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포괄적 해결
▼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데요.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959조원입니다.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1272조 원) 규모와 맞먹어요. 막대한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겁니다. 6개월 이상 연체한 사람이 345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재산은 없지만 어떻게든 살아보겠다, 빚을 갚아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분들의 가계부채를 포괄적으로 해결해드리려고 해요. 이분들에게 재기 기회도 주고, 금융회사 건전성도 높일 수 있잖아요.”
▼ 이전 정부에서 했던 서민금융과는 무엇이 다른가요.
“다중채무자를 위한 자활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돼요. 이번 기금은 전체 금융회사의 99.6%에 달하는 4169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했어요. 여러 은행에 걸친 채무자들의 부채를 종합해 정리해주는 구실을 하는 거예요. 한꺼번에 조정할 수 있죠.”
그의 말대로 이명박 정부에서 신용회복기금은 221개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지원 조건 및 대상이 자활의지와 신용등급에 따라 달랐다. 그러나 국민행복기금은 이와 관계없이 원금의 최대 50%, 기초수급자는 70%까지 감면해준다. 금융기관과 지원 대상 폭이 확 넓어졌다.
▼ 성실하게 채무를 상환하는 사람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됩니다.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글쎄요. 도덕적 해이는 재산 등 상환능력이 있으면서도 빚을 갚지 않을 경우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 기금의 지원 대상은 재산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가계부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절박한 사람들이에요. 자활의지가 있는 서민을 구제해주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의무 아닌가요? 개인 부채를 국가가 갚아주는 게 아니라, 빚 갚을 의지가 있는 채무자에게 금융회사가 공동으로 채무조정을 해줘 능력껏 갚게 해주는 거죠. 도덕적 해이 논란을 막으려고 2월 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자로 제한했고요.”
그는 테이블에 놓인 자료를 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4월 22~30일 가접수 신청자를 분석해봤는데요, 연소득 2000만 원 미만 채무자가 전체 신청자의 76.3%였어요. 채무액도 평균 1350만 원이었고, 500만 원 미만 소액채무자도 27.4%였어요. 생각해보세요. 그분들은 은행도 이용하지 못해요. 몇 푼이라도 갚게 해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시켜야죠. 물론 전액 감면해줄 수도 있지만, 금융질서 측면에서 보면 절반은 페널티를 준 거고요.”
‘행복잡 프로그램’ 통해 취업 알선
▼ 국민행복기금이 최선이라면 그동안은 왜 하지 않았나요.
4월 1일 서울 삼성동 캠코 별관에서 열린 ‘국민행복기금 성공결의대회’에서 장영철 캠코 사장과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왼쪽). 국민행복기금 상담 창구에서 직접 상담하는 장영철 사장.
▼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빚에서 탈출할 사람이 어느 정도일 거라 예상하나요.
“대략 345만 명을 국민행복기금 대상자로 보는데, 금융위원회에서는 32만 명 정도가 채무재조정할 걸로 봐요. 대략 10%? 저출산 사회에서 이런 분들을 경제활동에 다시 참여시키는 것도 중요한 문제예요.”
▼ 빚 탕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서민들이 자립해서 재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렇죠. 단순 지원보다 채무자의 소득을 창출하면서 가계부채를 갚을 수 있게 해야 해요. 이미 신용회복 중인 경우 캠코의 ‘행복잡(Job)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을 알선해주고, 성실 채무상환자에게는 1인당 1000만 원 한도의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해 경제적 자활을 추진하고 있어요. 행복잡을 통해 1732명이 새 일자리를 얻었고, 3만7688명이 생활자금을 지원받았어요. 그와 동시에 대출 이자를 상환하는 분들에게는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게 바꿔드림론을 지원하고 있고요.”
그는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피노키오 얘기를 했다. 피노키오가 유혹에 넘어가 이른바 ‘행복섬’으로 갔다가 그곳이 고통의 섬인 걸 깨닫고 탈출하는데, 채무자들 역시 거저 주는 것처럼 광고하는 대출회사 마케팅에 넘어가 대출을 받았다가 결국 채무의 고통에 빠졌다는 비유였다. 피노키오가 그랬던 것처럼, 빚의 구렁텅이에서 악착같이 빠져나오려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줘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캠코가 서민의 제페토 할아버지가 되길 바라는 눈치다. 피노키오의 불탄 다리를 다시 만들어주고, 자신의 옷을 팔아 피노키오를 학교에 보낸 마음씨 따뜻한 제페토 할아버지 말이다. 그래서 할 일이 많아 보였다.
“나는 취임 후 2가지는 꼭 하고 싶었어요. 부실정리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서민경제를 활성화하고, 캠코의 부실채권 정리 노하우를 해외에 알리겠다고 마음먹었죠. 사실 부실정리를 잘하는 것은 금융계에선 고도의 하이테크 산업입니다. 금융선진국과 견줘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금융 분야는 캠코와 예금보험공사 정도예요. 당연히 알려야죠. 캠코도 자세히 보면 알릴 게 많아요.”
부실채권 정리 노하우 공유
장 사장은 기획예산처와 미래기획위원회를 거쳐 2010년 11월 캠코 수장이 됐다. 흔히 캠코 사장은 이른바 ‘모피아’(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가 조용히 자리보전하다 떠나는 자리였지만,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많은 일을 했다. 이는 캠코 직원들도 인정한다.
▼ 15개 시도와 업무협약을 맺고 서민금융을 알린 것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는데요.
“네, 맞아요. 취약계층은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잘 보지 않아요. 가장 필요하지만 정작 서민금융제도에 대해선 잘 모르죠. 그래서 고심하다가 각 시도지사들을 만났어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체계를 활용하고 싶다’고 했죠. 사회복지사들이 취약계층을 만날 때 직접 서민금융을 소개해달라는 거죠. 시도지사 역시 선출직인 만큼 관심이 있으리라 생각했고요. 실제 각 시도와 협약을 체결한 2011년 이후 바꿔드림론은 280% 이상 확대됐어요. 확실하게 전파된 거죠.”
이 사업은 지난해 감사원 국민편익 분야 모범 사례로 선정돼 감사원 표창과 대통령, 국무총리 표창을 잇따라 받았다. 그는 또 지난해에는 영문 명칭인 KAMCO를 국문 캠코로 바꿔 공사 이미지를 새롭게 변신시켰다.
▼ 50년 부실자산 정리 노하우를 담은 ‘캠코 성공스토리’ 1, 2권을 냈는데요.
“부실기업 인수합병(M·A) 1조를 달성한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각 사례별로 어떻게 정리했는지 남기지 않으면 노하우는 사라집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때 영문으로 번역해 참가국 관계자들에게 나눠줬더니 다들 놀라워하더라고요. 중국과 베트남의 부실자산 정리도 우리가 컨설팅해줬어요.”
▼ 국제포럼을 만든 것도 그러한 자신감이 바탕이 됐겠군요.
“네. 5월 27, 28일 이틀간 국제공공자산관리기구포럼(IPAF) 창립 및 1회 연차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했어요. 캠코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주도로 부실채권 정리 노하우를 공유하고 아시아 역내 경제안전망 강화 방안을 찾아볼 겁니다. 국내 공기업이 주도해 설립한 국제행사로는 처음인데 중국, 베트남, 태국, 미얀마, 카자흐스탄, 몽골 등이 참여해요. 지난해 초부터 작업했어요. 한국의 ‘신장’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알려야죠.”
▼ 신장요?
“캠코는 1962년 국내 최초 부실채권정리기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50년 넘게 부실채권 정리, 신용회복 지원, 국·공유재산 매각 관리 등을 담당하는, 한국 금융의 신장 같은 구실을 하고 있어요. 신장이 노폐물을 잘 걸러줘야 심장과 혈관이 튼튼하게 유지되잖아요? 흔히 캠코를 ‘시체 처리반’이라고 하지만 국가 경제의 4대자산(금융자산, 기업자산, 가계자산, 공공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없어서는 안 될 조직입니다.”
4월 2일 장영철 캠코 사장이 부산지역 대학생 100명으로 구성된 국민행복기금 홍보 서포터스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 사장 왼쪽은 허남식 부산광역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