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 이제 격리도 풀리고 좀 나으셨죠?
영대 네. 안타깝게도 아내와 딸들이 차례로 코로나19에 감염돼 고생 중이긴 합니다만. ㅠㅠ
현모 어머 세상에…. 결국 온가족이 걸렸군요. ㅠㅠ
영대 그나마 제가 먼저 걸렸다 나아서 가족을 간호하고 있어요.
현모 이 무더위에 엄청 고생하시네요.
영대 저희 부부는 괜찮은데 아이들이 막 토하고 고생하니까 지켜보는 마음이 아프죠.
현모 모두 하루빨리 괜찮아지셔서 ‘손목의 호밀’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영대 네? 호밀이요??
현모 아, 핀란드에서는 사람의 건강이 손목에 붙은 호밀에서 나온다고 믿었대요. 거기 국민이 호밀빵을 즐겨 먹잖아요. 한마디로 우리말에 ‘밥심’이라는 게 있다면 거기엔 ‘호밀 힘’이라는 게 있는 거죠.
영대 갑자기 웬 핀란드요? 아, 맞다! 현모 님 번역하신 책이랑 관련된 거구나?!
현모 맞아요. ㅋㅋㅋㅋ ‘마음을 전할 땐 스칸디나비아처럼’이라고, 북유럽 4개국에서 자주 쓰는 관용구나 속담 같은 걸 소개한 책이에요.
안현모 씨가 북유럽 4개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관용구를 담은 책 ‘마음을 전할 땐 스칸디나비아처럼’을 번역했다. [사진 제공 · 안현모]
현모 솔직히 번역하면서도 무척 재미있었어요. 우리는 대부분 어릴 때부터 늘 영미권 문화만 가까이서 보고 배우잖아요. 저는 특히 직업 특성상 영어에만 매몰돼 있었고요. 그런데 전혀 다른 북유럽권의 언어 세계를 접하다 보니 완전히 색다르더라고요. 그 자체로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 되고 사고가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영대 와, 무슨 말인지 완전 알겠어요! 게다가 북유럽 하면 저에겐 뭔가 판타지적이고 저 멀리에 있는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장소로 다가오거든요.
현모 그만큼 미지의 공간이고 낯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유럽식 디자인이나 감성이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도 굉장히 사랑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책 표지나 삽화가 무지하게 예쁘답니다.
영대 현모 님은 예쁜 거 중시하시잖아요. ㅋㅋㅋ
현모 ㅋㅋㅋ 역시 잘 아심. 지금까지 제가 번역한 책 3권이 모두 디자인적으로 매우 예쁘답니다.
영대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소위 ‘스웨덴 게이트’라고 이름 붙은 이야기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던 게 떠오르네요. 스웨덴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식사시간이 되자 친구만 나가서 부모랑 밥을 먹고 오고 손님은 혼자 기다렸다는 일화였어요. 한동안 저마다 비슷한 경험담이나 갑론을박이 떠들썩하게 펼쳐졌는데, 저는 그런 문화적 차이로 빚어지는 여러 현상이 항상 흥미롭거든요. 그래서 제 전공도 음악인류학이겠지만요.
현모 ㅎㅎㅎ 저도 기본적으로 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 자연스레 언어적 호기심으로 이어졌어요. 이번에는 노출 기회가 적었던 스칸디나비아 4개국의 관용구를 하나씩 읽다 보니 그 지역 특유의 은근히 유머러스하면서도 절제된 정서나 표정이 더 잘 이해되더라고요.
영대 아까 ‘손목의 호밀’처럼 신기한 표현 하나만 더 알려주세요.
현모 ㅋㅋㅋㅋ 역시 언어를 좋아하는 영대 님! 그럼 퀴즈 형식으로 문제 하나 낼게요. 핀란드에서 쓰는 ‘벙어리장갑이 곧게 펴져 있다’는 무슨 뜻일까요?
영대 벙어리장갑이 펴졌다고요? 우와, 일단 ‘벙어리장갑’이라는 말부터가 생소하다. 한국은 장갑 끼는 문화가 아니라서 장갑이 속담에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잖아요. ㅋㅋㅋ
현모 그죠. 한국에 장갑이 등장한 것도 아마 개화기 때일 테고, 그 전에는 딱히 뭐로 손을 보호했는지 모르겠네요.
영대 아, 그럼 장갑이 쭈글쭈글하지 않다는 건 뭔가 깔끔하다는 건가?
현모 ㅋㅋㅋ 아니에요.
영대 아!! 답답하던 문제가 속 시원히 해결됐다?!
현모 아앗…. 아닙니다. 빨리 해결해보세요! ㅋㅋㅋㅋ 근데 오답들을 듣는 것도 재미나네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활동이군요. ㅋㅋ
영대 인물의 성격에 관한 건가요? 아님, 상황을 묘사하는 건가요? 뭐지 뭐지? ;;;;
현모 상황에 가까워요. 힌트를 드리자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말할 수 있어요. 옆 사람은 장갑이 접혀 있는데, 이 사람은 장갑이 똑바로 펴져 있다는 식으로요.
영대 아하! 남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행운이 나에게 일어났다?
현모 크아~~ 땡! 어려워하시는 걸 보니 ‘장갑’이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모티프인 건 확실하군요. ㅋㅋㅋㅋ
영대 알겠다, 알겠다! 바쁜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장갑에 주름 하나가 없는 거지!
현모 끼야, 근접했어요!! 쫌만 바꿔보세요!!
영대 아아, 신세가 나아졌다! 편해졌다!
현모 아닌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뉘앙스예요.
영대 하는 일이 없이 한가하다~, 그러니까 한량이다! 게으름 피운다!
현모 ㅋㅋㅋ 이렇게나 열정적으로 맞히실 줄이야. 약간 팀 프로젝트를 한다고 가정해보세요.
영대 알았다. 남들은 열심히 노력하는데 너는 손 놓고 있다!
현모 으하하, 그거예요. ㅋㅋㅋㅋ 남들은 뼈 빠지게 맡은 일을 수행하는데, 혼자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무임승차한다는 개념이에요. 애초에 손가락장갑이 아니라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었다는 것도 일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핀란드식 관용구랍니다.
영대 ㅋㅋㅋㅋ 재미나네요. 우리 애들한테도 맞혀보라고 해봐야겠다. ㅋㅋ
현모 더 내드릴 수도 있지만, 나머지는 책으로 직접 확인하시는 걸로.
영대 아 예. 아무런 사전지식도 필요 없고 피차 백지 상태에서 추론하는 거라 부담도 없는 데다 틀려도 기분 나쁘지 않아 좋네요.
현모 나중에 핀란드 친구를 만나면 써먹어보세요.
영대 언제쯤 북유럽을 직접 가볼 수 있을까나…. 솔직히 추운 지방이 제 스타일이거든요. 현모 님은 가보셨어요?
북유럽 말은 간결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은 핀란드 헬싱키. [GETTYIMAGES]
영대 아니, 언제요?? 휘바휘바 맙소사! 저도 모르게요?
현모 일부러 비밀로 한 게 아니라 이탈리아 가는 길에 딱 하루 들렀어요. 놀랍게도 극과 극을 오가는 체험이었답니다.
영대 날씨 때문에요?
현모 그것도 맞지만, 소리부터 확연히 차이가 났어요. 누군가 제 눈을 가린 채 데려갔어도 사운드만 듣고 어딘지 알겠더라고요. 헬싱키는 정말 조용했고, 나폴리는 공항에 딱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온갖 차 소리에 사람 소리치는 소리에 왁자지껄, 시끌벅적해서 고막부터 바로 반응하던데요.
영대 하필 이탈리아 중에서도 나폴리였으니 분위기가 더욱 정반대였겠네요.
현모 도시마다 시각적으로만 다른 게 아니라, 온도부터 냄새, 맛, 소리까지 모든 게 다 다르기 때문에 여행이 주는 오감적 체험이 정말 짜릿하고 대체하기도 힘든 거 같아요.
영대 그래서 또 어딜 가시게요? 현모 님 스마트폰 GPS는 늘 열일 중이겠어요.
현모 다음 주엔 미국 가요.
영대 네? 여행을 또 가요?
현모 놀러가는 거 아니에요! 엄연한 출장이라고요.
영대 부럽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현모 이야기보따리 한가득 챙겨 올게요.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