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에서 촬영한 청딱따구리.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딱. 딱. 딱. 딱.
딱따구리가 청아하게 나무를 쪼고 있다. 검은 슈트를 챙겨 입은, 엄숙한 표정의 정치인들 머리 위로 높게 날갯짓도 한다. 꽁지깃이 단단하기로 이름난 청딱따구리가 그 주인공이다. 녀석들은 다리는 짧지만 힘이 세고 발톱이 날카롭다. 순국선열이 잠든 이곳은 녀석들의 낙원이다.
1952년 10월12일 양양지구에서 전사한 육군 병장 김학선 씨의 묘비(21321) 위엔 오색딱따구리가 앉아 쉬고 있다. 녀석의 아래꼬리덮깃은 진홍색, 위꼬리덮깃은 광택이 나는 검은색. 짝짓기(5~7월)를 끝낸 요즘엔 가족끼리 모여 사는데, 현충원 숲에선 ‘아기’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녀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 대표적 텃새 … 딱딱 나무 쪼는 소리로 구별
내 오래된 기억 속의 현충원은 ‘무서운’ 곳이었다. 어린이에게 ‘조국’과 ‘충성’의 의미를 맹목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장이었다. 무덤이 종횡으로 나란한, 그저 무겁고 위압적인 장소였다. 나무줄기를 ‘딱딱’ 두드려 긴 혀로 그 속의 유충을 잡아먹는 딱따구리는 쳐다볼 겨를도 없었다.
한자로 ‘탁목조(啄木鳥)’인 딱따구리는 텃새다. 그중에서도 청딱따구리는 한국과 일본에만 산다. 청딱따구리가 현충원 숲에서 나무줄기에 수직으로 몸을 붙이고 먹이를 찾는 모습이 분주해 보인다. 벌레를 찾아 오르다 나무 꼭대기에 닿으면, 다른 나무 줄기로 잽싸게 날아간다.
딱따구리를 오랫동안 올려다본 다음 충혼탑(忠魂塔)으로 향했다. 영현승천상(英顯昇天像) 주변에 새겨진, 어느 곳의 뉘인지 모를 전사자들의 이름을 소리내어 읽어봤다. 나보다 젊은 모습의, 빛바랜 사진 속의 그들은 6·25전쟁 중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4500위의 전사자다. 울컥~ 울컥~, 가슴이 저려온다.
현충원은 5만4000여 위의 유해가 안장된 국립묘지인 동시에 키 높은 나무로 가득한 장대한 숲이다. 여의도공원의 7배에 이르는 43만2500평 터에 소나무, 처진벚나무, 양버들, 산딸나무 등 100여 종의 수목이 어우러져 있다. 굵은 나무 숲 사이로 내려다본 한강의 풍광은 말 그대로 절경이다.
먹이를 물고 있는 오색딱따구리.
현충원 숲이 미국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처럼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호흡하는 ‘호국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애국(愛國)을 가르치고 배우면서도 자연을 친구 삼아 쉴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딱따구리도, 김학선 씨도 양복쟁이 정치인보다 ‘우리’를 더 기다릴 것 같다.
현충원 숲은 하절기(3~10월)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된다. 봄과 여름에는 숲 냄새 가득한 오솔길이, 가을이면 오색단풍이 뒹구는 낙엽밭이, 겨울엔 들짐승 발자국만 찍힌 처녀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딱따구리와 ‘놀려면’ 아침 일찍 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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