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고래아목에 속하는 혹등고래. [GETTYIMAGES]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고래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사진 제공 · ENA]
고래 개체수 급격히 감소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 대왕고래. [GETTYIMAGES]
물고기뿐 아니라 포유동물까지 잡아먹는 범고래. [GETTYIMAGES]
최근 고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인류에게 큰 위협인 코로나19로 세상에 적막이 흐르자, 멸종 위기에 처했던 암컷 범고래 3마리가 캐나다 인근 해역에서 임신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1970년대에는 100마리 가까운 숫자가 살고 있었지만, 현재는 74마리만 남은 범고래 개체수는 매년 더 줄고 있다. 어선과 충돌하거나 해양오염으로 사망하기도 하고, 먹이가 줄어들어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새끼 고래의 사망률이 40%에 달하는 현시점에서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로 회복된 해양 생태계
남방참고래(남방긴수염고래)가 50년 만에 남극으로 돌아왔다는 소식도 있다. 이들은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큰 고래로, 수영 속도가 워낙 빨라 포경을 잘 피해왔지만 발달하는 사냥 기술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1905년부터 포경이 금지되기 직전까지 남방참고래는 남반구에서 매년 1만 마리씩 잡혀 72만 마리가량이 사라지고 2000마리 정도만 살아남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던 남방참고래마저 남극을 다 떠났다. 다행히 최근 150마리에 달하는 남방참고래가 크릴 떼를 삼키고 수증기를 허공으로 뿜어내는 장관이 BBC 자연다큐멘터리 촬영팀의 드론에 담겼다. 이것은 남극의 해양 생태계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다. 잃어버린 친구를 되찾은 상황에 비할 수 있을 만큼 매우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사실 고래가 늘어나는 현상은 지구온난화와 아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지구 온도를 적당히 올리는 온실효과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온실가스로 인해 온실효과가 과도해지면 지구의 평균 온도가 상승하는 지구온난화가 발생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충분히 줄이지 않을 경우 50년 안에 세계 인구 3분의 1에 해당하는 35억 명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과 맞먹는 험난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탄소중립 캠페인이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또한 제품 생산부터 폐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등 대책들도 제시되고 있다.
고래가 사냥을 당해 죽으면 고래 몸속에 있는 많은 양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빠져나와 지구온난화에 악영향을 미친다. [뉴시스]
기후위기에 도움을 주는 고래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절하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하다. 온실가스 중에서 가장 조절하기 좋은 것이 바로 이산화탄소다. 사실 온실가스 효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체는 수증기다. 온실가스와 관련된 주요 4대 기체의 기여도 비율은 수증기 72%, 이산화탄소 9%, 메테인 4%, 그리고 오존 3%다. 다만 대기 내 수증기량은 인간이 배출하는 양이 아니라 주로 기온에 의해 조절된다. 수증기는 이산화탄소와 달리 대기 잔류 기간이 10일 정도밖에 안 되고 대부분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장기적인 온실효과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인위적인 수증기의 영향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다음으로 많은 기여를 하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우선으로 조절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경이롭게도 고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석연료를 태우면 대량으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가 바다를 산성화화기 때문에 육지 생명체뿐 아니라 바닷속 생명체들의 생존도 위협받는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살아가면서 몸속에 이산화탄소를 조금씩 축적한다. 고래는 워낙 몸집이 크다 보니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보다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체내에 저장한다. 고래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저장하는 양은 연간 몇 톤이 넘는다. 나무 한 그루가 아무리 많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해도 최대치가 22㎏ 정도밖에 안 되는 상황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특히 체내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대왕고래 한 마리는 평생 이산화탄소를 평균 33t가량 흡수하는데, 시간이 흘러 바닷속에서 자연사하면 그대로 몸속에 탄소를 수백 년간 가둔 채 심해를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사냥으로 고래를 죽이면 대량의 탄소가 공기 중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지난 100년간 포경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1억t 이상으로 추정된다. 포경은 고래 개체수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매우 부정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온실가스를 퍼뜨려 지구 환경 자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지독한 행위다.
플랑크톤 영양 공급처, 고래 배설물
고래는 단순히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능력만 있는 게 아니다. 고래 배설물에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엄청난 양의 철이 포함돼 있다. 같은 양의 바닷물과 비교해보면 고래 배설물에는 철 성분이 무려 1000배나 많다. 다른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생산하는 고마운 존재다. 또 동물성 플랑크톤의 먹이가 된다.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할 수 있다. 식물성 플랑크톤에 철 성분을 충분히 공급해 더 많이 자랄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쇳가루 등을 남극해 같은 극지방에 뿌리면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다시 고래가 등장한다. 고래 배설물에 철 성분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 듬직한 녀석들은 망망대해를 누비며 먹이를 먹고 배설한다. 즉 고래는 환경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철 성분을 식물성 플랑크톤에 공급하는 최적의 생명체인 것이다.
고래를 늘리는 건 단순히 고래를 위해서가 아니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인간이 지구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이기적 관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고래도 조금이나마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인간이 고래에게 대단한 은혜를 베푼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래 개체수가 지속적으로 회복돼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새로운 해결사로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인간이 없었다면 훨씬 행복했을 고래들의 생존을 응원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