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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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을 좀먹는 자본주의 병폐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3-05-20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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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심을 좀먹는 자본주의 병폐

    조엘 바칸 지음/ 이창신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356쪽/ 1만4000원

    가정의 달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네트워크 발달로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에 노출돼 있다. 그러다 보니 눈만 뜨면 꿈과 희망을 키워야 할 동심에 온갖 유혹이 달려든다. 어린이를 겨냥한 시장이 해마다 몸집을 키우는 것이 그 증거다. 1990년 약 500억 달러이던 시장 규모가 지금은 1조 달러에 이른다. 기업 처지에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만큼 가족 간 눈 맞추고 대화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미국 카이저가족재단이 발간한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8~18세 아이 및 청소년은 하루 평균 7시간 38분을 오락용 미디어와 함께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에는 8~18세 아이 및 청소년의 39%가 휴대전화를 소유했지만, 2010년 66%로 뛰었다. 같은 기간 아이패드와 MP3 플레이어를 가진 8~18세 아이 및 청소년은 18%에서 76%로 늘었다. 이들이 휴대전화로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을 하며, 음악을 듣는 시간은 하루 평균 49분이라고 한다. 한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알고 보면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부모로서 선택을 하지만 주변 여건 탓에 자발적 선택이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갈수록 기업의 판단과 행동, 즉 ‘그들의 선택’으로 결정되거나 적어도 그것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세계적 법학자인 저자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농락하는 기업의 탐욕스러운 경제활동 실체를 고발하면서 “모두가 나서서 이런 상황을 바꾸자”고 말한다. “어린 시절은 자기만의 인격을 개발하고, 개인으로서 발전하는 가장 귀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해악을 끼치는 것은 선정적, 폭력적 콘텐츠다. 총을 난사하고 사람을 때려눕히며 ‘한 방’으로 인생역전을 부추기는 게임이 넘쳐난다. 이런 게임은 중독성도 강해 자제력과 판단력이 약한 아이는 ‘게임폐인’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미디어 속 폭력도 갈수록 증가하고 격렬해진다. 그만큼 아이들은 폭력을 매력적이고 멋진 분쟁 해결사쯤으로 여긴다. 또 정의와 자유는 총이나 칼, 또는 폭탄으로 달성된다는 인식도 자리 잡는다.



    “일반적으로 아이 몸에서는 부모보다 7배 많은 화학물질이 검출된다. 화학물질은 몸에 쌓이므로 대를 거듭할수록 그 숫자는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도 왜 산업용 화학물질 8만6000종 중 안전검사를 필한 물질이 200종에 그칠까. 위험성이 밝혀지지 않으면 일단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사회적 인식도 문제다.”

    환경오염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주위에 아이들 건강을 위협하는 제품이 한둘이 아니다. 엄격하게 규제하는 미국에서도 옷이나 가방 등 규정을 어긴 제품이 슬그머니 시장에 나온다. 미국연방소비재안전위원회는 납이 기준치 이상 들어간 제품을 매달 수십 건씩 발표해 회수 조치한다. 최근엔 실내 하키 세트, 어린이용 팔찌, 바람에 딸랑이는 장난감, 동물과 사람 모형, 운동용 공, 공룡 세트, 장난감 트럭과 자동차, 팅커벨 마술 지팡이 등이 안전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고 키워주려는 부모 열망은 ‘경제적 가치’가 우선시되면서 점차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여기에 1980년 이후 시장의 자유가 공공의 규제를 압도하면서 어린이 보호 제도는 철폐되다시피 했다. 오늘날 기업들의 어린이 마케팅은 아이들 감성, 남을 쉽게 믿는 성향, 경험 부족을 절묘하게 이용한다. 정부가 규제하려 해도 ‘이윤 추구’를 앞세운 기업이 법적, 정치적 저항을 통해 무력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 아이가 보고 듣고 만지고 먹는 모든 것의 유해성을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할까. 저자는 “어린이 산업에서는 사후 조치에 우선인 현재의 규제 제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전 예방을 전제로 하는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어른이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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