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개의 2달러 지폐-앞면과 뒷면’, 워홀, 1962년, 캔버스에 실크스크린, 210×96,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소장.
우리네 인생은 돈 때문에 울고 웃는다. 평생 소비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돈이 없다면 물 한잔 마실 수 없고, 용변 하나 볼 수 없는 게 우리 삶이 가진 변하지 않는 구조다.
소비의 핵심인 돈을 그린 작품이 앤디 워홀(1931~87)의 ‘80개의 2달러 지폐-앞면과 뒷면’이다. 단순하게 본다면 이 작품은 80달러다. 2달러짜리 지폐 40장으로 구성됐다. 작품 내용을 해석하는 데 특별한 미적 지식이 필요치는 않다. 계산만 하면 된다. 달러는 워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돈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신과 같다는 의미다. 즉 현대의 신은 돈이라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실제 돈과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 가짜 돈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실제 돈과 가짜 돈은 추상적이고 물질적 가치를 초월한 상업적 가치를 나타낸다. 차이가 있다면, 은행권 80달러보다 워홀의 이 작품이 가진 상업적 가치가 더 높다는 사실이다. 워홀은 이것을 정확히 돈으로 표현했다. 지폐로 80달러를 묘사하면서 자신의 지적 가치를 높였다. 이전 화가들은 지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허구를 냉정하게 노출하지 못했다. 미술작품의 가치는 미학적인 질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워홀은 이 작품에서 미술품이 지닌 가치는 작가의 명성에 의해서도 좌우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불황이 깊을수록 남들이 다 하는 장사를 해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불황기에는 안정된 사업이라는 것이 없다. 모든 사람이 불황이라는 말 한마디에 지갑을 닫기 때문이다. 불황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 조지 캘럽 빙엄(1811~79)의 ‘미주리 강을 거슬러 내려오는 피혁상인들’이다. 이 작품은 미국 신화를 표현하기 위해 사라져버린 북아메리카 국경 모습을 재현했다.
두 사람이 안개 자욱한 미시시피 강을 배를 타고 가고 있다. 미주리 강은 미시시피 강의 지류다. 두 사람은 어슴푸레한 새벽빛에 둘러싸여 있으며, 배는 수면 위를 미끄러진다. 바람조차 없는 날씨는 수면의 일렁임을 만들지 못한 채 오직 두 사람의 그림자만 드러낸다.
(위)‘미주리 강을 거슬러 내려오는 피혁상인들’, 빙엄, 1845년경, 캔버스에 유채, 73×92,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아래)‘희망’, 와츠, 1885년, 캔버스에 유채, 150×109,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피혁상인은 미국 초기에 국경지대에서 활동했는데, 그들은 거친 환경에서도 생존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생존방식은 비록 폭력적이고 거칠었지만 미국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며, 빙엄은 그들의 삶을 존중했다.
빙엄은 이 작품에서 우아하고 부드러운 붓놀림과 밝은 빛을 사용해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터전으로 생활해야 했던,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척박한 삶을 드러냈다. 미국인들은 이 작품에 열광했다.
빙엄은 초기에 미주리의 풍경과 어부들, 피혁상인 등 미시시피 강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묘사하는 데 몰두하지만 후기에는 점차 강에서 벗어나 미국인의 생활상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대중의 인기를 얻은 그는 1848년 미주리 국회의원에 선출된다. 이 작품은 민주당원이던 빙엄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미국인의 생활상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비난받기도 했다.
불황이라고 사회만 탓하고 있으면 오히려 사회에서 도태된다. 사회는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을 거두지 않기 때문이다. 뱀 꼬리라도 되길 원한다면 온 마음을 다해 원하는 것을 얻고자 노력해야 한다. 인생은 열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는 희망을 가진 사람만 후원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을 표현한 작품이 조지 와츠(1817~1904)의 ‘희망’이다. 이 작품은 모든 것을 다 잃고 희망만 간직한 판도라를 묘사했다. 맨발의 여인은 눈과 귀가 천으로 가려져 있어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그가 들고 있는 현악기 리라도 한 줄만 남았다.
그는 물에 흠씬 젖어 지구 위에 앉아 있다. 지구는 현실세계를 암시하고 리라는 영혼세계를 상징한다. 물에 흠씬 젖은 여인은 현실세계에서 빠져나왔음을 나타낸다. 리라의 줄이 다 끊어진 것은 현실세계와 영혼세계가 소통하지 못함을 암시하며, 그럼에도 리라가 한 줄 남아 있는 것은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와츠는 이 작품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여인이 한 줄의 리라를 가지고 음악을 창조하는 모습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불황일수록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희망이 없다면 산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다. 희망은 고통스럽고 비루한 현실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끈이기 때문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