는 예타 일정을 건너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 장관도 이와 관련해 업무보고 이튿날인 7월 1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예타 부분도 필요하다면 신속 절차를 도입한다든지 해서 임기 내 착공을 목표로 하라’고 강력히 주문했다”며 “예타 면제를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수도권 부동산 양극화 우려 해소는 과제
국토부는 이를 위해 7월 31일에는 사업을 전담할 ‘GTX 추진단’을 출범했다. 추진단은 철도국장이 단장을 맡아 총괄 지휘하고, 기존 A~C 사업을 추진하는 ‘사업팀’과 현 정부에서 새로 추진하는 A~C노선 연장 및 D~F노선 신설을 전담하는 ‘기획팀’으로 구성됐다. 추진단의 1차 목표는 2024년 6월 개통 예정인 A노선의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다. B, C노선도 민간사업자 선정→협상→실시설계 등 남은 절차를 빠르게 추진해가기로 했다. 이를 통해 B노선은 2024년 첫 삽을 떠 2030년 개통하는 한편, C노선은 2023년 착공해 2028년 준공하겠다는 것이다(표 참조).
하지만 이런 정부 계획이 순탄하게 진행될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우선 D~F노선은 경유 지역에 대한 개괄적 방향만 제시된 상황이라 일정이 지나치게 촉박하다. 걸림돌도 적잖다. 무엇보다 D~F노선 예타를 면제하거나 일정을 축소하려면 국회 동의가 필수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석을 차지한 상황이라 처리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숙제다.
사업 추진이 확정된 A~C노선도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특히 사업 진행이 가장 빠른 A노선의 경우 2024년 6월 개통이 목표지만 개통 시기가 1년가량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된 상태다. 현재 중간역인 삼성역복합환승센터(목표 준공 시점 2028년 4월) 건설이 늦어지면서 2027년까지는 삼성역에 서는 것은 물론, 무정차 통과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공사가 일찍 끝나는 수서~동탄 구간을 우선 개통하기로 했다. 문제는 우선 개통 기간에 전동차 수리를 할 임시 차량정비기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초 계획에 없던 이 시설을 건설하려면 정부 예산 편성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덩달아 개통 시기가 2024년 중반에서 2025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GTX 사업 일정 단축 방침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수도권 출퇴근 교통난 완화에 기대감이 크지만 적잖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다. 무엇보다 국토 불균형 심화 논란이 거세다. 서울로 통근 가능 거리가 늘어나면서 수도권 인구 집중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GTX 인접 지역으로 주택 수요가 몰리면서 GTX가 없는 지역은 낙후지역이 될 수도 있다. 같은 경기도에서도 부동산 가격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GTX 노선이 대부분 이미 운행 중인 지하철이나 직행버스 노선과 겹치는 것도 문제다. 이미 사업이 본격화된 A~C노선의 경우 노선의 상당 구간이 기존 철도를 활용한다. 또 아직까지 구체적인 노선안이 나오지 않은 D~F노선도 신설 구간보다 기존 철도를 연결해 사용하는 구간이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이동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존 교통수단의 수요를 빼앗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최악의 경우 적자 노선 운영을 위해 국민 세금을 동원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황재성 부장은…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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