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연극제의 프로그램을 보면 장르 간 경계를 뛰어넘은 실험들을 대거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공간’에 대한 탐구와 체험 성격이 돋보인다. 사카구치 교헤의 ‘움직이는 집’은 서울에서 수집할 수 있는 재료들을 재활용해 집을 짓는 설치미술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표현한다. 사람과 함께 움직이고, 언제든 부술 수 있으며, 환경과도 잘 어우러지는 새로운 개념의 집을 만들어 보여준다.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소유하기 쉽지 않은 부조리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프로젝트다.
극단 서울괴담의 ‘기이한 마을버스 여행-성북동’은 마을버스 노선을 따라 투어하면서 성북동 지역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판타지 괴담 형식으로 보여주는 공연이다. 재개발로 성북동이 빌딩숲으로 변해버리면 사라지게 될 소소한 삶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뉴홈’은 참가자들로 하여금 완공을 앞둔 재건축 건물에 들어가 취침하고 나오게 하는 기발한 프로젝트다. 건물 전체가 텅 비어 있는 새 집에 일시 기거하며 새로운 상상력으로 집이라는 개념에 접근해볼 수 있는 기회다.
연극, 무용, 영상, 설치미술 등을 결합한 다양한 퍼포먼스도 눈에 띈다. 전소정 작가의 ‘Three ways to Elis’는 50년간 혼자 움막에서 살았던 무용수에 대한 서로 다른 증언을 통해 인간의 기억과 욕망, 개인과 사회 등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영상·설치미술이다. 류한길·최준용·홍철기의 ‘열등한 소리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소리들 또한 고정관념에 의해 우열이 가려지면서 ‘계층화’돼 있음을 체험케 하는 퍼포먼스다.
이 밖에 한국과 일본에서 촬영한 인터뷰 영상을 통해 국가 미래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조명하는 ‘인터뷰 프로젝트 연작 시리즈’, 국제도시에 대한 사유를 담은 애니메이션 ‘a Circle’, 정치범으로 오인받아 고문당했던 희극배우의 삶을 다룬 모노드라마 ‘늙은 코미디언의 창고’, 난민과 ‘경계인’의 문제를 다룬 ‘미래 이야기’, 공상과학(SF)적 상상력과 공포감을 활용해 인간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연극 ‘샴 아미그달라’ 등이 있다.

기국서 연출가의 강연과 놀이패 신명의 마당굿 ‘일어서는 사람들’로 시작한 이번 서울변방연극제는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광화문광장, 성북동, 한강, 인천아트플랫폼, 닻올림, 문래예술공장, LIG아트홀, 아르코예술극장 앞마당, 문지문화원 사이, 노들장애인야학교실에서 7월 20일까지 열린다. 문의 3673-5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