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조폭영화들 틈새를 비집고 색다른 감각의 영화 한 편이 등장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김현석 감독의 데뷔작 ‘YMCA야구단’이 바로 그것.
물론 야구를 소재로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천정부지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현세의 동명 만화를 각색한 것이었는데 영화의 내용도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지옥훈련을 거친 아웃사이더들이 정통 프로무대에 입문하여 연전연승의 신화를 이어간다는 내용이었다.
‘YMCA야구단’은 일단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와는 구별된다. 1905년 일본의 강압으로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단이 결성되었다. 황성YMCA야구단이 정식 명칭이다. 당시 기독교청년회 간사였던 필립 질레트의 지도하에 만들어진 이 팀은 13년간의 활동 후 해체될 때까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고 한다. 김현석 감독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골간으로 하여 가공의 인물과 관습적 플롯 구성을 덧붙여 전혀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실 특정 스포츠를 소재로 삼아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여간 위험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프로축구 내지 프로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것이 다름 아닌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는 미리 주어진 각본에 따라 만들어진다. 바로 그런 이유 탓에 진짜 스포츠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이변의 묘미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스포츠 영화의 한계다.
‘YMCA야구단’은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매우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 각본에 의한 스포츠 드라마가 아니라, 스포츠를 소재로 한 휴먼 드라마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공포의 외인구단’과는 달리 승승장구하는 야구팀의 행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처음 도입된 야구를 매개로 하여 험난했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의 우리 민족의 애환과 정서를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 나가고 있다.
당시 야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묘사된 대로만 본다면, YMCA야구단은 곧 해방의 공동체나 다름없었다. 그곳에서는 우선 반상(班常)의 차별이 해체된다. 그곳은 선비와 기술자의 위계가 의미를 상실하는 곳이었다. 또한 남녀유별도 장유유서도 없었다. 실력만이 우선되는 그런 공간이었다. 실제로 당시 황성YMCA야구단에는 13세 소년 허성을 비롯해 20세의 청년 김종상 등이 맹활약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의 야구는 일제의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정신적 반항의 분출구이기도 했다.
이처럼 ‘YMCA야구단’은 그 저변에 역사의식을 깔고 있지만, 그 역사적 사실의 중압감에 매몰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이 영화가 채택하고 있는 코미디 전략이 그러한 중압감을 멋들어지게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종래의 코미디 영화들과도 차별된다. 배우들의 어줍잖은 개인기와 얼토당토않은 상황 설정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강요하는 저질 코미디물(나는 개인적으로 ‘가문의 영광’ 같은 영화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이 영화가 현재 흥행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아이러니라 하겠다)과는 본질적으로 격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YMCA야구단’에서 펼쳐지는 적절한 상황이 주는 코믹 효과를 이 짧은 지면에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역시 코믹 연기는 제대로 된 연기자가 해야 제 맛이 난다는 것. 이렇게 볼 때 송강호의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조선 최고의 4번 타자인 이호창 역을 맡은 그는 그 특유의 억양과 표정만으로도 능히 관객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가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선비 역으로 설정된 것도 코믹 효과를 배가시키는 요인이었음은 물론이다.
이 영화는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시대극에 걸맞게 당시 조선의 모습을 재현함에 있어서 상당히 고심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빛 바랜 사진 속에서 익히 보아왔던 전차가 다니는 종로거리의 재현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영화 ‘YMCA야구단’은 역사적 비애감을 희극적 마인드로 승화시키고 있는 흔치 않은 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일단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한 이 작품은 소재의 한계를 확장시켰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조폭과 룸살롱 문화가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인 소재 빈곤의 한국 영화판에서 옛날 야구단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새로운 소재 발굴이 아닌가.
9월13일 조폭영화 한 편과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이 동시에 개봉되었는데, 결국 전자가 압승을 거두었다. 흥행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조폭과 코미디의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반면 후자는 쪽박을 면치 못할 처지가 되었다. 물량공세가 오히려 일을 그르쳤다고 할까. 이러한 산업적 양극화의 위기적 상황에서 ‘YMCA 야구단’의 등장은 어쩌면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의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될지도 모른다. 흥행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잠재력이 있는 영화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야구를 소재로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천정부지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현세의 동명 만화를 각색한 것이었는데 영화의 내용도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지옥훈련을 거친 아웃사이더들이 정통 프로무대에 입문하여 연전연승의 신화를 이어간다는 내용이었다.
‘YMCA야구단’은 일단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와는 구별된다. 1905년 일본의 강압으로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단이 결성되었다. 황성YMCA야구단이 정식 명칭이다. 당시 기독교청년회 간사였던 필립 질레트의 지도하에 만들어진 이 팀은 13년간의 활동 후 해체될 때까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고 한다. 김현석 감독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골간으로 하여 가공의 인물과 관습적 플롯 구성을 덧붙여 전혀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실 특정 스포츠를 소재로 삼아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여간 위험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프로축구 내지 프로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것이 다름 아닌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는 미리 주어진 각본에 따라 만들어진다. 바로 그런 이유 탓에 진짜 스포츠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이변의 묘미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스포츠 영화의 한계다.
‘YMCA야구단’은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매우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 각본에 의한 스포츠 드라마가 아니라, 스포츠를 소재로 한 휴먼 드라마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공포의 외인구단’과는 달리 승승장구하는 야구팀의 행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처음 도입된 야구를 매개로 하여 험난했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의 우리 민족의 애환과 정서를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 나가고 있다.
당시 야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묘사된 대로만 본다면, YMCA야구단은 곧 해방의 공동체나 다름없었다. 그곳에서는 우선 반상(班常)의 차별이 해체된다. 그곳은 선비와 기술자의 위계가 의미를 상실하는 곳이었다. 또한 남녀유별도 장유유서도 없었다. 실력만이 우선되는 그런 공간이었다. 실제로 당시 황성YMCA야구단에는 13세 소년 허성을 비롯해 20세의 청년 김종상 등이 맹활약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의 야구는 일제의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정신적 반항의 분출구이기도 했다.
이처럼 ‘YMCA야구단’은 그 저변에 역사의식을 깔고 있지만, 그 역사적 사실의 중압감에 매몰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이 영화가 채택하고 있는 코미디 전략이 그러한 중압감을 멋들어지게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종래의 코미디 영화들과도 차별된다. 배우들의 어줍잖은 개인기와 얼토당토않은 상황 설정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강요하는 저질 코미디물(나는 개인적으로 ‘가문의 영광’ 같은 영화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이 영화가 현재 흥행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아이러니라 하겠다)과는 본질적으로 격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YMCA야구단’에서 펼쳐지는 적절한 상황이 주는 코믹 효과를 이 짧은 지면에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역시 코믹 연기는 제대로 된 연기자가 해야 제 맛이 난다는 것. 이렇게 볼 때 송강호의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조선 최고의 4번 타자인 이호창 역을 맡은 그는 그 특유의 억양과 표정만으로도 능히 관객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가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선비 역으로 설정된 것도 코믹 효과를 배가시키는 요인이었음은 물론이다.
이 영화는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시대극에 걸맞게 당시 조선의 모습을 재현함에 있어서 상당히 고심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빛 바랜 사진 속에서 익히 보아왔던 전차가 다니는 종로거리의 재현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영화 ‘YMCA야구단’은 역사적 비애감을 희극적 마인드로 승화시키고 있는 흔치 않은 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일단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한 이 작품은 소재의 한계를 확장시켰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조폭과 룸살롱 문화가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인 소재 빈곤의 한국 영화판에서 옛날 야구단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새로운 소재 발굴이 아닌가.
9월13일 조폭영화 한 편과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이 동시에 개봉되었는데, 결국 전자가 압승을 거두었다. 흥행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조폭과 코미디의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반면 후자는 쪽박을 면치 못할 처지가 되었다. 물량공세가 오히려 일을 그르쳤다고 할까. 이러한 산업적 양극화의 위기적 상황에서 ‘YMCA 야구단’의 등장은 어쩌면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의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될지도 모른다. 흥행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잠재력이 있는 영화라 여겨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