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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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속의 칼… ‘정치풍자’ 전성시대

대선후보 소재로 한 유머집·코미디 봇물… 대선 향방 가늠하는 풍향계 역할도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2-10-04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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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 속의 칼… ‘정치풍자’ 전성시대

    장덕균씨의 정치풍자집 표지에 실린 노무현, 정몽준, 이회창 후보의 캐리커처(위부터)

    노무현이 우연한 기회에 마술램프를 손에 넣었다. 책에서 본 대로 열심히 마술램프를 문질렀더니 정말 램프의 요정이 나타났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노무현이 소원을 말했다.

    “정몽준을 축구공으로 만들어줘.”

    노무현의 소원대로 램프의 요정은 정몽준을 축구공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동안 정몽준 때문에 속이 터졌던 노무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있는 힘껏 축구공을 걷어찼다. 그런데 정몽준 축구공이 청와대로 단숨에 날아가버렸다. 기겁을 한 노무현이 청와대로 뛰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기 공 좀 꺼내주세요, 제발요.”(정치풍자집 ‘노풍이야 허풍이야 무현이’ 중에서)

    웃음 속의 칼… ‘정치풍자’ 전성시대

    1993년 ‘YS는 못 말려’로 정치풍자 열풍을 몰고 왔던 장덕균씨

    대통령 선거가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치풍자가 대선의 향방을 가늠할 풍향계 노릇을 하고 있다. 개그작가 장덕균씨가 펴낸 세 권의 정치풍자집 ‘대쪽이야 개쪽이야 회창이’ ‘노풍이야 허풍이야 무현이’ ‘용꿈이야 개꿈이야 몽준이’(국일미디어 펴냄)는 유력 대선후보 세 명을 주인공으로 마음껏 현실정치 비틀기를 시도한다.

    장씨는 1980년대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로 TV 정치코미디에 도전했고, 93년 김영삼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풍자집 ‘YS는 못 말려’를 펴내 50만부 판매를 기록하는 등 정치풍자 코미디 분야를 개척해왔다. 이번 풍자집은 제목부터 각 후보가 처한 현실을 유감 없이 반영했다는 촌평을 얻고 있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제목이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정하고 보니 지금 현실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장씨의 말이다.



    장씨는 정치풍자집을 쓰기 위해 지난해부터 10여명의 후보들을 놓고 저울질하다 올 5월 들어 세 명으로 압축했다. 정몽준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기 전이었으나 출마 쪽으로 대세가 굳어졌다고 판단했고, 이한동 후보는 출마를 한다 해도 판도를 바꾸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다.

    후보 지지도와 풍자집 판매량 일치

    웃음 속의 칼… ‘정치풍자’ 전성시대

    ‘전유성의 코미디시장’이 준비중인 정치풍자극 ‘제목 없으면 어때!’의 포스터

    세 후보를 한 책에 담지 않고 따로 펴낸 데는 다분히 출판사의 상업적 의도가 깔려 있지만, 판매 동향을 놓고 대선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장씨는 “YS 때와 달리 세 권으로 펴내 놓고 보니 독자들이 어느 쪽을 집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각자 지지하는 후보의 책만 찾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10월 초 발표할 판매부수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현재까지의 판매부수는 각종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정치평론가 손혁재씨는 “정치풍자란 현실을 꼬집음으로써 우리 정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한다”면서 “웃음으로 현실정치의 긴장이나 갈등을 풀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대선 레이스가 긴박하게 진행될수록 정치풍자의 맛이 살아난다. 97년 대선 때도 11월 무렵에 ‘미스터DJ’ “개그맨은 대통령 하면 안 됩니까’ ‘대쪽이 기가 막혀’ ‘왕후의 밥 걸인의 찬’ ‘NG공화국’ ‘DJ와 함께 춤을’ 등 풍자집이 쏟아졌다. 시기적으로 보면 지금부터 정치풍자의 계절이 시작되는 셈이다.

    웃음 속의 칼… ‘정치풍자’ 전성시대

    ‘제목 없으면 어때!’의 작가이자 연출을 맡은 유록식씨. 서울예대 ‘개그클럽’을 만든 주역이다

    단 ‘전유성의 코미디시장’도 현실정치를 패러디한 웃음폭탄을 준비중이다. 10월18일부터 한 달 동안 서울 대학로 창조콘서트홀에서 공연될 작품은 ‘제목 없으면 어때!’. 1막은 자살하러 국회의사당 지붕 위에 올라간 박봉팔과 이천수의 이야기, 2막은 무인도에서 4인의 생존자(스님, 목사, 수녀, 정치인)가 벌이는 ‘짱구 대결’, 3막은 갑자기 찾아온 의문의 메시지에 따라 정치, 종교, 인권단체들이 벌이는 지칠 줄 모르는 논쟁.

    직접 작품을 쓰고 연출을 맡은 유록식씨는 “정치인들의 공천 과정, 청문회, 대선후보들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뒤섞이는 극으로 30초마다 한 번씩 뒤집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사람들은 기상천외한 일로 웃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현실을 진지하게 묘사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게 정치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곧 코미디언 아닌가.”

    그러나 아직도 정치풍자의 수위를 놓고 작가나 연기자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코미디언 전유성씨는 “박정희 대통령 때는 ‘육박전’이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벌이는 부부싸움을 연상시키는 탓). 그런 분위기에서 자체 검열에 익숙해진 작가나 연기자들이 얼마나 틀을 깰 수 있느냐가 웃음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웃음 속의 칼… ‘정치풍자’ 전성시대

    MBC라디오에서 ‘3김 퀴즈’로 인기를 얻고 있는 최양락, 배칠수씨 (왼쪽부터)

    KBS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을 통해 전현직 대통령을 코미디에 등장시켜 화제를 모았던 강영원 PD도 “정치풍자는 소재 등에서 보이지 않는 한계가 많다”고 인정한다. “알게 모르게 당이나 국회사무처 등으로부터 외압이 들어온다. 코미디를 코미디로 보지 않고 음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당장 대선후보들을 겨냥한 코미디를 내놓는다고 하면 당락에 영향을 끼친다고 야단이 난다.” 또 강PD는 “시사코미디의 본령이 기득권층 희화화에 있는 만큼 정치인들이 코미디 소재가 되는 것을 여유롭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풍자를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의 풍토에 비해 장덕균씨가 98년 풍자집 ‘클린턴 바지를 올려라’를 펴낸 후 내용 일부를 영역해 책과 함께 클린턴에게 보냈더니 “당신의 사려 깊은 선물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다는 사실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TV의 정치풍자가 소재와 표현수위의 한계로 고전하고 있는 반면, 라디오(인터넷 방송 포함)는 ‘배칠수(본명 이형민)’라는 성대모사의 달인 덕분에 풍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에서 김대중 대통령 성대모사로 뜬 배칠수씨는 고정 출연중인 프로그램만 10개에 달한다. 특히 MBC 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진행중인 ‘3김 퀴즈’는 단순 성대모사가 아니라 각 인물 캐릭터를 심하다 싶을 만큼 희화화해서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 DJ는 아는 척하다 때를 놓치는 형, YS는 무식하게 용감한 형, JP는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삼천포로 빠지는 형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아직도 3김이냐”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3김에 비하면 풍자거리 적어

    배칠수씨는 “솔직히 3김은 풍자와 웃음거리가 많은 인물이다. 그만큼 정치 경륜이 있고 각각의 캐릭터가 분명하다. 3김에 비하면 ‘이·노·정’은 신인급이어서 풍자 대상으로 삼기에 부족한 면이 많다”면서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신인’들의 목소리를 연습중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방송뿐만 아니라 이솝우화를 빌린 시사풍자집도 10월 중순께 출간할 예정이다. 책과 함께 CD에 담긴 그의 성대모사를 들을 수 있다.

    정치풍자는 그 시대의 자화상인 만큼 시대가 바뀌면 주인공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다음은 97년 대선 때 나왔던 음주단속 유머의 한 토막. 각 후보들의 음주단속을 피하는 요령. DJ: 경로우대증을 내밀며 한 번만 봐달라고 한다. 이인제: 국민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셨다고 우긴다. 이회창: 알고 있는 법률을 있는 대로 들이대며 따진다.

    이중에서 2002년 대선 레이스에는 이회창 선수만 남았다. 새로 만들어진 교통단속 유머의 주인공은 ‘이·노·정’.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이 각각 자신의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고속도로에서 마주치게 됐다. 그들은 서로 지기 싫어서 엄청난 속도로 질주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이회창이 교통경찰에게 걸렸다. “법대로 하시오. 나 이회창이오.” 교통경찰은 이회창이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자 그냥 보내주었다. 잠시 후 이번엔 노무현이 걸렸다. “나 딱지 떼는 건 좋은데 앞 차는 왜 딱지 안 떼는 거요? 이회창 후보란 말이오. 아들이 군대도 안 갔는데 왜 딱지를 안 떼는 거요?”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이번엔 정몽준이 걸렸다. 정몽준은 지갑을 꺼내더니 시원스럽게 물었다. “얼마면 되니?”(‘용꿈이야 개꿈이야 몽준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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