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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임에도 노천카페와 식당은 출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의 열대지방이 그렇듯, 베트남의 아침도 이른 시각부터 시작된다. 베트남 사람들이 부지런하다기보다는 한낮의 더위를 피해 주로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에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호텔과 좀 떨어진 길 안쪽 노천식당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까이서 보니 여러 종류의 고기가 검은색 철제그릇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었다. 마치 중국에서 먹던 티에반니우러우(쇠고기 철판볶음)와 흡사했다. 이 음식은 소스가 다르기는 하지만 모양이나 맛이 티에반니우러우와 비슷하다. 다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 영향 탓인지 바게트가 나오는 점이 조금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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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 무대에서 댄스파티를 즐기는 관광객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리셉션에 오늘 섬 투어가 있는지 다시 물어봤다. 다행스럽게도 섬 투어가 진행된다고 했다. 비에 젖은 옷만 갈아입고 오전 8시30분에 여행사 버스를 탄 뒤 부두로 이동했다. 부두에는 다른 여행사를 통해 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배를 탈 사람들은 모두 40명 정도. 나는 20명의 베트남 현지인, 15명의 백인,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할 스태프 5명과 함께 배에 승선했다.
베트남 국기를 펄럭이며 배가 잠시 후 출발했다. 뱃머리 앞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바깥 경치를 구경하던 것도 잠시, 섬 인근에 도착하자 갑판 위에 놓여 있던 의자들이 무대로 변했다. 조금 전까지 선장, 조타수, 조리장 역할을 해오던 스태프들이 양철 드럼을 두드리고 전기기타를 연주하는 악단으로 변신해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영어와 베트남어에 능숙한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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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조타수, 조리장은 선상에서 악단으로 변신해 흥겨운 음악을 연주했다.
스노클링, 장기자랑 등 포함된 섬 투어 최고의 즐거움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갑자기 ‘아리랑’ 반주가 나온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선창을 하자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따라 노래를 불렀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여행 중 찾아온 고국에 대한 진한 향수에 하마터면 울음이 나올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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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노천식당에서 파는 고기요리(좌).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냐짱의 해변.
자기소개가 대충 끝나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댄스파티였다. 주위가 환한 한낮에, 그것도 공간이 협소한 배 위에서 즐기는 댄스파티라니…. 하지만 사회자의 “레츠 댄스(Let’s dance)”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인들은 의자를 붙여 만든 무대 위에 올라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상승하자 동양인들도 하나 둘씩 무대에 올라가 서로 어깨동무한 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배 안에서 한참을 즐기던 중 스태프들이 갑자기 무대를 바다로 옮기기 시작했다. 바다 위에 와인 바를 차린 것. 대형 튜브 위에 맥주와 와인을 넣은 박스를 올리고 사회자는 그 위에 올라탄 채 사람들에게 술을 나눠주고 있었다.
술과 춤으로 한층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구명튜브를 낀 채 바다로 들어갔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바다 위에 마련된 만찬(?)을 즐기기 위해 물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돌아보면 비록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술을 마시면서 물 속으로 들어간 건 위험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바다 위에서의 음주가무와 레크리에이션이 끝나고 섬에 도착했다. 얼큰하게 취한 몇 명은 계속 술을 마시기 위해 배 지붕 위에 앉아 있고, 나는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섬 안으로 들어섰다. 선상에서 친해진 베트남인 커플과 해변을 걷고 식사도 함께 하며 베트남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어 다른 섬에 있는 수족관을 관람하는 것으로 섬 투어는 끝을 맺었다.
섬 투어에서의 흥겨웠던 분위기는 호텔로 향하는 미니버스 안에서도 이어졌다. 버스 안에서 국적 불명, 나이 불명의 사람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계속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급기야 유럽에서 온 여행객의 제안으로 각자 숙소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은 뒤 시내에 있는 ‘크레이지 카페(crazy cafe)’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숙소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벌써 어둠이 내려앉았다. 섬 투어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 어울리고 싶었지만, 비자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다음 목적지인 호치민으로 이동해야 할 상황이었다.
붉게 물든 저녁 바다는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듯 보였다. 나는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냐짱 기차역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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