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치른 파키스탄 총선에서 반미(反美) 성향을 가진 나와즈 샤리프(64) 전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아프간)과 파키스탄 등지에서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 큰 차질이 생길 공산이 커졌다. 샤리프 전 총리가 현 파키스탄 정부의 친미 노선을 강하게 비난해온 데다 자신이 총리로 재임하던 1998년 미국의 강한 반대에도 핵실험을 강행한 바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5월 14일 연방하원 342석에서 여성 및 비(非)이슬람 종교 할당의석 70석을 제외한 272석 가운데 254석에 대한 개표를 마친 결과, 샤리프가 이끄는 제1 야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가 123석을 차지해 다수당이 됐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건국 후 최초 선거로 정권교체
1949년 펀자브 주의 철강 부호 아들로 태어난 샤리프 전 총리는 펀자브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다 76년 PML-N에 합류했다. 펀자브 주 재무부 장관, 주지사 등을 거쳐 90년 11월 총리가 됐으나 93년 7월 당시 굴람 이스하크 칸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그를 해임했다. 97년 2월 두 번째로 총리직에 올랐지만, 99년 10월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쿠데타로 또 실각했다. 이후 8년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2007년 9월 귀국해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현재 집권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은 2008년 총선에서 124석을 얻어 집권에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불과 31석만 얻어 PML-N에 정권을 내줬다. 크리켓 국민스타 출신인 임란 칸이 이끄는 야당 테흐리크에인사프(PTI·정의를 위한 파키스탄 운동)는 26석을 얻었다. 2008년 총선에는 불참했고, 2002년 총선에서도 불과 1석만 얻었던 PTI는 이번 선거를 통해 파키스탄의 주요 정당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PPP와 연정을 구성한 세속주의 정당 무타히다 카우미 운동(MQM)과 아와미국민당(ANP)도 각각 18석,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 이번 총선에서는 무소속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져 총 25석을 얻었다.
“테러조직과 협상도 재개”
샤리프 전 총리는 PML-N의 승리가 확실시된 5월 11일 밤 펀자브 주 라호르 소재 자택에서 지지자들에게 총선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파키스탄을 위해 다시 봉사할 기회를 주신 국민과 알라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샤리프 전 총리는 PML-N이 272석 중 과반에 해당하는 137석을 획득하지 못함에 따라 연정 구성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자택에서 무소속 후보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연정을 제의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정부 구성 동참 요청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총선은 1947년 파키스탄 건국 이래 66년 만에 선거에 의한 최초의 정권교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파키스탄은 이제까지 군부 쿠데타를 3번 겪었으며, 총리 27명이 단 한 번도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했을 정도로 정국이 불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시대 인물이자 그 자신 또한 부패와 무능으로 실각했던 샤리프 전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한 것은 2007년 폭탄테러로 숨진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이자 현 대통령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이끄는 집권 PPP의 무능에 대한 국민의 분노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현재 파키스탄의 구매력환산지수(PPP)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2900달러(약 319만 원)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 최빈국이다. 빈부격차도 심각해 국민의 20%는 하루 1~2달러로 살아간다. 전력난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대다수 도시에서는 하루 4시간 이상 전기를 쓰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와중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파키스탄 탈레반(TTP)의 테러와 민간인 공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파키스탄과 아프간 국경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TTP는 선거 유세가 본격화한 4월 이후 잇따라 테러를 자행해 현재까지 숨진 사람만 130명이 넘는다. 5월 9일에는 유수프 라자 길라니 전 총리의 아들이자 이번 선거에 입후보한 알리 하이데르가 유세 도중 TTP로 추정되는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부토 전 총리의 아들인 빌라왈 자르다리 부토는 아예 암살을 우려해 국외로 피신했을 정도다.
현 집권당의 거듭된 실정, 갈수록 심화하는 경제난, 불안한 치안 등이 샤리프 전 총리로 하여금 정권을 거저 장악하다시피 만든 셈이다.
샤리프 전 총리는 총선 사흘 전인 5월 8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총리가 되면 파키스탄과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빠지겠다”며 “미국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TTP와의 협상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9·11테러 이후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 이들에 동조하는 아프간 및 파키스탄 내 탈레반을 소탕하려고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 병사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샤리프 전 총리는 ‘정부가 미국과 협력하면서 이슬람을 배반했다’는 파키스탄 내 비판이 거세지자 재집권을 위해 공개적으로 반미 노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 “샤리프는 현실주의자”
이에 따라 내년 말로 예정된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아프간 철수에 맞춰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하려는 미국 정부의 향후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아프간과 인접한 파키스탄 남동부의 카라치 항을 통해 군사 장비를 철수할 계획이다. 원활하고 안전한 철군을 위해서는 파키스탄 정부가 TTP를 잘 통제해줘야 한다. 하지만 샤리프 정부가 선거 공약을 이유로 이 협조를 거부한다면 미군의 아프간 철군은 큰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 대신 중앙아시아를 거치는 방법을 거론하지만, 파키스탄을 거칠 때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게 문제다.
미국의 무인기(드론) 공격에도 제동이 걸릴 개연성이 높다. 미국의 드론을 활용한 테러조직 수뇌부 암살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 전략이다. 미국은 파키스탄에 드론 기지를 설치하고 아프간, 예멘 등에서 자주 소탕작전을 벌인다. 미국은 무샤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탈레반에 대해 무인기 공격을 해왔고 집권당인 PPP도 이를 사실상 묵인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민간인이나 군인들에 대한 오폭 피해가 늘어나는 와중에 반미 성향의 정권까지 들어서면서 무인기 공격을 중단할 소지가 커졌다.
다만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는 파키스탄의 열악한 경제 상황, 미국이 9·11테러 이후 파키스탄에 200억 달러(약 22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원조를 했다는 점, 샤리프 전 총재 또한 재벌 출신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반미 노선 주창은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샤리프는 현실주의자”라면서 “심각한 전력난과 실업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샤리프 전 총리의 재집권이 미국이 전력을 기울이는 아프간 정부와 아프간 내 탈레반 간 평화협상을 진전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5월 12일 “파키스탄 새 정부가 아프간 정부와 아프간 탈레반 간 협상 개시에 많은 지원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파키스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5월 14일 연방하원 342석에서 여성 및 비(非)이슬람 종교 할당의석 70석을 제외한 272석 가운데 254석에 대한 개표를 마친 결과, 샤리프가 이끄는 제1 야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가 123석을 차지해 다수당이 됐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건국 후 최초 선거로 정권교체
1949년 펀자브 주의 철강 부호 아들로 태어난 샤리프 전 총리는 펀자브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다 76년 PML-N에 합류했다. 펀자브 주 재무부 장관, 주지사 등을 거쳐 90년 11월 총리가 됐으나 93년 7월 당시 굴람 이스하크 칸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그를 해임했다. 97년 2월 두 번째로 총리직에 올랐지만, 99년 10월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쿠데타로 또 실각했다. 이후 8년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2007년 9월 귀국해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현재 집권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은 2008년 총선에서 124석을 얻어 집권에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불과 31석만 얻어 PML-N에 정권을 내줬다. 크리켓 국민스타 출신인 임란 칸이 이끄는 야당 테흐리크에인사프(PTI·정의를 위한 파키스탄 운동)는 26석을 얻었다. 2008년 총선에는 불참했고, 2002년 총선에서도 불과 1석만 얻었던 PTI는 이번 선거를 통해 파키스탄의 주요 정당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PPP와 연정을 구성한 세속주의 정당 무타히다 카우미 운동(MQM)과 아와미국민당(ANP)도 각각 18석,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 이번 총선에서는 무소속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져 총 25석을 얻었다.
“테러조직과 협상도 재개”
샤리프 전 총리는 PML-N의 승리가 확실시된 5월 11일 밤 펀자브 주 라호르 소재 자택에서 지지자들에게 총선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파키스탄을 위해 다시 봉사할 기회를 주신 국민과 알라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샤리프 전 총리는 PML-N이 272석 중 과반에 해당하는 137석을 획득하지 못함에 따라 연정 구성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자택에서 무소속 후보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연정을 제의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정부 구성 동참 요청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총선은 1947년 파키스탄 건국 이래 66년 만에 선거에 의한 최초의 정권교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파키스탄은 이제까지 군부 쿠데타를 3번 겪었으며, 총리 27명이 단 한 번도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했을 정도로 정국이 불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시대 인물이자 그 자신 또한 부패와 무능으로 실각했던 샤리프 전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한 것은 2007년 폭탄테러로 숨진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이자 현 대통령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이끄는 집권 PPP의 무능에 대한 국민의 분노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현재 파키스탄의 구매력환산지수(PPP)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2900달러(약 319만 원)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 최빈국이다. 빈부격차도 심각해 국민의 20%는 하루 1~2달러로 살아간다. 전력난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대다수 도시에서는 하루 4시간 이상 전기를 쓰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와중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파키스탄 탈레반(TTP)의 테러와 민간인 공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파키스탄과 아프간 국경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TTP는 선거 유세가 본격화한 4월 이후 잇따라 테러를 자행해 현재까지 숨진 사람만 130명이 넘는다. 5월 9일에는 유수프 라자 길라니 전 총리의 아들이자 이번 선거에 입후보한 알리 하이데르가 유세 도중 TTP로 추정되는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부토 전 총리의 아들인 빌라왈 자르다리 부토는 아예 암살을 우려해 국외로 피신했을 정도다.
현 집권당의 거듭된 실정, 갈수록 심화하는 경제난, 불안한 치안 등이 샤리프 전 총리로 하여금 정권을 거저 장악하다시피 만든 셈이다.
샤리프 전 총리는 총선 사흘 전인 5월 8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총리가 되면 파키스탄과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빠지겠다”며 “미국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TTP와의 협상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9·11테러 이후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 이들에 동조하는 아프간 및 파키스탄 내 탈레반을 소탕하려고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 병사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샤리프 전 총리는 ‘정부가 미국과 협력하면서 이슬람을 배반했다’는 파키스탄 내 비판이 거세지자 재집권을 위해 공개적으로 반미 노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 “샤리프는 현실주의자”
이에 따라 내년 말로 예정된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아프간 철수에 맞춰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하려는 미국 정부의 향후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아프간과 인접한 파키스탄 남동부의 카라치 항을 통해 군사 장비를 철수할 계획이다. 원활하고 안전한 철군을 위해서는 파키스탄 정부가 TTP를 잘 통제해줘야 한다. 하지만 샤리프 정부가 선거 공약을 이유로 이 협조를 거부한다면 미군의 아프간 철군은 큰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 대신 중앙아시아를 거치는 방법을 거론하지만, 파키스탄을 거칠 때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게 문제다.
미국의 무인기(드론) 공격에도 제동이 걸릴 개연성이 높다. 미국의 드론을 활용한 테러조직 수뇌부 암살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 전략이다. 미국은 파키스탄에 드론 기지를 설치하고 아프간, 예멘 등에서 자주 소탕작전을 벌인다. 미국은 무샤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탈레반에 대해 무인기 공격을 해왔고 집권당인 PPP도 이를 사실상 묵인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민간인이나 군인들에 대한 오폭 피해가 늘어나는 와중에 반미 성향의 정권까지 들어서면서 무인기 공격을 중단할 소지가 커졌다.
다만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는 파키스탄의 열악한 경제 상황, 미국이 9·11테러 이후 파키스탄에 200억 달러(약 22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원조를 했다는 점, 샤리프 전 총재 또한 재벌 출신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반미 노선 주창은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샤리프는 현실주의자”라면서 “심각한 전력난과 실업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샤리프 전 총리의 재집권이 미국이 전력을 기울이는 아프간 정부와 아프간 내 탈레반 간 평화협상을 진전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5월 12일 “파키스탄 새 정부가 아프간 정부와 아프간 탈레반 간 협상 개시에 많은 지원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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