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혀에 와닿는 맛은 달콤합니다. 과일과 초콜릿향이 나는 것으로 봐서 미국산 오크통을 쓴 것 같군요. 목으로 넘길 때는 토탄향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바다의 짠맛도 입안에 감돌죠?”
스카치위스키에 이렇게 다양한 풍미가 있었나. 대한민국 남성에게 위스키란 12년산이든 30년산이든, 맥주와 일정 비율로 섞어 ‘원샷’하는 음료가 아니었나. 만난 지 몇 분이면 ‘형’ ‘아우’ 할 수 있는 남성만의 호기로운 세계와 넥타이 풀어헤친 가무의 열락으로 인도하는 ‘묘약’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원시부족 사이에서 이뤄지는 선물의 ‘증여-교환’으로 변치 않는 사회 구조를 파악하고자 했다지만, 위스키의 증여 및 교환, 소비 흐름을 분석한다면 한국 사회의 ‘갑’과 ‘을’, 모든 조직의 서열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한국에서 위스키는 어쩌면 갑과 을 서열로 이뤄진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윤활유’일지도 모르겠다. 을은 늘 갑에게 위스키를 선물하고, 민원과 청탁을 섞어 ‘폭탄’을 제조한다. 흔히 병에 붙은 라벨의 ‘숙성연도’는 갑의 지위와 권력에 비례한다.
소년원을 들락거린 불우한 삶
그러나 영국의 거장 켄 로치가 들고 온 위스키는 풍미도, 의미도 대한민국 남성이 마시던 술과는 좀 다르다. 영화 ‘앤젤스 셰어 : 천사를 위한 위스키’(‘앤젤스 셰어’)는 이런저런 사고를 치고 잡혀 들어온 잡범들에게 형을 선고하는 영국의 약식재판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떤 이들이 있을까. 만취 상태로 선로에 뛰어들었다 잡힌, 판사가 이르기를 “멍청함과 행운을 반반씩 갖고 태어난 인물”인 청년 앨버트(게리 메이틀랜드 분). 그런가 하면 거리에 있는 유명한 조각상에 올라타 풍기문란죄로 잡힌, 허우대 멀쩡한 남자 라이노(윌리엄 루앤 분)도 경범죄자 가운데 한 명이다. 또 손버릇 안 좋은 여자인 모(재스민 리긴스 분)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앵무새를 훔치다 걸렸다.
20대 초반쯤인 주인공 로비(폴 브래니건 분)도 이들 무리에 섞여 판사 앞에 서 있다. 죄목은 폭행. 그는 감옥에 들락거린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불우하게 살았으며, 반복되는 폭행과 약물복용으로 소년원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죄질을 고려하면 마땅히 감옥행이지만, 판사는 로비에게 안정된 관계의 여자친구가 있으며 그녀가 임신한 상황을 감안해 다른 이들과 함께 사회봉사를 명령한다.
로비와 앨버트, 라이노, 모는 모두 글래스고의 사회봉사센터 직원 해리(존 헨쇼 분)의 관리 및 감독 하에 사회봉사 명령을 수행한다. 그 와중에도 로비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주위의 자극으로 끊임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지만, 마침 여자친구가 출산한 아들 얼굴을 보며 자신의 불우한 삶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사회봉사센터의 나이 지긋한 직원인 해리는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로비의 새 출발을 돕는다. 그러던 중 위스키 애호가인 해리는 자신이 맡은 청년 4명을 데리고 위스키 증류공장을 방문한다. 이곳에서 로비는 자신이 위스키 향과 맛을 감별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음을 깨닫는다. 함께 사회봉사를 하는 앨버트, 라이노, 모와 위스키 시음행사에 간 로비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세계 최고의 위스키 경매행사가 곧 열릴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비와 세 친구는 일생일대의 인생 역전을 위해 엄청난 계획을 세운다. 100만 파운드가 넘는 초고가 명품 위스키를 감쪽같이 훔치는 것이다.
‘앤젤스 셰어’는 사회 밑바닥에서 가진 것도, 내일의 기약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보듬는 인간적인 시선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농담으로 빚어내는 거장의 유머감각이 산과 들, 바다의 숨결을 호흡하며 숙성된 위스키의 풍미처럼 조화를 이루는 영화다. ‘천사의 몫’이라는 뜻의 ‘앤젤스 셰어’란 위스키나 와인을 오크통에 보관해 숙성하는 과정에서 해마다 공기 중으로 증발해 소실되는 2~3% 술을 뜻한다. 상류계층의 값비싼 취향을 위한 초고가 위스키가 이 영화에선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 그 해답이 바로 ‘천사의 몫’이라는 영화 제목에 담겨 있다.
올해로 77세인 로치 감독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타계한 후 “그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쟁입찰에 붙여 최저가에 낙찰하자”며 고인의 생전 신자유주의 정책을 꼬집는 발언으로 유명세를 탄 골수 좌파 영화인이다. ‘블루칼라 시인’이라 불리지만, 정치노선을 떠나 유럽 관객과 세계 영화감독들로부터 존경받는 거장이다.
모든 계급과 사상을 초월하는 술
스페인 내전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그린 ‘랜드 앤 프리덤’,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주노동자들의 착취 문제를 다룬 ‘자유로운 세계’, 미국 내 멕시코 출신 노동자들의 저항과 시위를 담은 ‘빵과 장미’ 등 일관되게 투쟁 역사와 하층민 및 노동자계급의 이야기에 천착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관심사와 주제의식은 여전하되 전작보다는 힘을 빼고 유머와 농담, 웃음을 더 많이 풀어놓았다.
‘앤젤스 셰어’의 시나리오 작가 폴 래버티는 ‘집필의 변’에서 작고 허름한 한 술집 종업원의 위스키, 최고급 호텔에서 친구들과 나눠 마신 한 아랍 왕자의 1억 원짜리 위스키, 인간의 코와 혀가 얼마나 놀라운 감각기관인지 일깨워주는 어느 감별사의 위스키, 가난한 스코틀랜드 청년 대부분이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스카치위스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위스키는 모든 계급과 사상을 초월한다. 시적인, 신비로운, 마케팅적인, 전문가적인, 거짓된, 속물적인… 이 모든 것이 위스키에서 만난다”고 말했다.
로치 감독은 “나는 여전히 위스키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맛을 보는 것보다 향을 맡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며 “벌컥벌컥 들이켜고 거나하게 취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술이 가진 뉘앙스를 음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위스키”라고 말했다.
자, 어떤가. 이제까지 당신이 알던 위스키와는 많이 다르지 않은가.
스카치위스키에 이렇게 다양한 풍미가 있었나. 대한민국 남성에게 위스키란 12년산이든 30년산이든, 맥주와 일정 비율로 섞어 ‘원샷’하는 음료가 아니었나. 만난 지 몇 분이면 ‘형’ ‘아우’ 할 수 있는 남성만의 호기로운 세계와 넥타이 풀어헤친 가무의 열락으로 인도하는 ‘묘약’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원시부족 사이에서 이뤄지는 선물의 ‘증여-교환’으로 변치 않는 사회 구조를 파악하고자 했다지만, 위스키의 증여 및 교환, 소비 흐름을 분석한다면 한국 사회의 ‘갑’과 ‘을’, 모든 조직의 서열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한국에서 위스키는 어쩌면 갑과 을 서열로 이뤄진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윤활유’일지도 모르겠다. 을은 늘 갑에게 위스키를 선물하고, 민원과 청탁을 섞어 ‘폭탄’을 제조한다. 흔히 병에 붙은 라벨의 ‘숙성연도’는 갑의 지위와 권력에 비례한다.
소년원을 들락거린 불우한 삶
그러나 영국의 거장 켄 로치가 들고 온 위스키는 풍미도, 의미도 대한민국 남성이 마시던 술과는 좀 다르다. 영화 ‘앤젤스 셰어 : 천사를 위한 위스키’(‘앤젤스 셰어’)는 이런저런 사고를 치고 잡혀 들어온 잡범들에게 형을 선고하는 영국의 약식재판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떤 이들이 있을까. 만취 상태로 선로에 뛰어들었다 잡힌, 판사가 이르기를 “멍청함과 행운을 반반씩 갖고 태어난 인물”인 청년 앨버트(게리 메이틀랜드 분). 그런가 하면 거리에 있는 유명한 조각상에 올라타 풍기문란죄로 잡힌, 허우대 멀쩡한 남자 라이노(윌리엄 루앤 분)도 경범죄자 가운데 한 명이다. 또 손버릇 안 좋은 여자인 모(재스민 리긴스 분)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앵무새를 훔치다 걸렸다.
20대 초반쯤인 주인공 로비(폴 브래니건 분)도 이들 무리에 섞여 판사 앞에 서 있다. 죄목은 폭행. 그는 감옥에 들락거린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불우하게 살았으며, 반복되는 폭행과 약물복용으로 소년원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죄질을 고려하면 마땅히 감옥행이지만, 판사는 로비에게 안정된 관계의 여자친구가 있으며 그녀가 임신한 상황을 감안해 다른 이들과 함께 사회봉사를 명령한다.
로비와 앨버트, 라이노, 모는 모두 글래스고의 사회봉사센터 직원 해리(존 헨쇼 분)의 관리 및 감독 하에 사회봉사 명령을 수행한다. 그 와중에도 로비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주위의 자극으로 끊임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지만, 마침 여자친구가 출산한 아들 얼굴을 보며 자신의 불우한 삶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사회봉사센터의 나이 지긋한 직원인 해리는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로비의 새 출발을 돕는다. 그러던 중 위스키 애호가인 해리는 자신이 맡은 청년 4명을 데리고 위스키 증류공장을 방문한다. 이곳에서 로비는 자신이 위스키 향과 맛을 감별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음을 깨닫는다. 함께 사회봉사를 하는 앨버트, 라이노, 모와 위스키 시음행사에 간 로비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세계 최고의 위스키 경매행사가 곧 열릴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비와 세 친구는 일생일대의 인생 역전을 위해 엄청난 계획을 세운다. 100만 파운드가 넘는 초고가 명품 위스키를 감쪽같이 훔치는 것이다.
‘앤젤스 셰어’는 사회 밑바닥에서 가진 것도, 내일의 기약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보듬는 인간적인 시선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농담으로 빚어내는 거장의 유머감각이 산과 들, 바다의 숨결을 호흡하며 숙성된 위스키의 풍미처럼 조화를 이루는 영화다. ‘천사의 몫’이라는 뜻의 ‘앤젤스 셰어’란 위스키나 와인을 오크통에 보관해 숙성하는 과정에서 해마다 공기 중으로 증발해 소실되는 2~3% 술을 뜻한다. 상류계층의 값비싼 취향을 위한 초고가 위스키가 이 영화에선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 그 해답이 바로 ‘천사의 몫’이라는 영화 제목에 담겨 있다.
올해로 77세인 로치 감독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타계한 후 “그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쟁입찰에 붙여 최저가에 낙찰하자”며 고인의 생전 신자유주의 정책을 꼬집는 발언으로 유명세를 탄 골수 좌파 영화인이다. ‘블루칼라 시인’이라 불리지만, 정치노선을 떠나 유럽 관객과 세계 영화감독들로부터 존경받는 거장이다.
모든 계급과 사상을 초월하는 술
스페인 내전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그린 ‘랜드 앤 프리덤’,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주노동자들의 착취 문제를 다룬 ‘자유로운 세계’, 미국 내 멕시코 출신 노동자들의 저항과 시위를 담은 ‘빵과 장미’ 등 일관되게 투쟁 역사와 하층민 및 노동자계급의 이야기에 천착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관심사와 주제의식은 여전하되 전작보다는 힘을 빼고 유머와 농담, 웃음을 더 많이 풀어놓았다.
‘앤젤스 셰어’의 시나리오 작가 폴 래버티는 ‘집필의 변’에서 작고 허름한 한 술집 종업원의 위스키, 최고급 호텔에서 친구들과 나눠 마신 한 아랍 왕자의 1억 원짜리 위스키, 인간의 코와 혀가 얼마나 놀라운 감각기관인지 일깨워주는 어느 감별사의 위스키, 가난한 스코틀랜드 청년 대부분이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스카치위스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위스키는 모든 계급과 사상을 초월한다. 시적인, 신비로운, 마케팅적인, 전문가적인, 거짓된, 속물적인… 이 모든 것이 위스키에서 만난다”고 말했다.
로치 감독은 “나는 여전히 위스키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맛을 보는 것보다 향을 맡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며 “벌컥벌컥 들이켜고 거나하게 취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술이 가진 뉘앙스를 음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위스키”라고 말했다.
자, 어떤가. 이제까지 당신이 알던 위스키와는 많이 다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