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은 2년 전 3개월 일정으로 일본 시민사회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남쪽 규슈의 가고시마에서 북쪽 홋카이도까지, 도쿄나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와 야마가타의 시골마을까지 두루 다니며 시민단체, 활동가, 지식인들을 400여명이나 만났다.
거기서 박변호사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일본의 활동가들은 거창한 ‘시민운동’이라는 말 대신 ‘마을 만들기’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또 단체 이름도 ‘○○을 생각하는 회’ ‘○○을 공부하는 회’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을 그리 많이 생각하고 공부할까라는 의문도 들지만 그만큼 운동의 대상이나 목표가 살아 있는 지역사회 만들기로 좁혀져 있었다. 이를 놓고 일본의 지식인이나 한국의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의 시민운동이 너무 작은 것에 집착하다 보니 전체의 변화를 위한 운동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일본의 시민운동은 전국적인 조직이나 연대가 거의 없고 정부와 기업을 견제하는 역할도 미비했다.
그러나 박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는 일본이 부러워하는 낙선운동을 통해 과연 한국정치를 얼마나 바꾸었는가”라고 반문했다. 일본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쓴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에서 그는 “한국의 시민운동이 전략적인 지점을 폭격하여 사회변화를 유도하는 공군이라면, 일본은 아래에서부터 하나하나 바꾸어 가는 육군이다….서로 장단점이 있겠지만 어쨌든 한국의 시민운동은 이제 지역과 부문으로 달려가야 할 때가 왔다”고 적고 있다.
IMF 사태를 겪은 후 우리 사회의 화두는 ‘변화’였다. 구본형씨처럼 스스로 변화경영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외치는 이들이 나타났다. 보통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변화하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변화에 대한 강박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와 같은 책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이 책의 메시지에 대해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구시대적인 자본가의 논리로 철저하게 환경 순응의 철학을 가르치는 음흉한 책”이라고 비판했다. 개인에게 변화와 적응을 강요할 게 아니라 환경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단 말인가.
9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민운동은 삶의 환경 자체를 바꾸려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표출이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사무처장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 시민운동은 정부나 기업, 제도나 정책의 변화에서 여러 성과를 이루었고 만만치 않은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적 영향력을 점차 자발적 조직들에 기초한 사회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하씨가 말하는 자발적 조직들이란 우리식물살리기운동(토종 식물을 알리고 지키기 위한 모임)처럼 작지만 그 역할이 뚜렷한 단체들이다. 작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등 단체’(언론보도에서 항상 큰 단체 다음에 등 ○○개의 시민단체라고 하는 데서 비롯한 말)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한다. 그러나 숫적으로 이들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2000년 ‘시민의 신문’ 조사에 따르면 지부조직을 제외하고도 활동중인 시민단체는 4023개. 이들이 한 가지씩만 행동에 옮기면 우리 사회 곳곳에 4000여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99년 한 청바지 회사가 상금 3억원을 걸고 인터넷상에서 도메인을 공모했는데, 당선작이 회사 관련 직원인 것으로 밝혀지자 참여했던 네티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처음에는 개인의 불만 표시 수준이었으나 이 문제가 점차 사회 이슈화하면서 별도의 홈페이지가 만들어졌고 인터넷 사이트상에서 시위가 이루어졌다. 결국 이 회사는 사과와 함께 상금을 사회에 환원(장학금)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산업대 백욱인 교수(사회학)는 이를 ‘연대하는 개인주의’라고 명명했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가 재미교포 2세 환경운동가 대니 서(한국명 서지윤·24)다. 98년 ‘피플’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 중 한 명인 그는, 운동가들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운동을 강조했다. 매일 단 15분만 할애할 수 있으면 누구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제안한 작은 실천들을 보자. 비행 마일리지 보너스를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돕는 단체에 기증하면 환자를 치료시설이나 병원으로 수송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사용하지 않는 여행용 가방을 고아원에 기증하면 아이들이 입양되어 새 집으로 갈 때 비닐봉투 대신 가방에 넣어갈 수 있다. 여행중 호텔에 비치되어 있는 샴푸나 구강청정제, 쓰고 남은 비누 등을 가져와 노숙자들에게 나눠준다. 사륜구동 차량을 갖고 있다면 악천후 때 의사와 간호사를 수송해 주겠다고 근처 병원에 일러둔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안 주더라도 무시하거나 못 본 척하고 지나치지 않는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긍심을 회복시켜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대니 서는 이런 작은 실천들을 통해 미국 매스컴이 격찬한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젊은이’가 되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면 조금씩 여러 번에 걸쳐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의지는 이미 각 분야에서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 녹색연합이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내복 입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나, 환경운동연합이 연말연시 분위기를 내느라고 나무에 전기장식을 친친 감는 것이 식물 생태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알리는 ‘나무도 크리스마스엔 쉬고 싶다’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시민들의 각성과 작은 실천을 유도한다. 참여연대는 지속적으로 작은권리찾기운동을 전개해 왔고, 최근에는 민주노동당과 함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이뤄내기도 했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이 교육법 개정, 교원정년 등 굵직한 제도개혁 문제에 매달려 있을 때 지난해 발족한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생태적·미학적으로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작은 화단과 나무, 담쟁이와 덩굴장미로 장식한 학교, 이동식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넓은 복도가 있고 학생들이 모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학교, 나아가 공동체성이 살아 있는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운동들은 낭만적이고 한가롭게 보이지만 어쨌든 구호로만 듣던 ‘공교육 살리기’의 한 방안으로 자리잡았다.
여성계에서도 변화의 징후가 보인다. ‘여성신문’ 이계경 사장은 “앞으로 여성운동의 방식을 바꾸어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제도개혁이나 정책개발이 아닌, 여성 한 명 한 명을 변화시키는 운동, 문화적인 여성운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이사장은 “산골 주부에게 가사노동의 가치가 매달 113만원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고 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는 ‘한국시민사회’라는 저서에서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탐구하는 시민운동 담론은 사회제도와 가치·문화라는 이분법적 발상을 넘어서 그것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제도 개혁 없는 가치체계와 생활양식의 전환은 관념적인 구호에 불과하고, 삶의 방식과 세계관의 전환이 존재하지 않는 제도개혁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그것은 “작은 것을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큰 것을 변화시키겠는가”라는 박원순 변호사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박변호사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일본의 활동가들은 거창한 ‘시민운동’이라는 말 대신 ‘마을 만들기’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또 단체 이름도 ‘○○을 생각하는 회’ ‘○○을 공부하는 회’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을 그리 많이 생각하고 공부할까라는 의문도 들지만 그만큼 운동의 대상이나 목표가 살아 있는 지역사회 만들기로 좁혀져 있었다. 이를 놓고 일본의 지식인이나 한국의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의 시민운동이 너무 작은 것에 집착하다 보니 전체의 변화를 위한 운동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일본의 시민운동은 전국적인 조직이나 연대가 거의 없고 정부와 기업을 견제하는 역할도 미비했다.
그러나 박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는 일본이 부러워하는 낙선운동을 통해 과연 한국정치를 얼마나 바꾸었는가”라고 반문했다. 일본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쓴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에서 그는 “한국의 시민운동이 전략적인 지점을 폭격하여 사회변화를 유도하는 공군이라면, 일본은 아래에서부터 하나하나 바꾸어 가는 육군이다….서로 장단점이 있겠지만 어쨌든 한국의 시민운동은 이제 지역과 부문으로 달려가야 할 때가 왔다”고 적고 있다.
IMF 사태를 겪은 후 우리 사회의 화두는 ‘변화’였다. 구본형씨처럼 스스로 변화경영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외치는 이들이 나타났다. 보통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변화하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변화에 대한 강박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와 같은 책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이 책의 메시지에 대해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구시대적인 자본가의 논리로 철저하게 환경 순응의 철학을 가르치는 음흉한 책”이라고 비판했다. 개인에게 변화와 적응을 강요할 게 아니라 환경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단 말인가.
9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민운동은 삶의 환경 자체를 바꾸려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표출이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사무처장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 시민운동은 정부나 기업, 제도나 정책의 변화에서 여러 성과를 이루었고 만만치 않은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적 영향력을 점차 자발적 조직들에 기초한 사회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하씨가 말하는 자발적 조직들이란 우리식물살리기운동(토종 식물을 알리고 지키기 위한 모임)처럼 작지만 그 역할이 뚜렷한 단체들이다. 작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등 단체’(언론보도에서 항상 큰 단체 다음에 등 ○○개의 시민단체라고 하는 데서 비롯한 말)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한다. 그러나 숫적으로 이들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2000년 ‘시민의 신문’ 조사에 따르면 지부조직을 제외하고도 활동중인 시민단체는 4023개. 이들이 한 가지씩만 행동에 옮기면 우리 사회 곳곳에 4000여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99년 한 청바지 회사가 상금 3억원을 걸고 인터넷상에서 도메인을 공모했는데, 당선작이 회사 관련 직원인 것으로 밝혀지자 참여했던 네티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처음에는 개인의 불만 표시 수준이었으나 이 문제가 점차 사회 이슈화하면서 별도의 홈페이지가 만들어졌고 인터넷 사이트상에서 시위가 이루어졌다. 결국 이 회사는 사과와 함께 상금을 사회에 환원(장학금)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산업대 백욱인 교수(사회학)는 이를 ‘연대하는 개인주의’라고 명명했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가 재미교포 2세 환경운동가 대니 서(한국명 서지윤·24)다. 98년 ‘피플’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 중 한 명인 그는, 운동가들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운동을 강조했다. 매일 단 15분만 할애할 수 있으면 누구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제안한 작은 실천들을 보자. 비행 마일리지 보너스를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돕는 단체에 기증하면 환자를 치료시설이나 병원으로 수송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사용하지 않는 여행용 가방을 고아원에 기증하면 아이들이 입양되어 새 집으로 갈 때 비닐봉투 대신 가방에 넣어갈 수 있다. 여행중 호텔에 비치되어 있는 샴푸나 구강청정제, 쓰고 남은 비누 등을 가져와 노숙자들에게 나눠준다. 사륜구동 차량을 갖고 있다면 악천후 때 의사와 간호사를 수송해 주겠다고 근처 병원에 일러둔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안 주더라도 무시하거나 못 본 척하고 지나치지 않는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긍심을 회복시켜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대니 서는 이런 작은 실천들을 통해 미국 매스컴이 격찬한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젊은이’가 되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면 조금씩 여러 번에 걸쳐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의지는 이미 각 분야에서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 녹색연합이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내복 입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나, 환경운동연합이 연말연시 분위기를 내느라고 나무에 전기장식을 친친 감는 것이 식물 생태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알리는 ‘나무도 크리스마스엔 쉬고 싶다’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시민들의 각성과 작은 실천을 유도한다. 참여연대는 지속적으로 작은권리찾기운동을 전개해 왔고, 최근에는 민주노동당과 함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이뤄내기도 했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이 교육법 개정, 교원정년 등 굵직한 제도개혁 문제에 매달려 있을 때 지난해 발족한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생태적·미학적으로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작은 화단과 나무, 담쟁이와 덩굴장미로 장식한 학교, 이동식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넓은 복도가 있고 학생들이 모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학교, 나아가 공동체성이 살아 있는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운동들은 낭만적이고 한가롭게 보이지만 어쨌든 구호로만 듣던 ‘공교육 살리기’의 한 방안으로 자리잡았다.
여성계에서도 변화의 징후가 보인다. ‘여성신문’ 이계경 사장은 “앞으로 여성운동의 방식을 바꾸어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제도개혁이나 정책개발이 아닌, 여성 한 명 한 명을 변화시키는 운동, 문화적인 여성운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이사장은 “산골 주부에게 가사노동의 가치가 매달 113만원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고 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는 ‘한국시민사회’라는 저서에서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탐구하는 시민운동 담론은 사회제도와 가치·문화라는 이분법적 발상을 넘어서 그것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제도 개혁 없는 가치체계와 생활양식의 전환은 관념적인 구호에 불과하고, 삶의 방식과 세계관의 전환이 존재하지 않는 제도개혁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그것은 “작은 것을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큰 것을 변화시키겠는가”라는 박원순 변호사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