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라걸스’
미 항공우주국(NASA) 엔지니어인 호머 히캄의 자전적 소설을 각색한 조 존스턴의 영화 ‘옥토버 스카이’의 교훈은 “꿈을 갖고 공부하라”는 것이다. 광부가 되거나 풋볼선수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가는 것 외엔 어떤 희망도 없는 광산 마을에서 주인공 호머 히캄과 친구들은 전혀 엉뚱한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 매진한다.
때는 1950년대 말.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직후이기 때문에 그들의 목표는 엉뚱하지만 자명하다. 바로 로켓 과학자가 되는 것. 만약 그들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리는 고등학교 과학경진대회에 나가 수상을 한다면 풋볼 장학금을 받지 않고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물론 가능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히캄은 결국 나사 엔지니어가 됐으니 말이다.
꿈과 목표는 ‘로켓 과학자’가 되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일 수도 있다. 역시 파업과 해고로 얼룩진 영국의 탄광촌 출신인 빌리 엘리어트에겐 ‘로켓 과학자’가 되는 것보다 더 힘겨운 목표가 있다. 발레 댄서가 되는 것이다. 만약 그 아이가 런던의 중상계급 출신이라면 이 목표는 그럭저럭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 남자들의 컴컴한 사나이다움과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증)가 지배하는 탄광촌에서 ‘계집애들’이나 추는 발레에 빠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것을 감추거나 드러내는 것이 더 힘겹다. 평범한 사내아이가 ‘계집애 같은’ 목표를 갖는다는 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이상일 감독의 신작 ‘훌라걸스’에서 그리는 미래는 좀더 밝다. ‘옥토버 스카이’와 ‘빌리 엘리어트’에서는 재능 있고 운 좋은 소수만이 몰락한 탄광촌에서 탈출하지만, ‘훌라걸스’에서는 커뮤니티 전체가 살아남는다.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일본 시골 구석의 광산촌에서는 인기를 잃어가는 석탄을 포기하고, 광산에서 솟아나는 온천을 이용해 하와이를 흉내낸 관광지를 개발한다. 여기에 온천수만큼이나 필요한 건 하와이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동원되는 훌라댄스단. 평생 제대로 된 춤은 춰본 적도 없고 훌라댄스가 뭔지도 모르는 동네 처녀들은 도쿄에서 온 콧대 높은 무용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훌라댄스에 도전한다. 성공했느냐고? 물론이다. 그 증거로, 바로 그 마을에서 건너온 훌라댄스 무희들이 이 영화의 한국 시사회에서 30분짜리 공연을 펼치기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