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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20일 열린 시상식에서 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은 “향후 캐릭터 산업은 우리 경제의 주요한 품목으로 부상할 것”이라면서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에 진출하는 캐릭터로 키워달라”고 주문했다. 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서병문 원장은 “올해는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캐릭터 한두 개를 선정, 이들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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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리랜서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플래시 애니메이션 ‘마시마로의 숲 이야기’로 시작된 엽기토끼 열풍은 2001년 캐릭터 산업으로 옮겨가면서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마시마로 캐릭터 상품만 1000여종에 달할 정도.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의 여대생 2명 중 한 명이 마시마로를 가지고 다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마시마로는 국내의 여세를 몰아 지난해 11월 일본에도 진출했다. 마시마로의 판권을 보유한 씨엘코 엔터테인먼트의 이창현 이사는 “일본에서 ‘헬로 키티’의 매출을 1.5배 이상 올리고 있다”고 전하면서 앞으로 마시마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게임과 장편 애니메이션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마시마로의 매출액은 1200억원 선.
마시마로에서 볼 수 있듯 국산 캐릭터는 그저 예쁘장하기만 한 일본 캐릭터나 상업성이 강한 미국 캐릭터보다 정감이 가고 소박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캐릭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생명력입니다. 생명력이 없는 캐릭터는 아무리 예뻐도 그저 로고(Logo)일 뿐이죠. 그런 점에서 볼 때, 인간미가 느껴지는 국산 캐릭터는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 일본 캐릭터보다 충분한 시장성과 장래성이 있습니다.” 엄윤상 과장은 국산 캐릭터의 미래를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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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산 캐릭터가 가야 할 길이 마냥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 캐릭터 산업은 아직 객관적인 기반이 너무도 취약하다. 캐릭터 시장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전혀 없어 국내 시장 규모나 국산 캐릭터의 시장점유율 등은 모두 업계의 추측에 불과하다. 홍보나 마케팅 전략 부족도 국산 캐릭터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해 애써 개발한 캐릭터의 무단복제품이 시장에서 활개치는 것도 문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치밀함’이 부족하다는 점. 마시마로, 졸라맨 등은 모두 현재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인기를 얻은 캐릭터들이다. 엄밀히 말해 이들 캐릭터를 만든 주체는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들이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캐릭터들이 네티즌의 열광적인 호응을 업고 시장의 총아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형적인 스타탄생의 구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캐릭터가 장기적인 생명력을 가지려면 이 같은 즉흥적 아이디어의 산물보다는 체계적인 산업구조에서 치밀한 연구 끝에 탄생해야 한다.
한국캐릭터문화산업협회의 신용태 회장은 “사회 분위기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캐릭터들은 시대 흐름이 변하면 그 생명력이 퇴색할 수 있다”면서 “캐릭터는 다양한 성격을 가져야 하고 따라서 제대로 된 연구개발 절차를 밟아 탄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캐릭터를 판매하는 매장 관계자들은 “엽기토끼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곰돌이 푸, 스누피 등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항상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곰돌이 푸는 지난해 가을 75회 생일을 맞았다. 영국에서 태어나 디즈니의 손을 거쳐 현재 모습으로 재탄생한 곰돌이 푸는 어느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다. 디즈니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200여명의 합작품이다.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과 산고가 따라야만 한다. 이 원칙은 비단 진짜 생명뿐만 아니라 캐릭터에도 변함없이 적용되어야 할 듯싶다. 캐릭터는 돈이 되는 그림인 동시에 ‘생명이 있는 그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