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도 수고했어.”
하면서 서상국이 봉투를 내밀었다. 월급봉투. 이번 달부터 정식 사원 월급을 받지만 계산은 뻔하다. 봉투를 받은 이애주가 회의실로 들어가 명세표를 보았더니 세금과 보험료 다 떼고 147만5000원이다. 대부(代父) 오종택이 월급 절반을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항상’ 출판사에 입사했지만 빈말이다. 월급은 다 서상국이 준다. 자, 이제부터는 이것으로 생활해야 한다. 편집부에 있는 경력 4년차 언니 박명옥의 월급이 180만 원 정도였으니 평균 이 수준으로 봐야 한다. 조금 큰 출판사나 대기업 계열은 200만 원이 넘는다지만 그건 딴 나라 이야기 같다. 사무실에 들어섰더니 퇴근 준비를 하던 박명옥이 이애주에게 말했다.
“나, 내일 작가 만나고 11시에 출근할 테니까 표지 도안 받아놓아.”
“네, 언니.”
사장까지 직원 네 명인 출판사여서 명함은 편집부 이애주라고 박았지만 온갖 잡일을 다한다. 교정, 표지 도안 관리와 인쇄에, 바쁠 때는 총판과 영업까지 뛰어야 한다. 출판사 일은 다 배울 수 있다고 서상국이 말했지만 출판사 사장을 할 생각은 언감생심인 터라 힘들기만 하다.
자, 오후 7시다. 5평짜리 텅 빈 사무실에 앉은 이애주는 실업자 친구를 불러서 소주나 한잔할까 궁리했다. 애인은 없다. 감동도 생기지 않고, 가만 보니까 그놈은 오로지 나를 돈 안 내고 뛰는 섹스 대용품으로 여기는 것 같아 끊어버렸다. 한 번 뛰는 데 10만 원씩 준다면 만나주겠지만 체면이 있지.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숨을 들이쉰 이애주가 전화기를 들었다. 인쇄소에서 외상값 달라고 걸려온 전화일 가능성 75퍼센트.
“네, 항상 출판사입니다.”
“거기, 이애주 씨 있습니까?”
사내 목소리다.
“네, 저인데요.”
“여긴 청와대입니다.”
“어디요?”
해놓고 이애주는 분주히 생각했다. 이 근처 외상값 깔린 중국집인가 보다. 사장이나 경리 미스 오가 알겠지. 그때 사내가 다시 말했다.
“청와대 의전비서실 김영범입니다.”
중국집은 아닌가 보다. 이맛살을 찌푸린 이애주가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잘못 걸려온 전화겠지.
“여긴 항상 출판사인데요. 저는 편집부 이애주고요.”
“대부가 인테리어 사업을 하시는 오종택 씨 맞지요?”
그 순간 이애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부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혹시 나를 보증인으로 삼아 돈을 빌리지는 않았겠지. 최근 그런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애주는 대답했다.
“네, 맞는데요.”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십니까? 대통령께서 세대결연에 대해 궁금해하시거든요. 그래서 우연히 선정된 사람이 이애주 씨입니다. 시간을 내주시면 정말 고맙겠다고 하셨습니다.”
# 삼청동에는 오밀조밀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다. 몰라서 그렇지, 이애주는 데이트하는 데 인사동이나 명동, 홍대 앞보다 이곳이 더 나았다. 오후 8시 25분. 이애주가 삼청동 골목의 ‘열정’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5평쯤 규모의 카페 안에는 손님이 두 테이블뿐이다. 출입구 쪽 테이블에는 카페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정장 차림의 아저씨 셋이 앉았고 안쪽에 아, 대통령이 앉았다. 이명박이. 지금은 사석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이명박 대통령’ 또는 ‘대통령님’ 또는 ‘이 대통령’이나 ‘대통령’으로 부르는 국민은 없다. 세우리당 당원이나 그 가족, 지지자는 빼놓고 말이다. 대부분 ‘이명박이’로 부른다. 악감을 가진 인간들은 별별 이름으로 다 부르지만 요즘은 엄청 나아졌다.
“어, 왔어?”
다가선 이애주가 굽실 허리를 꺾고 절하자 이명박이 활짝 웃으며 반긴다. 캐주얼 양복에 노타이셔츠 차림이어서 젊어 보인다.
“어, 앉아. 놀랐지?”
앞자리를 가리키며 이명박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내가 시장이나 사람 많은 데 가서 이야기라도 하면 쇼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말이야. 하긴 솔직히 말해 그런 곳에서는 제대로 이야기를 못 나누지. 쇼지 쇼야.”
그때 예쁘장한 중년여자가 다가와 식탁에 소면이 따로 놓인 낚지볶음, 골뱅이무침, 파전에다 노가리 안주를 놓는다. 이애주는 숨을 들이쉬었다. 노가리만 빼고 자신이 좋아하는 안주인 것이다. 잠깐 돌아갔던 아줌마가 이제는 소주와 막걸리를 따로 가져왔다. 이것도 이애주 스타일이다. 이애주의 표정을 본 이명박이 빙긋 웃었다.
“놀란 것 같군. 대통령쯤 되면 이애주 씨가 좋아하는 안주가 뭔지, 술은 뭘 좋아하는지 정도는 안다고. 국가정보원이 폼으로 있는 줄 알아?”
술병을 내려놓는 아줌마가 그 말을 듣고도 웃지 않았으므로 이애주는 쫄았다.
# 오늘은 서상국이 술을 산다고 해서 오종택은 홍대 앞 삼겹살집으로 장소를 정했다. 단골인 데다 둘이 소주 두 병에 삼겹살 2인분이면 2만 원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서상국이 술 두 병을 더 시키는 바람에 고기도 2인분이 더 들어갔다. 불 꺼진 프라이팬이 너무 썰렁하기도 했다.
“씨벌, 희망이 없어.”
소주잔을 든 서상국이 붉어진 눈으로 오종택을 보았다.
“나만 그런 게 아녀. 다 그려. 이애주 세대나 30대, 40대, 50대까지.”
둘은 50대 중반이니 그중 마지막이다. 한 모금에 소주를 삼킨 서상국이 말을 이었다.
“요즘 이명박이가 이곳저곳을 청소허고 길 메우는 바람에 쫌 새바람이 부는 것 같지만, 아녀.”
머리까지 내저은 서상국이 제 잔에 술을 따르며 말한다.
“근본적으로다가 고쳐야 혀. 말허자먼….”
“야, 시끄럽다.”
새로 가져온 삼겹살을 뒤적거리면서 오종택이 잇는다.
“씨벌놈아. 그려도 우리는 딴놈들허고 비교허면 행복헌 편이다. 우리 동창들은 벌써 다 퇴직허고 논다.”
맞는 말이다. 56세인 그들의 동창들은 다 퇴직했다. 직장에 다니는 놈들은 교직자나 공무원 또는 회사를 운영하는 몇몇으로 극히 소수다. 그때 서상국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그거여. 그것이 한국 사회를 침체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란 말이다.”
오종택은 말 거들기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익은 삼겹살을 씹었고, 서상국이 말을 이었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까지 이어오던 경제부흥, 하면 된다, 수출 100억 달러, 1000억 달러 달성, 국민소득 1000달러에서 1만 달러, 2만 달러 성장.”
서상국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주위의 시선이 모였다. 그러나 서상국은 말을 잇는다.
“그렇게 30여 년을 지내오다가 인자는 지쳐간단 말이다. 자, 50대인 우리뿐 아니라 아래쪽 40, 30, 20대헌티까지 이 현상이 번지고 있다. 20대는 취업,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지치고, 30대는 생활에 대한 불안으로 지치고, 40대는 눈앞에 닥쳐올 정년과 가족의 앞날 걱정으로 지친다. 그리고 우리는….”
머리를 든 서상국은 주위 테이블이 조용해진 것을 알았다. 좌, 우, 앞쪽의 테이블에 공교롭게도 20대, 30대, 40대 사내들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모두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서상국이 잠깐 입을 다물었더니 시선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서상국이 길게 숨을 뱉었다.
“이명박이가 이것만 해결허면 위대헌 대통령이 될 것이다.”
# “희망이야.”
청와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불쑥 이명박이 말했으므로 홍보수석 겸 대변인 이동관은 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뒷자리에 앉은 이명박은 정면에다 시선을 준 채 말을 잇는다.
“국민에게 희망이 필요하다고.”
조금 전 이명박은 이애주와 헤어졌다. 이애주는 소주에 막걸리를 타서 열 잔도 넘게 마셨지만 이명박은 딱 두 잔 마셨다. 카페 앞에서 기다리던 이동관은 이명박이 노가리를 몇 조각 먹었는지도 다 보고받은 것이다. 그때 이명박의 시선이 이동관에게 옮겨졌다.
“우리가 젊었을 때와 다르게 사회 전반에 의욕과 기백, 열정이 보이지를 않아. 불만과 싫증, 좌절감이 덮고 있는 이유는 딱 하나,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한마디씩 씹어뱉듯이 말한 이명박이 등받이에 등을 붙이더니 길게 숨을 뱉었다. 다시 시선이 앞쪽으로 옮겨져 있다.
“자,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은가?”
혼잣소리다. 그러나 억양이 절박했으므로 이동관은 입안의 침을 삼켰다.
# 다음 날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이영희가 보고했다.
“공안사범 단속으로 일자리가 3만5000개 증가했습니다. 이것으로 취업률이 단숨에 1퍼센트가량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국무총리 이회창은 잠자코 듣는다. 이영희의 보고가 이어졌다.
“또한 종교세로 세수 증가에 따른 공공사업이 대폭 증가할 예정이어서 4개월 후에는 취업률에 반영될 것입니다.”
전교조 내부의 국보법 위반자를 전원 퇴직시켰고, 전공노 가입자는 모두 파면되어 새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국가 재정비’ 사업에서 발생한 일자리다. 그때 이회창이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대통령님과 식사를 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고 이회창이 손에 쥔 메모지를 한 단어씩 힘주어 읽는다.
“대통령님은 나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 그리고 대한민국 공무원, 거기에다 여당인 세우리당 의원, 당원 전체의 중지를 모아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회의실 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또 무엇이란 말인가. 모두 감이 잡히지 않는 표정이다. 잠깐 정적이 흐른 후 이회창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희망’이라고 표현되는 분위기를 말합니다. 오래전 ‘새마을운동’처럼, 또는 수출 1억 달러 달성 운동, 금 모으기 운동 같은 국민의 애국심과 협동심, 성취감과 열정, 희망을 심어줄 새바람을 일으키자는 것이지요.”
그러고는 이회창이 메모지를 내려놓더니 국무위원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방법을 찾으세요, 방법을. 새바람, 신풍(新風)운동에 대한 방법을 말입니다.”
말을 그쳤던 이회창이 문득 생각난 듯이 덧붙였다.
“신풍(新風)은 새로울 신자요. 가미카제하고는 달라요.”
# “억지로 하면 안 되지.”
KBS 보도국장 임명수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새 선풍기 갖다 놓았다고 신풍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거다. 몇 분 지나면 더운 바람이 나오니까.”
“어쨌든 이름은 잘도 지었어요. 신풍이라니. 가미카제 영화가 좀 나가겠구먼.”
차장 박동민이 비아냥거렸다.
“이름은 이회창이가 지었다던데.”
정색한 임명수가 말을 잇는다.
“이명박이가 새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더니 이회창이가 ‘신풍운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거다. 둘이 손발이 맞아.”
# 집무실로 들어선 조순형이 테이블 앞으로 다가와 섰다.
“대통령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 네.”
오전 11시 10분. 2월 하순이었지만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다. 창밖으로 북한산 자락의 노란 개나리 꽃무리가 보인다.
“앉으세요.”
이명박이 권하자 조순형은 테이블 옆쪽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앞은 정면이라 다들 거북해했기 때문에 이명박은 테이블 옆쪽에 의자를 놓았다. 그래서 소파나 회의용 테이블로 옮겨가지 않아도 집무 책상에 앉은 채 회의를 할 수 있다. 자리에 앉은 조순형이 입을 열었다.
“신풍운동은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통령님.”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조순형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미 신풍은 시작되었으니까요.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적기에 신풍운동 형체를 만드셨습니다. 형체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진행해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탄력만 받으면 됩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다 해도 틀이 있어야 제대로 빛이 난다는 조순형식 표현이다. 이명박도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신풍운동’이란 이름은 이 총리가 지었습니다. 아주 잘 지으셨어요.”
“신풍운동이 계기가 되어 대한민국은 재도약할 것입니다.”
그러더니 조순형이 정색했다.
“해방 이후 오직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뛴 지 60년입니다. 우리는 이제 보링할 때가 되었습니다.”
보링은 차 엔진을 전부 재정비한다는 구닥다리 말이다. 요즘은 차를 자주 바꿔서 이 말을 쓰는 사람이 드물지만 이명박은 알아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 “미국 가실 때가 지났습니다.”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이 인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본론을 말한다. 집무실 안에는 청와대 비서실장 조순형까지 셋이 둘러앉아 있다. 유명환이 면담 신청을 하고 찾아온 것이다. 장관이 대통령을 만나고 싶으면 하루 전에 신청하면 된다. 그러면 천지개벽이 일어나더라도 독대를 한다. 배석자는 청와대 비서실장. 단, 장관이 원하는 배석자도 참석할 수 있다. 유명환이 정색한 얼굴로 이명박을 보았다.
“취임하신 지 1년입니다. 현안도 많으니 가보셔야 합니다.”
“갑시다.”
이명박이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군사협정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 때 체결한 ‘한미연합사 해체’ 기일이 2012년 4월 17일인 것이다. 이명박의 임기 내에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것이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대번에 얼굴에 희색을 띤 유명환에게 이명박이 정색하고 말했다.
“한미연합사 해체를 무효로 만들도록 모든 외교적 수단을 강구해놓고 갑시다.”
유명환은 그동안 미 정부당국과 접촉해 한미연합사 해체를 2015년까지로 연장해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유명환의 표정을 본 이명박이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했다.
“고생하신지 압니다. 하지만 2015년은 금방입니다. 그대로 놓아두고 내가 퇴임할 수는 없어요.”
# ‘신풍운동’은 국무총리가 추진위원장이 됐고 추진위원에 각부 각료는 물론 입법부 의원, 기업인, 군인, 농민까지 다양하게 구성됐다. ‘세대결연’ 추친위원장 정몽준도 ‘신풍운동’ 추진위원이다. ‘세대결연’ 운동이 ‘신풍운동’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세대결연이 320만 쌍, 700만 명이 됐어요. 앞으로는 내실을 기해야 합니다.”
정몽준이 김무성에게 말했다. 의원회관 안 원내대표실에 원내총무 김무성이 찾아와 있는 것이다. 오후 3시경, 정몽준의 열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에게는 이것이 필생의 사업이 됐어요. 그렇지. 세대결연이 대한민국 ‘신풍운동’의 주력이 될 겁니다.”
“700만 표지요.”
김무성이 낮게 말했지만 정몽준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정몽준의 시선을 받은 채 김무성이 한마디씩 말을 잇는다.
“그 700만 표가 새끼를 한 명씩만 친다고 해도 1400만 표.”
“이 양반이, 참.”
쓴웃음을 지은 정몽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정치 오래하면 사람이 표로 보인다더니 그 말이 맞구먼.”
“대통령이 세종시 투표 한 시간 전에 박 대표한테 조 실장을 보내 백지화에 반대하라고 했다는 거 아시지요?”
김무성이 묻자 정몽준이 이제는 입맛을 다셨다.
“나는 김 총무 속셈이 더 궁금해진단 말입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요?”
김무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박근혜 멤버인 것이다. 박근혜 그룹 좌장이라고도 부른다. 정몽준의 시선을 받은 김무성이 풀썩 웃었다.
“나도 마음 비웠습니다.”
“아유, 골치 아파. 나는 지금 김 총무가 표로 안 보여.”
“나도 이명박 마인드가 되었단 말이오.”
정색한 김무성이 말하더니 길게 숨을 뱉는다.
“박 대표도 감동 먹었나 봅니다. 이제는 임기 말까지 이명박 한마디에 산천초목이 떨게 생겼어.”
“….”
“신풍운동으로 탄력만 받으면 진짜 이명박 유신이 되는 거라.”
그러고는 김무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바람이 날 것입니다. 안 그래요?”
정몽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느끼는 터라 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 김정일의 서울방문 통보가 온 것은 2009년 2월 26일이다. 오후 3시 정각에 일제히 통보가 왔는데 ‘6·25남침답다’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먼저 ‘5일장’ 아줌마가 방송에서, 그리고 북한적십자 회장이 북한 외무성 부상 명의로, 아태평화추진회 북측 회장이, 북측 군사 실무단장이, 유엔 북측 대표가, 6자회담 북측 대표가 제각기 남측 해당 책임자에게 일제히 김정일의 서울 방문을 통보했는데 3시 정각에서 몇 초 차이밖에 안 났다.
“위대하신 영도자 김정일 장군 동지께서는 3월 5일 오전 10시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아시었다.”
이것은 아줌마의 통보다.
하면서 서상국이 봉투를 내밀었다. 월급봉투. 이번 달부터 정식 사원 월급을 받지만 계산은 뻔하다. 봉투를 받은 이애주가 회의실로 들어가 명세표를 보았더니 세금과 보험료 다 떼고 147만5000원이다. 대부(代父) 오종택이 월급 절반을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항상’ 출판사에 입사했지만 빈말이다. 월급은 다 서상국이 준다. 자, 이제부터는 이것으로 생활해야 한다. 편집부에 있는 경력 4년차 언니 박명옥의 월급이 180만 원 정도였으니 평균 이 수준으로 봐야 한다. 조금 큰 출판사나 대기업 계열은 200만 원이 넘는다지만 그건 딴 나라 이야기 같다. 사무실에 들어섰더니 퇴근 준비를 하던 박명옥이 이애주에게 말했다.
“나, 내일 작가 만나고 11시에 출근할 테니까 표지 도안 받아놓아.”
“네, 언니.”
사장까지 직원 네 명인 출판사여서 명함은 편집부 이애주라고 박았지만 온갖 잡일을 다한다. 교정, 표지 도안 관리와 인쇄에, 바쁠 때는 총판과 영업까지 뛰어야 한다. 출판사 일은 다 배울 수 있다고 서상국이 말했지만 출판사 사장을 할 생각은 언감생심인 터라 힘들기만 하다.
자, 오후 7시다. 5평짜리 텅 빈 사무실에 앉은 이애주는 실업자 친구를 불러서 소주나 한잔할까 궁리했다. 애인은 없다. 감동도 생기지 않고, 가만 보니까 그놈은 오로지 나를 돈 안 내고 뛰는 섹스 대용품으로 여기는 것 같아 끊어버렸다. 한 번 뛰는 데 10만 원씩 준다면 만나주겠지만 체면이 있지.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숨을 들이쉰 이애주가 전화기를 들었다. 인쇄소에서 외상값 달라고 걸려온 전화일 가능성 75퍼센트.
“네, 항상 출판사입니다.”
“거기, 이애주 씨 있습니까?”
사내 목소리다.
“네, 저인데요.”
“여긴 청와대입니다.”
“어디요?”
해놓고 이애주는 분주히 생각했다. 이 근처 외상값 깔린 중국집인가 보다. 사장이나 경리 미스 오가 알겠지. 그때 사내가 다시 말했다.
“청와대 의전비서실 김영범입니다.”
중국집은 아닌가 보다. 이맛살을 찌푸린 이애주가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잘못 걸려온 전화겠지.
“여긴 항상 출판사인데요. 저는 편집부 이애주고요.”
“대부가 인테리어 사업을 하시는 오종택 씨 맞지요?”
그 순간 이애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부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혹시 나를 보증인으로 삼아 돈을 빌리지는 않았겠지. 최근 그런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애주는 대답했다.
“네, 맞는데요.”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십니까? 대통령께서 세대결연에 대해 궁금해하시거든요. 그래서 우연히 선정된 사람이 이애주 씨입니다. 시간을 내주시면 정말 고맙겠다고 하셨습니다.”
# 삼청동에는 오밀조밀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다. 몰라서 그렇지, 이애주는 데이트하는 데 인사동이나 명동, 홍대 앞보다 이곳이 더 나았다. 오후 8시 25분. 이애주가 삼청동 골목의 ‘열정’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5평쯤 규모의 카페 안에는 손님이 두 테이블뿐이다. 출입구 쪽 테이블에는 카페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정장 차림의 아저씨 셋이 앉았고 안쪽에 아, 대통령이 앉았다. 이명박이. 지금은 사석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이명박 대통령’ 또는 ‘대통령님’ 또는 ‘이 대통령’이나 ‘대통령’으로 부르는 국민은 없다. 세우리당 당원이나 그 가족, 지지자는 빼놓고 말이다. 대부분 ‘이명박이’로 부른다. 악감을 가진 인간들은 별별 이름으로 다 부르지만 요즘은 엄청 나아졌다.
“어, 왔어?”
다가선 이애주가 굽실 허리를 꺾고 절하자 이명박이 활짝 웃으며 반긴다. 캐주얼 양복에 노타이셔츠 차림이어서 젊어 보인다.
“어, 앉아. 놀랐지?”
앞자리를 가리키며 이명박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내가 시장이나 사람 많은 데 가서 이야기라도 하면 쇼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말이야. 하긴 솔직히 말해 그런 곳에서는 제대로 이야기를 못 나누지. 쇼지 쇼야.”
그때 예쁘장한 중년여자가 다가와 식탁에 소면이 따로 놓인 낚지볶음, 골뱅이무침, 파전에다 노가리 안주를 놓는다. 이애주는 숨을 들이쉬었다. 노가리만 빼고 자신이 좋아하는 안주인 것이다. 잠깐 돌아갔던 아줌마가 이제는 소주와 막걸리를 따로 가져왔다. 이것도 이애주 스타일이다. 이애주의 표정을 본 이명박이 빙긋 웃었다.
“놀란 것 같군. 대통령쯤 되면 이애주 씨가 좋아하는 안주가 뭔지, 술은 뭘 좋아하는지 정도는 안다고. 국가정보원이 폼으로 있는 줄 알아?”
술병을 내려놓는 아줌마가 그 말을 듣고도 웃지 않았으므로 이애주는 쫄았다.
# 오늘은 서상국이 술을 산다고 해서 오종택은 홍대 앞 삼겹살집으로 장소를 정했다. 단골인 데다 둘이 소주 두 병에 삼겹살 2인분이면 2만 원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서상국이 술 두 병을 더 시키는 바람에 고기도 2인분이 더 들어갔다. 불 꺼진 프라이팬이 너무 썰렁하기도 했다.
“씨벌, 희망이 없어.”
소주잔을 든 서상국이 붉어진 눈으로 오종택을 보았다.
“나만 그런 게 아녀. 다 그려. 이애주 세대나 30대, 40대, 50대까지.”
둘은 50대 중반이니 그중 마지막이다. 한 모금에 소주를 삼킨 서상국이 말을 이었다.
“요즘 이명박이가 이곳저곳을 청소허고 길 메우는 바람에 쫌 새바람이 부는 것 같지만, 아녀.”
머리까지 내저은 서상국이 제 잔에 술을 따르며 말한다.
“근본적으로다가 고쳐야 혀. 말허자먼….”
“야, 시끄럽다.”
새로 가져온 삼겹살을 뒤적거리면서 오종택이 잇는다.
“씨벌놈아. 그려도 우리는 딴놈들허고 비교허면 행복헌 편이다. 우리 동창들은 벌써 다 퇴직허고 논다.”
맞는 말이다. 56세인 그들의 동창들은 다 퇴직했다. 직장에 다니는 놈들은 교직자나 공무원 또는 회사를 운영하는 몇몇으로 극히 소수다. 그때 서상국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그거여. 그것이 한국 사회를 침체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란 말이다.”
오종택은 말 거들기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익은 삼겹살을 씹었고, 서상국이 말을 이었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까지 이어오던 경제부흥, 하면 된다, 수출 100억 달러, 1000억 달러 달성, 국민소득 1000달러에서 1만 달러, 2만 달러 성장.”
서상국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주위의 시선이 모였다. 그러나 서상국은 말을 잇는다.
“그렇게 30여 년을 지내오다가 인자는 지쳐간단 말이다. 자, 50대인 우리뿐 아니라 아래쪽 40, 30, 20대헌티까지 이 현상이 번지고 있다. 20대는 취업,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지치고, 30대는 생활에 대한 불안으로 지치고, 40대는 눈앞에 닥쳐올 정년과 가족의 앞날 걱정으로 지친다. 그리고 우리는….”
머리를 든 서상국은 주위 테이블이 조용해진 것을 알았다. 좌, 우, 앞쪽의 테이블에 공교롭게도 20대, 30대, 40대 사내들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모두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서상국이 잠깐 입을 다물었더니 시선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서상국이 길게 숨을 뱉었다.
“이명박이가 이것만 해결허면 위대헌 대통령이 될 것이다.”
# “희망이야.”
청와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불쑥 이명박이 말했으므로 홍보수석 겸 대변인 이동관은 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뒷자리에 앉은 이명박은 정면에다 시선을 준 채 말을 잇는다.
“국민에게 희망이 필요하다고.”
조금 전 이명박은 이애주와 헤어졌다. 이애주는 소주에 막걸리를 타서 열 잔도 넘게 마셨지만 이명박은 딱 두 잔 마셨다. 카페 앞에서 기다리던 이동관은 이명박이 노가리를 몇 조각 먹었는지도 다 보고받은 것이다. 그때 이명박의 시선이 이동관에게 옮겨졌다.
“우리가 젊었을 때와 다르게 사회 전반에 의욕과 기백, 열정이 보이지를 않아. 불만과 싫증, 좌절감이 덮고 있는 이유는 딱 하나,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한마디씩 씹어뱉듯이 말한 이명박이 등받이에 등을 붙이더니 길게 숨을 뱉었다. 다시 시선이 앞쪽으로 옮겨져 있다.
“자,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은가?”
혼잣소리다. 그러나 억양이 절박했으므로 이동관은 입안의 침을 삼켰다.
# 다음 날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이영희가 보고했다.
“공안사범 단속으로 일자리가 3만5000개 증가했습니다. 이것으로 취업률이 단숨에 1퍼센트가량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국무총리 이회창은 잠자코 듣는다. 이영희의 보고가 이어졌다.
“또한 종교세로 세수 증가에 따른 공공사업이 대폭 증가할 예정이어서 4개월 후에는 취업률에 반영될 것입니다.”
전교조 내부의 국보법 위반자를 전원 퇴직시켰고, 전공노 가입자는 모두 파면되어 새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국가 재정비’ 사업에서 발생한 일자리다. 그때 이회창이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대통령님과 식사를 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고 이회창이 손에 쥔 메모지를 한 단어씩 힘주어 읽는다.
“대통령님은 나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 그리고 대한민국 공무원, 거기에다 여당인 세우리당 의원, 당원 전체의 중지를 모아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회의실 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또 무엇이란 말인가. 모두 감이 잡히지 않는 표정이다. 잠깐 정적이 흐른 후 이회창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희망’이라고 표현되는 분위기를 말합니다. 오래전 ‘새마을운동’처럼, 또는 수출 1억 달러 달성 운동, 금 모으기 운동 같은 국민의 애국심과 협동심, 성취감과 열정, 희망을 심어줄 새바람을 일으키자는 것이지요.”
그러고는 이회창이 메모지를 내려놓더니 국무위원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방법을 찾으세요, 방법을. 새바람, 신풍(新風)운동에 대한 방법을 말입니다.”
말을 그쳤던 이회창이 문득 생각난 듯이 덧붙였다.
“신풍(新風)은 새로울 신자요. 가미카제하고는 달라요.”
# “억지로 하면 안 되지.”
KBS 보도국장 임명수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새 선풍기 갖다 놓았다고 신풍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거다. 몇 분 지나면 더운 바람이 나오니까.”
“어쨌든 이름은 잘도 지었어요. 신풍이라니. 가미카제 영화가 좀 나가겠구먼.”
차장 박동민이 비아냥거렸다.
“이름은 이회창이가 지었다던데.”
정색한 임명수가 말을 잇는다.
“이명박이가 새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더니 이회창이가 ‘신풍운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거다. 둘이 손발이 맞아.”
# 집무실로 들어선 조순형이 테이블 앞으로 다가와 섰다.
“대통령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 네.”
오전 11시 10분. 2월 하순이었지만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다. 창밖으로 북한산 자락의 노란 개나리 꽃무리가 보인다.
“앉으세요.”
이명박이 권하자 조순형은 테이블 옆쪽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앞은 정면이라 다들 거북해했기 때문에 이명박은 테이블 옆쪽에 의자를 놓았다. 그래서 소파나 회의용 테이블로 옮겨가지 않아도 집무 책상에 앉은 채 회의를 할 수 있다. 자리에 앉은 조순형이 입을 열었다.
“신풍운동은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통령님.”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조순형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미 신풍은 시작되었으니까요.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적기에 신풍운동 형체를 만드셨습니다. 형체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진행해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탄력만 받으면 됩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다 해도 틀이 있어야 제대로 빛이 난다는 조순형식 표현이다. 이명박도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신풍운동’이란 이름은 이 총리가 지었습니다. 아주 잘 지으셨어요.”
“신풍운동이 계기가 되어 대한민국은 재도약할 것입니다.”
그러더니 조순형이 정색했다.
“해방 이후 오직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뛴 지 60년입니다. 우리는 이제 보링할 때가 되었습니다.”
보링은 차 엔진을 전부 재정비한다는 구닥다리 말이다. 요즘은 차를 자주 바꿔서 이 말을 쓰는 사람이 드물지만 이명박은 알아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 “미국 가실 때가 지났습니다.”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이 인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본론을 말한다. 집무실 안에는 청와대 비서실장 조순형까지 셋이 둘러앉아 있다. 유명환이 면담 신청을 하고 찾아온 것이다. 장관이 대통령을 만나고 싶으면 하루 전에 신청하면 된다. 그러면 천지개벽이 일어나더라도 독대를 한다. 배석자는 청와대 비서실장. 단, 장관이 원하는 배석자도 참석할 수 있다. 유명환이 정색한 얼굴로 이명박을 보았다.
“취임하신 지 1년입니다. 현안도 많으니 가보셔야 합니다.”
“갑시다.”
이명박이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군사협정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 때 체결한 ‘한미연합사 해체’ 기일이 2012년 4월 17일인 것이다. 이명박의 임기 내에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것이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대번에 얼굴에 희색을 띤 유명환에게 이명박이 정색하고 말했다.
“한미연합사 해체를 무효로 만들도록 모든 외교적 수단을 강구해놓고 갑시다.”
유명환은 그동안 미 정부당국과 접촉해 한미연합사 해체를 2015년까지로 연장해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유명환의 표정을 본 이명박이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했다.
“고생하신지 압니다. 하지만 2015년은 금방입니다. 그대로 놓아두고 내가 퇴임할 수는 없어요.”
# ‘신풍운동’은 국무총리가 추진위원장이 됐고 추진위원에 각부 각료는 물론 입법부 의원, 기업인, 군인, 농민까지 다양하게 구성됐다. ‘세대결연’ 추친위원장 정몽준도 ‘신풍운동’ 추진위원이다. ‘세대결연’ 운동이 ‘신풍운동’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세대결연이 320만 쌍, 700만 명이 됐어요. 앞으로는 내실을 기해야 합니다.”
정몽준이 김무성에게 말했다. 의원회관 안 원내대표실에 원내총무 김무성이 찾아와 있는 것이다. 오후 3시경, 정몽준의 열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에게는 이것이 필생의 사업이 됐어요. 그렇지. 세대결연이 대한민국 ‘신풍운동’의 주력이 될 겁니다.”
“700만 표지요.”
김무성이 낮게 말했지만 정몽준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정몽준의 시선을 받은 채 김무성이 한마디씩 말을 잇는다.
“그 700만 표가 새끼를 한 명씩만 친다고 해도 1400만 표.”
“이 양반이, 참.”
쓴웃음을 지은 정몽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정치 오래하면 사람이 표로 보인다더니 그 말이 맞구먼.”
“대통령이 세종시 투표 한 시간 전에 박 대표한테 조 실장을 보내 백지화에 반대하라고 했다는 거 아시지요?”
김무성이 묻자 정몽준이 이제는 입맛을 다셨다.
“나는 김 총무 속셈이 더 궁금해진단 말입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요?”
김무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박근혜 멤버인 것이다. 박근혜 그룹 좌장이라고도 부른다. 정몽준의 시선을 받은 김무성이 풀썩 웃었다.
“나도 마음 비웠습니다.”
“아유, 골치 아파. 나는 지금 김 총무가 표로 안 보여.”
“나도 이명박 마인드가 되었단 말이오.”
정색한 김무성이 말하더니 길게 숨을 뱉는다.
“박 대표도 감동 먹었나 봅니다. 이제는 임기 말까지 이명박 한마디에 산천초목이 떨게 생겼어.”
“….”
“신풍운동으로 탄력만 받으면 진짜 이명박 유신이 되는 거라.”
그러고는 김무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바람이 날 것입니다. 안 그래요?”
정몽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느끼는 터라 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 김정일의 서울방문 통보가 온 것은 2009년 2월 26일이다. 오후 3시 정각에 일제히 통보가 왔는데 ‘6·25남침답다’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먼저 ‘5일장’ 아줌마가 방송에서, 그리고 북한적십자 회장이 북한 외무성 부상 명의로, 아태평화추진회 북측 회장이, 북측 군사 실무단장이, 유엔 북측 대표가, 6자회담 북측 대표가 제각기 남측 해당 책임자에게 일제히 김정일의 서울 방문을 통보했는데 3시 정각에서 몇 초 차이밖에 안 났다.
“위대하신 영도자 김정일 장군 동지께서는 3월 5일 오전 10시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아시었다.”
이것은 아줌마의 통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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