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명화
우리의 심장은 피로해 주말과 영화의 조합이 필요해
여배우를 향한 나의 눈빛이 화면 위로 미끄러지고 공기 중에 떠돌다가 당신의 눈으로 옮겨 간다
나를 의심하고 있는가 우리의 심장은 서로 통하지만 공기 중에서 나는 의심받고 있어
여배우의 숄더백이 열리고 중요한 메모가 떨어졌다
목소리와 걸음걸이는 배우에게 아주 중요한데
약간의 호감이 이제 막 세포에서 만들어졌는데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듯 성우의 과장된 목소리가 주인공을 멈춰 세운다
헤어진 연인들은 시곗바늘처럼 멀어졌다 가까워지고 점점 뾰족해진다
서로를 아주 가까운 데 던져놓고서 기분을 조금씩 훔쳐낸다
주말의 명화가 월요일 새벽을 낳았지만 월요일 아침 우리들은 감정이 없어서 좋다
그것은 정오부터 서서히 만들어져 금요일이면 활활 타오른다
―이근화 ‘주말의 명화’(‘차가운 잠’ 문학과지성사, 2012 중에서)
솜사탕 같은 토요일의 일탈
초등학생 시절, 주말이 찾아온 걸 대놓고 알리는 TV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와 ‘주말의 명화’가 그랬다. 가수들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주말이 찾아온 게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음정 박자 다 무시하고 목청껏 따라 부르다 배를 잡고 한참 동안 웃기도 했다. ‘토토즐’이 끝나면 부랴부랴 밥을 먹었다. 평소에 밥알을 센다고 구박하던 엄마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밥그릇 바닥이 보일 때쯤이면 어느새 광고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숟가락 가득 밥을 떠 입안에 넣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열심히 씹었다. 토요일은 즐겁고도 즐거워서, 나는 절로 야무진 아들내미가 되었다.
밥상에서 물러나기 무섭게 TV 앞에 떡하니 자리잡았다. 주말연속극 ‘아들과 딸’을 봐야 했던 것이다. “나의 눈빛이 화면 위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후남이를 보면 가슴이 아팠고 귀남이를 보면 괜스레 얄미웠다. 막내인 종말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토요일에는 요리조리 채널을 바꿀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아홉 시가 되어 뉴스가 흘러나올 때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살짝 졸기도 했다. 어린이가 감당하기에는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았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지루했다. 이윽고 다시 집중할 시간이 찾아왔다. 익숙한 그 음악! 웅장한 그 음악! 나중에 그 곡의 제목이 ‘탈출의 노래(The Exodus Song)’라는 소리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역시 탈출을 감행하기에 토요일만한 날은 없다니까!
그리고 ‘주말의 명화’가 시작했다. 당시에는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두 배로 열광했다. 똥그래진 눈으로 총을 든 카우보이와 칼을 든 기사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다행히 토요일은 늦게 자도 되는 날이었다. 새 나라에서 나의 일탈이 묵인되는 유일한 날이었다. 오늘은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나왔다. 더빙 때문에 오늘도 외국 배우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매주 만나는 외국 배우들은 얼굴이 다 달랐지만, 목소리는 다 비슷했다. 오늘은 배한성이었다.
배한성의 목소리를 좋아했지만,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맥가이버가 떠올라 캐릭터에 집중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 착한 맥가이버, 머리가 하얗게 센 맥가이버, 이상한 바지를 입은 맥가이버, 늙어버린 맥가이버, 실의에 빠진 맥가이버, 거들먹거리는 맥가이버, 입 모양과 발음되는 말이 일치하지 않아 당황하는 맥가이버. 맥가이버가 흡사 분신술이라도 익힌 듯싶었다. 어떤 맥가이버는 “목소리와 걸음걸이”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 순간, “약간의 호감”은 왠지 모를 어색함으로 변모했다. 주인공에 몰입했다가 “시곗바늘처럼 멀어”지는 일이 잦았다.
이제는 아무도 ‘주말의 명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보고 싶은 영화를 쉬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간절하거나 애타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명화가 더는 없을지라도 여전히 주말은 소중하다는 점. “월요일 아침”은 딱 그만큼 부담스럽다는 점. 오늘은 월요일, “정오부터 서서히”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기운 솟는 일보다 기분 상하는 일이 더 많다.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성인이 된 나는 “금요일이면 활활 타오른다”. “우리의 심장은 피로”해서 서로의 심장을 더욱 간절히 필요로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눈빛으로 묻는다. 아직 “우리의 심장은 서로 통하”고 있지?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우리의 심장은 피로해 주말과 영화의 조합이 필요해
여배우를 향한 나의 눈빛이 화면 위로 미끄러지고 공기 중에 떠돌다가 당신의 눈으로 옮겨 간다
나를 의심하고 있는가 우리의 심장은 서로 통하지만 공기 중에서 나는 의심받고 있어
여배우의 숄더백이 열리고 중요한 메모가 떨어졌다
목소리와 걸음걸이는 배우에게 아주 중요한데
약간의 호감이 이제 막 세포에서 만들어졌는데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듯 성우의 과장된 목소리가 주인공을 멈춰 세운다
헤어진 연인들은 시곗바늘처럼 멀어졌다 가까워지고 점점 뾰족해진다
서로를 아주 가까운 데 던져놓고서 기분을 조금씩 훔쳐낸다
주말의 명화가 월요일 새벽을 낳았지만 월요일 아침 우리들은 감정이 없어서 좋다
그것은 정오부터 서서히 만들어져 금요일이면 활활 타오른다
―이근화 ‘주말의 명화’(‘차가운 잠’ 문학과지성사, 2012 중에서)
솜사탕 같은 토요일의 일탈
초등학생 시절, 주말이 찾아온 걸 대놓고 알리는 TV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와 ‘주말의 명화’가 그랬다. 가수들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주말이 찾아온 게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음정 박자 다 무시하고 목청껏 따라 부르다 배를 잡고 한참 동안 웃기도 했다. ‘토토즐’이 끝나면 부랴부랴 밥을 먹었다. 평소에 밥알을 센다고 구박하던 엄마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밥그릇 바닥이 보일 때쯤이면 어느새 광고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숟가락 가득 밥을 떠 입안에 넣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열심히 씹었다. 토요일은 즐겁고도 즐거워서, 나는 절로 야무진 아들내미가 되었다.
밥상에서 물러나기 무섭게 TV 앞에 떡하니 자리잡았다. 주말연속극 ‘아들과 딸’을 봐야 했던 것이다. “나의 눈빛이 화면 위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후남이를 보면 가슴이 아팠고 귀남이를 보면 괜스레 얄미웠다. 막내인 종말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토요일에는 요리조리 채널을 바꿀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아홉 시가 되어 뉴스가 흘러나올 때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살짝 졸기도 했다. 어린이가 감당하기에는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았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지루했다. 이윽고 다시 집중할 시간이 찾아왔다. 익숙한 그 음악! 웅장한 그 음악! 나중에 그 곡의 제목이 ‘탈출의 노래(The Exodus Song)’라는 소리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역시 탈출을 감행하기에 토요일만한 날은 없다니까!
그리고 ‘주말의 명화’가 시작했다. 당시에는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두 배로 열광했다. 똥그래진 눈으로 총을 든 카우보이와 칼을 든 기사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다행히 토요일은 늦게 자도 되는 날이었다. 새 나라에서 나의 일탈이 묵인되는 유일한 날이었다. 오늘은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나왔다. 더빙 때문에 오늘도 외국 배우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매주 만나는 외국 배우들은 얼굴이 다 달랐지만, 목소리는 다 비슷했다. 오늘은 배한성이었다.
배한성의 목소리를 좋아했지만,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맥가이버가 떠올라 캐릭터에 집중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 착한 맥가이버, 머리가 하얗게 센 맥가이버, 이상한 바지를 입은 맥가이버, 늙어버린 맥가이버, 실의에 빠진 맥가이버, 거들먹거리는 맥가이버, 입 모양과 발음되는 말이 일치하지 않아 당황하는 맥가이버. 맥가이버가 흡사 분신술이라도 익힌 듯싶었다. 어떤 맥가이버는 “목소리와 걸음걸이”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 순간, “약간의 호감”은 왠지 모를 어색함으로 변모했다. 주인공에 몰입했다가 “시곗바늘처럼 멀어”지는 일이 잦았다.
이제는 아무도 ‘주말의 명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보고 싶은 영화를 쉬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간절하거나 애타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명화가 더는 없을지라도 여전히 주말은 소중하다는 점. “월요일 아침”은 딱 그만큼 부담스럽다는 점. 오늘은 월요일, “정오부터 서서히”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기운 솟는 일보다 기분 상하는 일이 더 많다.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성인이 된 나는 “금요일이면 활활 타오른다”. “우리의 심장은 피로”해서 서로의 심장을 더욱 간절히 필요로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눈빛으로 묻는다. 아직 “우리의 심장은 서로 통하”고 있지?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